'아이스 커피의 계절' 여름이 올해는 좀 더 빨리 찾아왔다. 거리에는 벌써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언제부터 아이스 커피가 여름나기의 필수품이 되었을까. 아이스 커피도 일반 커피와 마찬가지로 커피 전문점의 역사와 함께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1999년 스타벅스의 한국 진출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커피 전문점들은 커피를 한 자리에 앉아서 마시던 다방 시대를 마감시켰다. 대신 '들고 다니며 마시는' 커피 시대를 열었다. 갓 만들어진 커피를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신선함이 생명인 아이스 커피의 부흥을 이끌었다.

한국인의 커피 입맛이 변하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아이스 커피의 제왕은 단연 아메리카노였다. 그해 스타벅스에서는 아메리카노(핫, 아이스)가 판매량 1위(3070만잔)를 기록했다. 2위인 카페라테(1670만잔) 판매량의 2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당시 탐앤탐스의 관계자도 "최근 2년간 음료군 중 아메리카노의 판매 비율이 42%"라고 밝혔으며, 총 100여 가지의 메뉴를 판매 중인 카페베네 측은 "아메리카노 2개 메뉴(핫, 아이스)의 판매 비율이 전체의 25%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 기사 더보기

그런데 2014년 이후부터는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더치커피, 핸드드립 등 이전에는 마니아들만 찾던 커피를 선보이는 카페가 늘어나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명성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 것. 그 이면에는 기존에 알던 커피 맛이 아닌, 색다른 커피를 맛보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숨어있다. 커피를 대하는 입맛도 점차 고급화되어, 쓴 맛이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부드러우면서 원두의 향이 살아있는 더치커피나 핸드드립을 원하게 되었다. 여름이 채 오기도 전부터 시작된 올해의 '콜드브루' 열풍 또한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차가운 물로 우려낸 커피, 콜드브루(cold brew)


커피 추출시 뜨거운 물이 아닌 찬물 또는 상온의 물을 사용한다고 해서 콜드브루(cold brew)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더치(Dutch)커피와 동일한 뜻이며 워터드립(water drip)이라고도 한다. 더치커피는 네덜란드풍 커피라 하여 붙여진 일본식 명칭이다.

유래
콜드브루를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식민지의 선원들이 유럽으로 장기간 항해를 하던 중 커피를 마시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네시아에 살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커피의 쓴맛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만들어 낸 것이 콜드브루라는 설이다. 그러나 이에 관해 증명된 문헌은 없어 상술의 일환으로 만들어 낸 전설이라는 얘기도 있다.

추출방식
점적식(點滴式)과 침출식(浸出式)의 두 가지의 방식이 있다. 점적식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한 방울씩 커피 원액을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분쇄한 원두를 찬물에 짧게는 3~4시간, 길게는 8~12시간 우려내 3초당 한 방울씩 떨어뜨리기 때문에 커피 1잔(125㎖)을 만드는 데 약 1시간이 걸린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커피인 탓에 '천사의 눈물'과 같은 애칭도 붙는다. 침출식은 분쇄한 원두와 물을 넣고 10~12시간 정도 숙성시킨 뒤 찌꺼기를 걸러내 커피 원액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만드는 아메리카노보다 쓴맛이 덜하고 원두의 풍미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특히 텁텁한 맛이 없어 깔끔하며 특유의 초콜릿 향이 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원두의 선택(블렌딩), 분쇄도, 추출 방법, 추출시간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일부에서는 더치커피가 오랜시간 우려내어 카페인 함량이 적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객관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 더치커피는 카페인이 제로?

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시중에 판매되는 음료 형태의 더치커피에는 아메리카노(0.4㎎/㎖)보다 4배 많은 카페인이 함량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랜차이즈 전문점 커피의 기본 용량인 1잔(350㎖) 기준으로 커피 원액과 물을 1:3 비율로 섞어 비교해봤을 때, 아메리카노에는 평균 140㎎의 카페인이, 더치커피에는 평균 149㎎의 카페인이 들어 있었다. 따라서 더치커피가 일반 커피보다 카페인 함량이 적다는 말은 옳지 않다.

벚꽃 필 때부터 시작된 '콜드브루 열풍', 왜?

뜨거운 열이 원두의 맛을 빼앗아간다?

커피 전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커피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커피 업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에스프레소 머신의 뜨거운 물이 질 좋은 콩을 몰아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유가 뭘까?

원인은 에스프레소 머신의 '고온고압(高溫高壓)' 커피 추출 방식에 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90도 이상의 뜨거운 물을 9기압으로 눌러 커피를 만들기 때문에, 원두가 갖고 있는 다양한 맛을 완전히 살려내지 못한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풍토에서 수확된 원두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거치면 맛이 다 비슷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원두 본연의 개성있는 맛을 느끼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은 더치커피(콜드브루), 핸드드립 커피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 이들 커피는 찬물이나 80도 안팎의 물로 커피를 추출하기 때문에 원두의 풍부한 맛이 잘 살아난다. 우리의 혀가 52도 이하에서 액체의 맛을 더 잘 느끼는 점도 더치커피나 핸드드립 같은 저온추출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Why] [알랑가 몰라] 뜨거운 물 때문에… 커피 원두맛 '천편일률']

더치커피가 아니라 왜, 콜드브루인가?

더치커피의 유행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더치커피가 '더치커피'라는 본래의 이름을 감추고 '콜드브루'로 재탄생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지난해, 위생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소비자원의 세균 검출시험 결과 일부 더치커피 제품에서 기준치의 9900배에 달하는 세균이 나왔던 것. 저온에서 장시간 추출해 숙성시키는 더치커피의 특성 상 세균에 노출되기 쉽다는 설명이다.

일부 제품의 위생 논란은 더치커피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었다. 아이스 커피의 매출이 높아지는 여름철을 겨냥해 음료 업체들이 더치커피 대신 콜드브루라는 이름을 갖고 나온 이유다. 한국인에게 생소했던 콜드브루는 새로운 커피라는 신선함을 주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콜드'라는 단어는 시원함을 연상시켜 아이스 커피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름을 달리했다고 위생 논란이 잠재워지는 건 아니다.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제품을 출시한 한국야쿠르트 측은 이에 대해 "입자를 얇게 하는 초임계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해 위생문제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해명했으며, 스타벅스는 "일전에 문제가 됐던 점적식이 아닌 침출식으로 커피를 우려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부 더치커피, 알고보니 '더티 커피']

콜드브루 시장을 선점하라

왼쪽부터 한국야쿠르트의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스타벅스 콜드브루, CU의 '겟(GET) 더치워터',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 콜드브루'

콜드브루 열풍 시작한 한국야쿠르트
한국야쿠르트가 지난 3월 선보인 '콜드브루 by 바빈스키'는 콜드브루라는 이름으로 더치커피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제품으로는 국내 최초의 시도다. 콜드브루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단 10일간, 그것도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는 '신선도 마케팅'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15년 미국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인 찰스 바빈스키(Charles Babinski)는 이러한 한국야쿠르트의 방문판매 방식에 공감해 콜라보레이션을 결정했다고 한다.

커피 전문점도 잇따라 가세

스타벅스를 필두로 카페베네, 할리스커피 등 커피 전문점에서도 콜드브루 신메뉴를 내놨다. 특히 스타벅스는 1년여 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기존 더치커피 추출 방식인 점적식

대신 침출식 콜드브루를 탄생시켰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제한된 인원이 14시간씩 우려내는 콜드브루는 하루에 추출되는 양이 한정돼 있어 1일 제공할 수 있는 커피 수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편의점 커피도 빠질 수 없다
편의점 CU가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선보인 'GET 더치커피워터'는 출시 한 달 만에 매출이 114.7% 급증했다. 기존 편의점 커피(1000원)보다 2배 비싼 가격(2000원)에도 불구하고, 물처럼 마실 수 있는 가벼운 커피라는 점이 소비자의 마음을 끌었다. 남양유업도 '프렌치카페 콜드브루' 3종을 출시하며 콜드브루 시장에 발을 들였다.

콜드브루, 나만의 레시피를 담은 커피

콜드브루는 다양한 얼굴을 가졌다. 원액에 물과 얼음을 넣어 마시는 아이스 커피 외에 우유, 맥주, 아이스크림, 심지어 소주와도 잘 어울린다. 순하고 부드러운 탓에 다른 음료를 섞어도 맛이 튀지 않고 조화가 잘 된다. 또 일반 커피처럼 추출 후 바로 마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냉장고에 보관 후 마실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1~2주 가량 냉장보관 하면 추출 직후보다 특유의 향이 한층 깊어진다. 콜드브루를 집에서 손쉽게, 또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더치 칵테일

세계적인 바리스타 챔피언인 찰스 바빈스키가 TV프로그램에서 더치 칵테일 레시피를 공개했다.

1. 얼음 잔에 소주를 30㎖ 정도 붓는다.
2. 그 위에 콜드브루 커피 원액을 15㎖ 붓는다.
3. 사이다를 30㎖ 정도 부어 마무리한다.

더치 아포카토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에 콜드브루 원액을 그대로 부어 먹는다. 본래 아포가토는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사용하지만, 차가운 콜드브루를 아이스크림과 섞으면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더치 맥주

청량감이 있는 라거 맥주에 더치커피를 섞으면 흑맥주 느낌의 풍미가 더해진다. 일반적으로 맥주와 커피의 비율을 6:1 정도로 하면 적당하지만, 본인의 취향에 따라 양을 조절할 수 있다.

[요즘 대세 더치커피, 그냥 먹지 말고 특별하게 즐겨보자]

일부에서는 콜드브루 열풍이 유난히 아이스 커피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전 세계적으로 아이스 커피를 즐기는 국가는 많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한국은 아이스 커피 마시는 문화가 발달한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익숙함보다 새로움을 즐기고 유행을 좇는 특성이 더해져 콜드브루 열풍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소비자 입장에서 콜드브루 열풍은 반가운 일이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를 함께 이겨낼 동반자가 하나 더 생겼기 때문이다. 콜드브루 다음은 무엇일까? 우리가 아이스 커피를 사랑하는 한 아이스 커피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