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보는 미국사’를 펴낸 박진빈 경희대 교수.

박진빈(45)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미국 도시의 형성과 발전, 변화 과정을 전공한 서양사학자다. 그는 1998년 미 펜실베이니아대로 유학을 떠났을 당시, 학교 캠퍼스를 안내해주던 미국인 선배가 첫날 들려준 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미국에서는 해질 무렵에 백인 여성이 조깅하고 있는 지역은 안전하다고 생각해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위험하다고 간주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었다.

인종적·계층적 갈등이 심각하고 총기 사고가 빈번한 미국 도심에서는 불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범 지역과 안전 지역이 나뉘는 일이 허다했다. 흑인 문화의 탄생지로 꼽히는 뉴욕 할렘이나 부촌(富村)의 대명사인 로스앤젤레스의 베벌리힐스처럼 인종과 계층에 따라서 거주 지역이 구분되는 현상도 뚜렷했다. 이런 궁금증은 미 유학 시절 내내 박 교수에게 학문적 화두(話頭)가 됐다.

그가 최근 펴낸 '도시로 보는 미국사'(책세상)는 유학 시절 품었던 의문에 대한 '자답(自答)' 같은 책이다. 이 책에서 박 교수는 미국을 대표하는 8개의 도시와 그 도시의 사회적 쟁점을 짝지어 살피는 방식을 택했다. 시카고는 흑백 인종 갈등, 세인트루이스는 공공 임대 주택과 도심 재개발, 애틀랜타는 교외(郊外) 대형 쇼핑몰, 로스앤젤레스는 다인종 사회라는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책에는 도심 개발로 인한 임차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과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처럼 한국에서도 민감한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이 적지 않다. 박 교수는 "미국 뉴욕의 경우 1970년대부터 도심 재개발과 공간 개선 사업으로 땅값과 임차료가 치솟으면서 이민자와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뮤지컬 '렌트'의 무대가 됐던 뉴욕 남동쪽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에 이어 최근에는 할렘까지 젠트리피케이션은 확산되고 있다.

박 교수는 "도심의 공동화(空洞化)와 슬럼화 현상을 막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효과도 있지만, 저소득층이 쫓겨나고 문화적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부작용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