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가 주도 도핑 스캔들과 관련,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18일 오후(한국 시각) 집행위원회를 갖고 "러시아의 전 종목 올림픽 출전 금지에 대한 법적 검토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IOC는 또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러시아 선수단 전원에 대한 재조사도 선언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설마' 했던 '러시아 리우올림픽 전면 출전 금지'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생겼다.
이 같은 조치는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전날 캐나다 토론토에서 발표한 '러시아의 조직적 도핑 실태 보고서'에서 촉발됐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보고서와 관련해 "러시아가 충격적이고 전례 없는 방식으로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했다"며 엄격한 처벌을 천명했다.
WADA는 지난해 10월 러시아 육상 선수들의 도핑에 정부가 개입한 의혹을 폭로한 데 이어 이 보고서에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에도 국가 주도의 도핑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도핑은 하계·동계 종목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며 이를 '도핑 프로그램'이라고 불렀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여러 금지 약물과 술을 섞은 칵테일을 개발해 선수들에게 나눠줬다. 내부에선 이 술을 '귀부인'(Duchess)'이라는 암호로 불렀다. 이런 러시아의 도핑 프로그램은 2011년 말부터 2015년 8월까지 진행됐으며 2012 런던올림픽, 2014 소치 동계올림픽, 2013 모스크바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국제 대회 전반에서 발견됐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도핑을 은폐하려는 러시아의 노력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다. 러시아는 약물을 하기 전 선수의 깨끗한 소변 샘플을 미리 받아 놓았다. 약물을 한 선수가 경기를 뛴 다음 샘플을 제출하면 정보기관 요원은 샘플 보관소인 러시아 반도핑기구(RUSADA) 모스크바 연구소에 잠입해 약물 성분이 든 샘플을 감쪽같이 깨끗한 샘플로 바꿔치기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구 소련 KGB의 후신) 요원은 배관공으로 위장해 연구소에 들어갔고, 샘플 보관소 옆에 있는 '비밀의 방'에서 대기했다. 밤이 되면 요원은 연구원들로부터 '쥐구멍(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약물 샘플을 전달받아 외부의 깨끗한 샘플로 바꾼 다음 원위치시키는 방식이었다.
WADA는 이렇게 은폐된 도핑 양성반응 샘플만 580개, 30종목에 달한다고 봤다. 심지어 장애인이 출전하는 패럴림픽 종목에서도 도핑이 있었다.
WADA 보고서를 주도한 리처드 매클래런 캐나다 웨스턴대 교수는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이보다 더한 사실이 은폐돼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크레이그 리디 WADA 회장은 "(러시아의 도핑은) 그 규모와 깊이가 공포 소설 같다"고 말했다.
국제 스포츠계의 비난이 폭주하는 가운데 어떤 수위든 러시아에 대한 징계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편 크렘린은 "좀 더 객관적이고 정밀한 정보를 달라"고 WADA에 요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림픽이 정치화되고 있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