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소재가 된 '엑스레이(X-RAY)' 작전은 실제 6·25 전쟁 당시 우리 해군 첩보 부대가 연합군의 인천 상륙을 지원하기 위해 인천에 미리 잠입해 북한군 동향을 수집한 첩보 작전이다.
6·25 당시 해군 정보국장이었던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 회고록 '바다로 세계로'에 따르면, 우리 해군은 1950년 8월 13일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의 요청을 받고 17명으로 구성된 첩보대를 꾸렸다. 이들은 인천 앞바다의 영흥도를 거점으로 인천에 잠입한 뒤 북한군 해안포대의 위치와 수, 병력 배치 현황, 상륙 지점 지형 등의 정보를 수집해 맥아더 사령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상륙 작전 하루 전인 9월 14일 북한군 1개 대대가 영흥도를 기습하며 작전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위기를 맞았다. 이때 첩보대의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적을 유인해 부대원들을 탈출시킨 뒤 총으로 자결했다. 포로가 되면 상륙 작전 정보가 새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954년 이들의 희생을 기려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해군은 유도탄고속함(PKG) 10번·11번함에 각각 임 중위와 홍 하사의 이름을 붙였다.
영화에서 엑스레이 작전은 큰 얼개만 남아있고 구체적인 내용들은 새롭게 구성됐다. 우리 첩보부대가 인천에 침투하기 위해 북한군으로 위장했다는 설정이 실제와 가장 차이 나는 부분이다. 첩보 부대와 북한군의 마지막 전투도 영흥도가 아닌 월미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며, 임 중위와 홍 하사의 자결 장면도 반영되지 않았다.
아울러 영화에선 한국인으로 구성된 미군 소속 대북 첩보 부대인 켈로 부대의 활약상도 소개된다. '미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처(KLO)'를 뜻하는 켈로 부대는 실재했던 부대다. 1951년 4월 화천발전소 탈환 작전 당시 중공군 화력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보고하는 등 여러 전투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52년에는 항공기를 이용해 적 후방에 부대원을 낙하시키는 과감한 작전을 펼쳤고, 중령 계급의 소련 군사고문과 북한군 연대장급 2명을 납치해 오기도 했다. 인천상륙작전 때는 작전 하루 전 팔미도를 탈환한 뒤 등대를 밝혀 연합군 함정들이 무사히 인천항으로 들어올 수 있게 유도했다. 다만 영화에서처럼 해군 첩보 부대와 합동 작전을 벌였다는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