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영 대표 마이클 펠프스(왼쪽)가 10일 리우올림픽 접영 200m 금메달을 목에 걸고 생후 3개월 된 아들에게 입 맞추고 있다.

마이클 펠프스(31·미국)는 올림픽에 나갈 때마다 기계처럼 금메달을 쓸어담았다. 금메달을 신발 상자에 보관하는가 하면, “금메달 하나를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을 만큼 메달을 많이 땄다. 사람이라기보다는 물고기 같은 모습에 국내 팬들은 그의 이름에 물고기(fish)를 붙여 ‘펠피시’라는 별명을 짓기도 했다.

10일 아쿠아틱 스타디움에선 리우올림픽 수영 남자 접영 200m 결선이 열렸다. 그는 만 15세를 갓 넘겼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역대 미국 수영 최연소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이 종목으로 올림픽 무대에 처음 도전해 5위를 했다. 여드름이 남아 있던 소년은 31세의 아버지가 되어 다시 한 번 스타팅 블록(5번 레인)에 섰다. 바로 옆 4번 레인에 자리 잡은 헝가리의 타마스 켄데레시(20)는 펠프스가 올림픽에 데뷔했을 때 네 살이었다.

출발 총성이 울렸다. 미국 팬뿐 아니라 브라질 현지 관중도 펠프스를 응원했다. 그가 마지막 50m 구간을 헤엄칠 땐 환호가 절정에 달했다. 1분53초36. 본인이 가진 세계기록(1분51초51)엔 미치지 못했다. 막판 괴력의 스퍼트를 한 일본의 사카이 마카토(1분53초40)에게 거의 따라잡힐 뻔했다. 하지만 펠프스는 0.04초 차이로 올림픽 통산 20번째 금메달을 차지했다. 켄데레시(1분53초62)가 3위였다.

펠프스는 접영 200m 결선 경기가 끝나고 한 시간 뒤에 열린 800m 계영 결선에도 미국팀의 ‘앵커(마지막 네 번째 영자)’로 나와 미국의 우승(7분0초66)을 이끌었다. 21번째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펠프스는 8일 400m 계영 우승을 포함해 이틀 동안 출전한 세 종목에서 모두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자신이 보유한 역대 올림픽 최다 메달 보유 기록은 25개(금 21, 은 2, 동 2)로 늘렸다.

펠프스는 800m 계영까지 마치고 나선 스타팅 블록에 앉아 고개를 저으며 지친 표정을 지었다. 시상식에선 또 눈물을 보였다. 수차례 아랫입술을 깨물며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미국 국가가 끝나갈 무렵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국가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오, 성조기는 지금도 휘날리고 있는가” 부분에서 관중석의 누군가가 “오!”라고 크게 외쳤기 때문이다. 미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팬들이 홈구장인 오리올파크(캠든 야드)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이런 의식(儀式)을 한다. 오리올스의 ‘오’를 국가 가사의 ‘오(Oh)’에 오버랩하는 것이다. 볼티모어 출신인 펠프스는 오리올스의 팬이다. 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친구가 그랬다고 바로 알아차렸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펠프스는 시상식을 마치고 나선 관중석으로 갔다. 어머니, 아내와 차례로 포옹을 하고 나서 생후 3개월 난 아들 부머 로버트의 볼에 입을 맞췄다.

펠프스는 첫 경기 출전을 앞둔 지난 7일 미 USA 투데이에 "오랫동안 난 로봇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단일 대회 사상 최다관왕(금 8개)에 올랐던 2008 베이징올림픽 땐 "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도 모른다. 그저 수영만 한다"고도 했다.
펠프스는 수영장 밖에선 완벽하지 않았다. 음주운전으로 체포되고, 대마초를 피우다 적발됐다. 도박에 빠지고, 연예인 등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수영을 그만두고 나선 골프 선수에 도전했다가 포기했다. 그는 물을 떠난 지 2년 만에 "수영 없는 삶은 지루하다"며 다시 돌아왔고, 약혼녀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아들에게 올림픽에서 뛰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 무대로 돌아왔다.

‘수영 로봇’으로 살아왔을지 모르는 펠프스지만 이번 올림픽 무대에선 어느 때보다 ‘인간 냄새’를 많이 풍기고 있다. 펠프스는 “이제야 내가 스스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삶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번 올림픽이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펠프스는 12일 개인 혼영 200m에 출전한다. 우승을 장담할 순 없어도 메달을 따려는 ‘인간적인 욕심’은 여전히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