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이하 현지 시각) 오후 3시 40분, 리우올림픽 다이빙 경기가 열린 마리아 렝크 수영장 앞으로 검은색 차 2대(SUV·승용차)가 들어섰다. 앞선 SUV에는 브라질 국기와 함께 북한 인공기가 나부꼈다. 검은 양복 차림 남자 여럿이 한꺼번에 내려 주변을 살폈고, 이후 SUV 뒷문이 열렸다. 이어 김정은 정권 최고 실세로 꼽히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지 기자가 인사를 건네면서 '식사는 하셨느냐' '이번 대회 북한의 성적 목표가 뭐냐' '다이빙 메달을 기대하느냐' 등의 질문을 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경호원 4명은 팔을 내저으며 접근을 막았다. 북측 수행원으로 보이는 남성들은 "야, 야, 저리 비키라우"라며 언성을 높였다. 경기장 입구로 들어서기 전 기자가 '올림픽 방문 목적이 뭐냐'고 다시 묻자, 최룡해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올림픽에 구경하러 왔지 왜 왔갔어." 그가 내놓은 유일한 한마디였다.
지난 4일 리우 갈레앙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최룡해는 연일 북한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장을 찾고 있다. 이번 대회에 북한은 9개 종목 선수 31명을 파견했다. 최룡해는 개막 후 나흘 동안 6개 종목 경기장을 돌며 이들의 시합을 지켜봤다. 이날도 오전엔 다이빙 경기장에서 30㎞ 이상 떨어진 삼보드로무 양궁장을 방문해 여자 개인전에 나선 강은주를 격려했다. 이날 만난 북한 측 관계자는 "최 부위원장이 여러 종목 경기장을 찾으며 격려하고 있다. 선수들이 큰 힘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싱크로나이즈드 다이빙 10m 플랫폼 결선(북한 김국향·김미래 출전)이 열린 이날 최룡해는 경기장 2층에 앉았다. 그는 1라운드 6번째로 북한 선수들이 등장하자 허리를 곧추세우고 지켜봤다. 이들이 입수하자 최룡해는 곧바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전광판에 뜬 점수를 확인했다. 3라운드에서 두 선수가 8개 팀 중 가장 높은 점수(81.00)를 받았을 땐 가볍게 박수도 쳤다. 하지만 북한은 마지막 5라운드에서 큰 실수를 하며 4위에 머물렀다.
이날 그의 일정은 역도장에서 마무리됐다. 오후 7시부터 열린 남자 역도 69㎏급 경기를 지켜본 그는 북한 김명혁이 용상 마지막(3차) 시기에서도 바벨을 들지 못하며 실격하자 탄식했다. 역도는 이번 대회 북한이 가장 큰 메달밭으로 분류한 종목이다. 하지만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역도 영웅' 엄윤철(56㎏)이 지난 7일 은메달에 그치는 등 북한은 아직 금 맛을 보지 못했다.
당초 최룡해는 리우에 온 세계 정상급 인사들을 두루 만나며 활발할 스포츠 외교를 펼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는 응원과 관광 등으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룡해가 미셰우 테메르 임시 대통령 등 브라질 고위 인사들과 환담했다고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지난 7일 보도했으나, 브라질 외교부는 이를 부인했다. 최룡해는 8일 리우의 세계적 관광 명소인 예수상을 구경하기도 했다.
최룡해는 앞서 지난 4일 코파카바나 근처의 한 호텔에서 열린 IOC 만찬에 참석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권한대행, 반기문 UN 사무총장,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등이 모인 이 자리에 그는 늦게 도착했다. 취재진을 피해 지하 주차장으로 입장했다. 한 자원봉사자는 "(최룡해가) 가장 늦게 도착한 VIP였다"며 "예정된 시간보다 약 40~50분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