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더위가 유난하다. 더위로 입맛이 뚝 떨어졌을 땐 물에 말아 먹는 밥만 한 것도 없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여름철이면 물만밥을 즐겼다. 적어도 고려 시대부터는 물에 밥 말아 먹는 식문화가 존재한 듯하다.
고려 말 문인 이색(李穡·1328~1396)은 유난히 물만밥(水飯)에 관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그는 말린 생선(乾魚)을 선물 받은 뒤 '한더위에 가난한 살이 물에 밥 말면서/얼린 생선 말린 것이 매양 생각났는데'라는 시를 썼다. 조선 성종(成宗)은 신하들에게 "낮에 수반(水飯)을 올리는 것은 더운 날에나 알맞은 것(조선왕조실록 1470년 7월 8일)"이라고 말해 물만밥이 더울 때 먹는 음식임을 밝히고 있다. 조선 중기 사역원(司譯院)에서 만든 중국어사전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에는 '수반(水飯)·물만밥'이란 설명이 등장한다. 수화반(水和飯)·수요반(水
飯)으로도 불렀다.
물만밥에 어울리는 음식은 짭조름하게 소금 간해서 잘 말린 생선이다. 굴비는 여름내 먹는 음식이었다. 음력 3월쯤인 오사리 때 잡은 굴비는 알이 꽉 차 있어서 '오사리굴비'라 부르며 가장 맛있는 굴비로 알아줬다. 오사리굴비를 소금에 절이고 말려서 통보리 속에 보관하면 '보리굴비'라고 부른다. 통보리는 수분을 빨아들여 굴비의 습기를 제거해 상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보리굴비를 고추장에 찍어 시원한 물에 만 밥과 먹는 굴비자반은 서울 부자들의 여름 일상식이었다. 보리굴비 몸통만 찢어서 고추장에 2~3년 박아 만드는 굴비 장아찌도 고급 음식으로 인기가 많았다.
물만밥에는 갓 지어 뜨거운 밥보다는 남은 밥이나 일부러 식힌 밥이 제격이다. 마른 밥은 물에 말아도 퍼지지 않고 고슬고슬하다. 짭짤한 굴비를 매콤하고 달콤한 고추장에 찍어 물만밥과 함께 먹으면 입에서 내장까지 상쾌하고 달콤한 기운이 퍼지며 더위를 몰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