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7일 개봉 예정인 국산 애니메이션 ‘달빛궁궐’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달빛궁궐은 예고편을 공개한 이후 줄곧 지난 2002년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과 비교됐다.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이 남긴 수백건의 한 줄 평은 대부분 ‘표절이다’ ‘아니다’하는 갑론을박(甲論乙駁)이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의혹을 제기한 글들이 각각 수만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표절 여부를 떠나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애니메이션에 표절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례적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5)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10살 소녀 ‘치히로’가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혼령들의 세계에서 일하는 내용이다. 2001년 일본 개봉 당시 23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역사상 최고관객 기록을 경신했고, 최근 영국 BBC가 꼽은 ‘21세기 위대한 영화 베스트 100’에서 4위를 차지했다.
달빛궁궐은 주인공 ‘현주리’가 달빛궁궐을 지배하려는 ‘매화부인’의 계략을 마주하며 겪는 일을 담은 만화영화다. 김현주 감독은 “한 소녀가 창덕궁에 갇혀 하룻밤을 보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며 10년 전부터 기획했다”고 했다. 달빛궁궐은 MBC가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산업진흥원(SBA)과 공동으로 작품을 선정해 투자했고, 문화재청과 창덕궁이 추천한 작품이다.
달빛궁궐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측에선 ‘줄거리와 설정, 등장인물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주인공인 소녀가 우연히 현실에서 이상세계로 가면서 겪는 일을 소재로 한 것, 이상세계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나이 든 여성, 주인공을 적극적으로 돕는 소년의 존재 등에서 두 작품의 유사성을 찾았다. 그 외에도 “주인공의 외모가 판박이다” “가면 쓴 무사와 ‘가오나시’ 등 여러 캐릭터가 서로 비슷하다” “달빛궁궐의 아주 작은 궁녀 캐릭터(매화궁녀)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숯검댕이 일꾼’과 같이 행동한다”는 말도 나왔다. 매화궁녀는 일본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인형 ‘테루테루보즈(照る照る坊主)’와 겉모습이 같다는 지적도 받았다.
달빛궁궐 관계자들은 표절 주장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제작사 스튜디오홀호리의 서석준 대표는 “영화를 실제로 보면 불식될 논란”이라며 표절설을 일축했다. 실제로 두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소녀가 활약한다는 점은 같지만, 세세한 부분에선 차이가 크다. 치히로는 부모를 구하기 위해 취직해서 일하는 반면, 현주리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직접 맞서 싸운다. 달빛궁궐의 예고편만 보면 이런 차이를 알기는 어렵다.
김 감독은 “소녀인 주인공이 환상 세계에서 모험한다는 내용은 다양한 장르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내용”이라며 “비슷한 설정이 일부 있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매화궁녀는 쓰개치마를 쓴 여인을 단순화해 창작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배급사 NEW 관계자는 “달빛궁궐 그림체는 선과 동작, 표정의 세세한 면에서 일본 작품과의 차이점이 뚜렷하다”며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기반으로 한 매우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