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출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레흐 바웬사(73) 전 폴란드 대통령은 2일 "한반도 통일이 10년 내에 오기를 기원한다"며 "한국이 '영웅'이 되려 해선 안 되고 주변국 협력을 얻기 위한 실리에 집중하는 장기적 전략이 절실하다"고 했다.
바웬사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일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일 한국에 왔다. 2003년 방한 후 13년 만이다.
그는 "다음에 한국 올 때는 통일 한국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판단 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자신은 과거 소련과 맞섰던 경험밖에 없어 중국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은 소련과 전혀 다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은 구(舊)소련 붕괴나 통독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문화적으로도 오래된 국가이고 외부의 적과 싸우는 방법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실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바웬사 전 대통령은 "중국에 '당신들이 좋다. 하지만 이 부분은 좀 고치는 게 좋지 않을까' 식으로 친구처럼 접근하는 방법 말고는 외교 협상에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반대 세력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강해 세게 나가면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입장에서 입맛 당기는 방법은 아니겠지만 근사하게 보이는 영웅적인 방법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싸우는 방식을 영리하게 바꿔 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살아서 꼭 그 순간을 보고 싶다"면서 "이번 방한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웬사 전 대통령은 또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쏟는 북한 김정은에게 "한국을 한번 보라고 말하고 싶고, 사회주의 체제가 남아 있는 나라 중 성공한 나라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1980년대 폴란드 민주화 투쟁 이후를 예로 들었다. 그는 "당시 무력으로 싸웠던 사람들은 민주주의 진영이건 사회주의 진영이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며 "타협을 통해 협력했던 사람들만 높은 자리까지 오르고 살아남았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최순실 스캔들 등으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을 피하면서도 대신 자신도 과거에 깨닫지 못한 법질서와 정직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정당끼리 경쟁하지만 법체제를 지키며 싸워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젊은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지만 모럴이 무너진 정치판을 보며 환멸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심각한 상황을 농담처럼 얘기하길 즐기는 그는 "정치하고 싶은 이들은 몸에 메모리칩을 삽입해 모든 행동이 기록되도록 하고, 거짓말을 하면 공개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선소 노동자 출신인 바웬사는 동서 냉전 중이던 1980년대에 동구권 최초 합법 노조인 '자유연대노조'를 조직했다. 당시 사회주의 체제였던 폴란드에서 민주주의 노동운동을 이끌며 동유럽 전체 민주화의 초석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았다. 198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90년 폴란드 대통령에 선출됐지만 1995년 재선에 실패한 후 국제 평화운동에 몸담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