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81% 지금 당장 회사의 최우선 전략이 무엇인지 몰라
직장인 업무 중 50%는 가짜 일… 보고서 작성, 업무 보고만 줄여도 이직 감소
경영진 가짜 일 가려내려면, 직원들을 회사의 자발적인 '스토리 텔러'로 만들어야
늦은 시간 식당, 술집에 가면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업무 관련 통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읽고 있다. 이른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서도 이런 모습은 흔하다. 공항과 기차역에서는 업무차 낮 동안에 먼 도시로 출장을 갔다가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업무에 치이는 바쁜 일상은 현대 직장인의 모습이 됐다. 우리는 그렇게 일의 규제를 받으며 일에 매여 산다.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든다. 이렇게 온종일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정말 필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신간 ‘가짜 일 vs. 진짜 일(원제 Fake Work)’의 저자 브렌트 피터슨(Brent Peterson·68)은 근로자의 대다수가 회사의 전략과 일치하지 않는 ‘가짜 일’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프로젝트나 과제에 매달려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정작 이것이 회사의 목표를 달성할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
“직원들의 81%는 스스로 회사의 최우선 순위에 몰입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떤 목표와 우선순위를 가졌는지 모르기 때문이죠. 심지어 직원 73%는 자신이 하는 일이 회사의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피터슨은 조직의 업무 전략을 지원하는 ‘워크 잇셀프 그룹(Work Itself Group)’의 공동설립자이자 회장으로 미국 매리어트 경영대학원 교수로 30년 넘게 인적자원개발 분야에서 활동했다. 포천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3000번이 넘는 워크숍을 진행했고, 20여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저자 스티븐 코비는 “가짜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면, 업무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라고 추천사에 적었다.
피터슨은 지난달 조선비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CEO가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뱃지를 직원들 가슴에 달아주어도, 올해의 전략을 벽에 써 붙여도 직원들은 회사의 목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짜 일에 매인다. 직원들이 지금 당장 가짜 일을 멈추고 진짜 일을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짜 일이 무슨 뜻인가요?
“회사의 전략과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히 일인데,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 오히려 반대가 되기도 하는 업무들입니다. 성과 없이 시간만 되면 열리는 회의·미팅, 끊임없는 서류작업, 상사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하는 업무일지, 갈등만 조장하는 회식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 같지만, 우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너무나도 많은 회사에서 많은 사람이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일에 매달립니다. 끊임없는 가짜 일에 시달리고 있어서입니다. 쉽게 말해. 회사의 자금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죠.”
◆ 직원 중 92% 올해 작년보다 더 많이 일했다고 생각해
-왜 사람들이 가짜 일을 하는 거죠?
“보상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정작 회사의 자금을 낭비하는 쓸데없는 일이지만, 나의 월급은 늘어나게 하고, 승진할 수 있는 표면적인 수치들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일하는 시간에 따라서 돈을 받기 때문에 20분짜리 일을 2시간 분량으로 만들어 더 많은 보상을 받습니다. 밤을 새웠다고 칭찬을 받기도 하고,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일수록 더 인사 고가가 좋게 나옵니다.
제가 만난 한 대기업 직원은 같은 팀 동료가 새벽 2시까지 온라인으로 일했다는 말에 경쟁심이 생겨 사내 메신저를 밤새도록 띄워놓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그 덕분에 다음번 회의에서 상사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실 메신저 예약을 걸어놓았을 뿐, 자고 있었는데 말이죠(웃음).
주당 40시간 근무는 이제 옛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미국 기업은 주 60시간 근무의 세계로 넘어왔습니다.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지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더 오래 일하는 것 처럼 보이려고 애쓰죠. 쓸데없는 미팅과 콘퍼런스를 늘려 일만 부풀리기도 합니다. 일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 보상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바쁜 듯 보이면 그걸로 되는 겁니다.”
-경영진이 가짜 일을 진짜 일과 구분하기 어렵나요?
“사실 진짜 일과 가짜 일은 언뜻 봐선 구분이 안 갑니다. 가짜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이 오히려 유능해 보이는 상황까지 있습니다. 만약 가짜 일이 확연히 구분되는 단순한 사안이었다면, 제가 ‘가짜 일 vs. 진짜 일’을 집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책을 집필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 즉 가짜 일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죠(웃음).
가짜 일은 팀과 회사의 자금을 축내고 있어, 모든 CEO가 지금 당장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겉으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경영진이 원하는 방향과 오히려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직원이 가짜 일을 하고 있나요?
“당신은 얼마나 많은 직원이 회사의 목표를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수년간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원들의 절반 수준인 56%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직원의 81%는 회사의 지금 당장 최우선 전략이 뭔지 모릅니다. 심지어 73%는 자신이 하는 일이 회사의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53%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사내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아주 참담한 결과입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수치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직원이 올해 작년보다 더 많이 일했다고 답했을까요? 정답은 92%입니다. 거의 모든 직원이 올해 작년보다 더 많이 일했다는 거죠. 즉, 많은 노동자가 매년 더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지만, 정작 업무의 방향과 의미도 모른 채, 가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가짜 일을 어떻게 없앨 수 있나요?
“가짜 일을 모두 없애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사기 진작을 위한 동료 간의 친목 도모, 세금 계산을 위한 서류작업 등 분명히 필요한 가짜 일도 있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내용은 가짜 일이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현대 직장인 업무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라는 겁니다. 그래서 가짜 일의 10%를 줄이고, 그 시간에 진짜 일을 하자는 겁니다.”
◆ 직원들 자신이 회사의 ‘스토리텔러’로 나설 수 있어야
-어떻게 가짜 일의 10%를 줄일 수 있나요?
“일단 본업에 부수적으로 더해지는 서류작업과 지나친 보고 업무부터 줄여야 합니다. 예전에 한 엔지니어링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컨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경영진은 좀 더 효율적으로 일을 계획하고 정리하지 못하는 엔지니어들에게 잘못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낸 진범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엔지니어들이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장문의 활동 보고서가 문제였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일일 업무일지, 주간·월간 보고서 등 다양한 보고 문서를 작성하느라 매월 보고서 준비에만 4일 정도를 투자하더군요. 전체 업무 시간의 20%나 되는 시간입니다. 경영진은 이 보고서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꼼꼼히 살펴본 결과 월간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대부분 일일 업무 일지에 이미 담긴 내용을 베끼거나 새로운 문장으로 다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뭐를 쓸지 몰라 언제 어디서 일했는지 등 신변잡기로 페이지를 가득 메운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보고서에서 요구되는 정보는 단 세 가지입니다. 해결돼야 할 문제, 시도한 방법, 그리고 결론. 그래서 우리는 15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 대신 2페이지 분량의 요약문을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월간 보고서는 아예 없애버렸고요. 그러니 엔지니어들의 보고 시간은 25%로 확 줄었고, 각자가 매달 진짜 일을 하는데 3일을 더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업무 시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닙니다. 가짜 일을 없앰으로써 본업에 충실할 수 있게 된 엔지니어들이 일을 즐기게 된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직이 줄어드는 등 직원 유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됐습니다. 사실 이전까지는 연구를 하고 싶어 엔지니어가 된 직원들이 지나친 서류 업무에 자괴감이 들어 그만두는 경우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문 컨설팅을 받지 않는 이상 경영진이 가짜 일을 가려내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소통하는 조직을 만들면 됩니다. 어느 회사에든 찾아가서 직원에게 ”현재, 무엇이 가장 큰 문제죠?”라고 묻는다면, 아마 ‘부족한 소통’이라는 대답이 나올 겁니다. 이는 누군가에게 일의 진행 상황을 제때 알려주지 않아서 프로젝트의 역효과를 내거나, 정보는 넘치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결국 많은 사람이 ‘겉으로 보기엔 바쁘지만 정작 회사엔 별 도움이 안 되는’ 가짜 일을 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직원끼리 대화를 나누지 않을 경우, 부서에 파벌이 생길 수 있으며, 회사의 전략과 목표에 부합되는 진짜 일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업 임원 중 상당수가 소통을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사무실 복도에 비생산적인 농담이 넘쳐난다고 보기 때문이죠. 따라서 ‘떠들지 말고 자리로 돌아가 일하라’는 사고방식을 조장합니다. 사실 직원들이 가짜 일에 시달리고 있는지, 또는 가짜 일을 만들어 진짜인척 꾸미는지는 소통 없이는 알 수 없는 겁니다. 결국 늘어난 가짜 일은 회사의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지고, 외부 컨설팅을 받아야 하는 큰 비용으로 이어지죠.”
-소통하는 회사는 어떤 모습인가요?
“좋은 실적을 내고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의 경영진은 경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요. 이런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합니다. 직원들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직장 화폐’ 같은 소중한 개념입니다.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가 어떻게 좋은 성과를 냈는지, 회사가 어떻게 직원들을 마치 가족처럼 대우하는지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생산되는 곳이 좋은 회사라는 증거입니다.
회사는 정보가 조직의 구석구석까지 자유롭게 흘러들게 해야 하는 유기체입니다. 경영진이 특정 의사소통을 통제하고, 없애려고 한다면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데 방해만 될 뿐입니다. CEO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소통이 잘 되는 활기찬 환경을 조성하고, 그들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