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운영하는 경영주가 장사가 잘돼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아마도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식당을 넓히고 더 많은 종업원을 고용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2호점을 새로 열고, 또 한식뿐만 아니라 일식, 양식당을 추가로 열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회사도 성장하다 보면 처음 창업 당시의 사업 이외에 여러 가지 사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겨서 직접 투자를 늘리는 경우도 있고, 다른 회사들을 인수·합병해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사의 규모가 크지 않을 땐 이런 다양한 사업을 하나의 회사 내에 여러 개의 사업부로 두고 운영해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업 범위가 넓어지고, 사업 간의 독립성이 중요해지는 경우는 사업부들을 별도 회사로 분리시켜 자율적인 경영을 도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독립된 회사들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회사가 있는데, 이를 지주회사(Holding Company)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지주회사는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 회사의 사업을 지배하는 회사를 지칭합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제2조 2에서도 주식의 소유를 통하여 국내 회사의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를 (순수) 지주회사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지주회사는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회사가 모회사에 지급하는 배당금, 브랜드 명칭 사용료(로열티) 등이 주된 수입원이 됩니다.
◇지주회사는 사업부별 성과 평가에 유리
지주회사로 재편하는 데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선 전략적 경영 기능과 사업 기능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구글이 인공지능, 무인 자동차 등 점차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이를 구글이란 단일 회사 내에서 수행하기가 어렵게 되자 알파벳이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한 것은 이런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구글은 알파벳의 가장 큰 자회사가 되고, 나머지 신규 사업부들도 각기 독립적인 자회사로 재편됐습니다.
지주회사 체제의 또 다른 장점은 각 사업부 담당 경영진의 실적 평가가 쉽다는 것입니다. 사업부 체제로 있을 땐 각 사업부의 실적을 객관적 지표로 평가하기 어려운데, 별도의 자회사로 떼어 놓으면 해당 자회사의 재무제표를 통해 자회사 경영진의 실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실적에 근거해 보너스 지급 등 좀 더 효과적인 보상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가전회사인 제네럴 일렉트릭(GE)도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GE는 우리가 익숙한 가전제품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을 포함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이는 각각 독립적인 자회사가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지주회사 체제 선호
지주회사는 크게 사업지주회사와 순수지주회사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업지주회사는 별도로 자체적인 사업을 영위하면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경우입니다. 예전에 에버랜드는 놀이동산 운영을 주된 사업으로 하면서 동시에 삼성생명의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했는데, 이는 사업지주회사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순수지주회사는 다른 사업은 하지 않고 다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주된 사업 목적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홀딩스' 또는 'ㅇㅇ지주회사'라는 회사명을 가진 회사들은 대부분 순수지주회사로 볼 수 있습니다.
순수지주회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책은 그동안 계속 변해왔습니다. 1987년 공정거래법 1차 개정 때는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의 일환으로 순수지주회사의 설립을 금지했습니다. 지주회사를 통해 경제력 집중 현상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지주회사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은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바뀌었습니다. 지주회사가 기존의 다단계 출자 또는 순환 출자 구조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고 투명한 형태라고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1999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순수지주회사의 설립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일정한 행위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제도 변경에 따라 2000년대 들어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집단들이 점차 늘어나게 됐고, 현재는 LG·SK·두산·CJ를 비롯한 상당수 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를 갖췄습니다.
◇미국은 대부분 100% 자회사, 한국은 지분 20% 넘으면 돼
현행법상 자산 총액이 1000억원 이상이면서 총자산의 50% 이상을 자회사의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지주회사로서 신고를 해야 합니다. 지주회사가 할 수 없는 행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것입니다. 지주회사가 빚을 내서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법의 취지입니다.
또 자회사에 대해서 일정 비율 이상(상장 자회사는 20%, 비상장 자회사는 40%)의 지분을 보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순환·수평 출자 금지, 손자회사 이상 다단계 출자 금지 등의 규제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GE·구글 같은 미국의 지주회사 체제와 LG·SK·두산·CJ 같은 한국의 지주회사 체제 간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지주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대부분 100%입니다. 이에 따라 자회사들은 모두 비상장이고 지주회사만 주식시장에 상장돼 거래됩니다.
반면 한국 지주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최소한 20%만 넘으면 되기 때문에 100% 자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지주회사의 자회사이지만 별도의 상장 회사로 존재하면서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우도 꽤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한국형 지주회사는 미국식 지주회사보다는 오히려 다단계 출자 구조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큰 문제는 각 상장 자회사의 주주 간에 있을 수 있는 이해관계의 상충입니다.
예컨대 지배 주주 일가의 지분이 상대적으로 많은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 간에 거래가 있을 경우 혹시라도 정당하지 않은 가격에 거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미국과 비슷한 지주회사가 있는데, 바로 금융지주회사입니다.
지주회사 전환, 어떤 과정 거치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주회사는 2단계 과정을 거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됐습니다. 1단계는 기존 회사에서 지주회사가 될 회사(A)와 사업을 직접하는 자회사가 될 회사(B)를 인적 분할하는 것입니다. 2단계는 A사가 B사의 지분을 공개 매수해 자회사로 만들면 A사는 지주회사가 되는 겁니다.
우선 '인적 분할'이란 법률상 '합병'의 정반대 개념입니다. 하나의 회사를 A, B 두 회사로 나눠 별개의 회사를 만듭니다. 그런데 주주 구성은 똑같습니다. 예컨대 기존 회사 주식 100주를 갖고 있던 주주는 A사 주식 100주, B 사 주식 100주를 갖게 됩니다.
그다음은 지주회사가 될 A사가 B사를 자회사로 만들기 위해 B사 주식을 공개적으로 매수합니다. B사 주주들이 지분을 넘기면 A사 신주(新株)로 교환해 주겠다고 하지요. 이때 일반 주주들은 공개 매수에 잘 응하지 않고, 지배 주주 일가만 적극적으로 응합니다. 왜냐하면 통상 우리나라에선 공개 매수 시점까지 자회사가 될 회사(B사)의 주가는 오르고 지주회사가 될 회사(A사)의 주가는 하락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주주들은 지배 주주가 어떻게든 싸게 사려는 지주회사 주식보다는 사업으로 돈을 벌 회사의 주식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됩니다. 상대적으로 비싼 자회사 주식을 상대적으로 싼 지주회사의 주식으로 교환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배 주주 일가는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평균 2배 정도 증가시킵니다. 대신 사업 자회사의 지분은 거의 포기합니다.
지배 주주는 늘어난 지주회사 지분의 절반쯤을 향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로 납부해도 기존의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주회사 전환은 승계를 염두에 둔 기업집단에서 일어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방현철 기자, 김우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