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긴 한가?'
영화 '내부자들' 이병헌 대사가 머리를 스쳤다. 지난달 7일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우병우 팔짱 사진'을 보는 순간이었다. 고운호(27)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는 이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전날 밤 서초동 한 빌딩 옥상에 올라 5시간 동안 서울중앙지검 11층 조사실을 지켜봤다. 600㎜ 망원렌즈에 2배율 컨버터로 최대한 줌을 당기고도 육안으로 겨우 물체의 움직임 정도만 감지할 수 있는 300m 거리. 게다가 어두운 밤이었다. "뷰파인더에 작은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무조건 셔터를 눌렀어요. 흔들릴까 봐 숨도 참았죠." 5시간 동안 촬영한 사진은 총 900장, 그중 한 장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우병우 팔짱 사진'은 사진 애호가들 사이 더욱 화제가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사진 촬영 장소와 장비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다. "제대로 된 군인이 저격총으로 적장(敵將)을 저격하는 수준"이라며 고 기자를 '스나이퍼'에 비유하기도 했다. '우병우 세트'란 말도 생겨났다. 한 카메라 렌털 업체는 촬영에 사용된 600㎜ 망원렌즈를 무료 체험해볼 수 있는 이벤트를 열면서 SNS에 '특종사진대포렌즈' '특종사진' '우병우'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고 기자가 사용한 사진 장비를 '우병우 세트'로 부르는 마케팅 전략도 등장했다.
대특종 사진의 주역이지만, 고 기자의 출발은 미미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받아온 '똑딱이카메라'가 첫 만남이다. 사진을 찍겠노라 마음먹은 건 대학 진학을 앞두고서다. "해군사관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성적이 따라주질 않았어요. 부모님도 반대하셨고. 그래서 더 열심히 매달렸죠. 공부도, 사진도." 중앙대 사진학과에 진학해 장학금을 타서 부모님 반대를 누그러뜨린 뒤 본격적으로 사진기자의 꿈을 키웠다. 재학 시절 중대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사진학과 출신 최초로 학보사 편집장을 지냈고, 군 복무도 사진병으로 마쳤다. 졸업을 앞둔 2014년 12월 조선일보 객원기자로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눈보라와 비바람이 몰아쳐도, 한밤중이든 꼭두새벽이든 현장을 뛰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재미있으니 포기할 수 없었어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사진 한 장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사진 한 장의 힘은 크다. 글자 한 줄 없이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지난해 9월 터키 해변으로 떠내려온 시리아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 사진은 시리아 난민 사태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리며 각국 지도자들을 움직였다. 1972년 베트남전 당시 네이팜탄 폭격에 화상을 입고 알몸으로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오던 소녀의 사진은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알렸다. 카메라 든 이들이 한 장의 사진에 목숨 거는 이유다. 오늘도 단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셔터를 누른다. 수천 번, 수만 번. 사람이 보지 못하는 진실을 렌즈가 먼저 포착한다. 셔터 한 방이 사람과 사랑과 삶을 포획한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