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도 역사도 세월 따라 잊히고 사라진다. 일기장 쓰지 않고 기록도 남기지 않으면 그 흔적도 사라지니 할 수 없다. 오직 기억뿐. 강원도 삼척 바닷가에는 그런 아릿한 역사와 아릿한 추억이 몇 군데 있다.
김종오의 추억, 속섬
김종오는 강원도 삼척 원덕 월천리 사람이다. 올해 쉰여덟 살이다. 월천리에서 나서 지금까지 월천리 바닷가에 산다.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으며 산다. 요즘은 마늘밭에 파종하느라 바쁘다. 월천리에는 모래톱이 있다. 가곡천이 동해 바다와 만나 만든 모래톱이다. 몽돌 가득한 해안에 밀물이 들면 꼭 섬 같아서 사람들은 속섬이라 불렀다. 섬에는 소나무가 숲을 이뤘다. 김종오가 말했다. "그 섬에서 농사도 짓고 배도 띄웠다. 맑고 고요한 밤에 달이 뜨면 달빛이 어찌나 예쁜지. 그래서 내 집도 그 섬 쪽으로 짓고 살고 있지."
2007년 마이클 케나라는 영국 사진가가 속섬을 촬영하고 작품을 발표했다. 소나무가 많으니 케나는 작품 이름을 '솔섬(Pine Tree Island)'이라고 붙였다. 사람들은 속섬을 솔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김종오가 말했다. 두 가지다. 첫째. "마을 입구 다리 이름은 내가 우겨서 '속섬교'라고 지었다. 그래도 진짜 이름은 남겨둬야지." 둘째. "케나 사진과 똑같이 찍느라고 하루에 200명씩 와서 사진을 찍어갔다. 그런데 저 꼬라지 봐라. 저게 사진 찍을 풍경인가."
솔섬 뒤편으로 큼직한 가스 저장 시설이 솟아 있는 것이다. "속섬은 해치지 않겠다고 시에서 말했는데, 섬을 가만 놔두겠다는 약속은 지켰으니 뭐 이건." 솔섬 풍경은 영원히 사라졌다. 김종오가 품던 추억도, 김종오가 지은 민박집을 찾던 열성 사진가들 발길도.
신라 장군 이사부
세상에 사라진 것들,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기 505년 법흥왕 왕명을 받든 신라 장군 이사부가 삼척에 있던 실직국(悉直國)을 복속시키고 이어 강릉에 있던 옛 예국 땅 하슬라주를 복속시켰다. 512년에는 삼척에서 정동으로 130㎞ 떨어진 우산국(于山國)을 복속시켰다. 미리 제작한 초대형 목각 사자상 아가리에 불을 붙이고 화살을 쏴대니 혼비백산한 우산국 사람들이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이사부 함대가 출항한 항구는 논란이 있다. 삼척항이라는 설, 오분항이라는 설, 그리고 강릉 경포대 부근이라는 설이 떠다닌다. 오분항에 그 출항 기념비가 서 있으니 2016년 겨울 현재까지는 오분항이 승리다.
사라진 고대국가, 창해삼국
고구려가 점령한 강릉 땅 예국, 이사부가 복속시킨 삼척 땅 실직국, 그리고 울진에 있던 파단국 세 나라를 창해삼국(滄海三國)이라 한다.
1988년 1월 20일 울진 죽변항 옆 논에서 발견된 봉평리 신라비 내용에도 이 국가들이 나온다. 파단국으로 유배된 옛 실직국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진압하고 곤장을 치고 소피를 뿌려 제사를 지냈다는 대목이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실직국 부흥파 가운데 진씨(秦氏) 가문이 일본으로 망명했다고 전한다. 1990년 한 무리 일본인들이 비석을 보겠다고 울진을 찾았다. 이들은 자기네 성씨를 秦이라고 쓰고 '하타'라고 읽었다. 비석에 있는 울진 옛 지명 '파단(波但)' 또한 일어로 '하타'라 읽었다. 수수께끼의 고대국가 실직국은 그렇게 다시 흔적을 찾았다.
우스운 역사, 실직군왕릉
그 신라도 망했다. 서기 935년이다.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왕건에게 공손하게 나라를 갖다 바치고(그래서 시호가 공경할 경(敬), 따를 순(順), 경순왕이다) 개경에서 살다 죽었다. 장남 마의태자는 신라 부흥군을 모집하며 금강산까지 북상하다가 사라졌다. 여덟째 아들 추(錘)는 삼척 땅을 선물 받고 살다 죽었다. 추의 아들 김옹위가 죽자 고려 왕실에서는 그에게 실직군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실직군. 바로 신라에 의해 사라진 그 나라 이름이다. 자기네가 멸망시킨 신라 왕조 후손에게 신라가 멸망시킨 그 나라 이름을 붙여놨다.
삼척 공양왕릉과 사래재
천년 왕국 신라를 멸망시킨 고려도 망했다. 475년 만인 1392년이다. 그 흔적 또한 삼척에 날카롭다. 이성계 세력은 우왕과 창왕을 왕씨가 아니라 요승 신돈의 자식들이라며 폐위시키고 먼 친척 왕요(王瑤)를 왕위에 앉혔다. '죽어도 왕이 되기 싫다'던 중년 사내였지만 어찌하겠는가. 결국 3년 만에 왕요는 '어리석다'는 이유로 폐위되고 유배를 당한다.
마지막 유배지가 삼척 바닷가였다. 그리고 한 달 사흘 만에 이성계가 보낸 자객에 의해 목 졸려 죽었다. 목 졸려 죽은 그 고갯길 이름이 사래재[살해(殺害)재]다. 그가 살던 마을이 궁촌(宮村)이다. 궁촌에는 공양왕릉이 있다. 석물도 없고 혼령이 드나드는 침도도 없다. 경기도 고양에도 공양왕릉이 있는데, 삼척 사람들은 삼척 왕릉에는 공양왕 목이 묻혀 있다고 믿고 있다. 조선 왕조는 3대 임금 태종 때 왕요에게 공양왕이라는 시호를 내려줬다. 공손하게(恭) 양보했다(讓)는 뜻이다.
사내의 무덤을 뇌리에 각인해두고 직선거리 19㎞, 도로로 31㎞ 북서쪽 첩첩산중 무덤 하나를 찾아간다. 준경묘(濬慶墓)다. 조선 왕조가 500년 동안 찾아다녔던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의 무덤이다.
백우금관의 전설과 용비어천가
전주에 살던 무관 이안사는 한 상급 관료와 기생을 두고 다투다 식솔 170호를 이끌고 삼척으로 이주를 했다. 이안사는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다. 1253년 그 관료가 순찰사로 삼척에 온다는 말에 '앉아 죽느니' 하며 의주로, 함흥으로, 원나라 땅으로 이주했다. 이후 후손들은 다루가치라는 원나라 세습 관리로 살며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웠다.
삼척에 정착한 지 한 해 만에 아버지 이양무가 죽었다. 이안사가 산중에서 묏자리를 고민하는데, 한 도승이 지나가며 이랬다. "소 백 마리 제사 지내고 금으로 관을 쓰면 5대에 제왕이 날 자리네." 가난한 이안사가 백(百) 마리 대신 흰(白) 소를, 황금 대신에 금빛 귀리 짚으로 관을 써서 장사를 지내니, 훗날 고손 이성계가 왕이 되었다. 백우금관(百牛金棺) 신화다. 훗날 용비어천가 가사 '육룡이 나라샤'는 목조로 추증된 이안사부터 태종 이방원까지 여섯 왕을 칭송하는 말이다.
'그 육룡이 바로 이곳 삼척에서 잉태됐다'고 조선 왕실은 규정했다. 왕실 정통성 확보를 위해 더없이 중요한 곳이었다. 이안사가 삼척을 떠난 지 139년이 흘렀으니 무덤 위치는 잊힌 지 오래였다.
왕조 개창과 함께 무덤 수색 작업이 개시됐다. 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세종 때 삼척에서 이양무의 무덤을 찾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증거가 부족했다. 선조 때에 또 찾았다는 기록이 나오고, 이후 도처에서 무덤을 찾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수색 작업은 500년 넘게 계속됐다. 집요했다.
1899년 7월 11일 흐린 날,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이양무 무덤 수색 완료를 선언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날 고종은 무덤에 준경묘라 이름을 붙이고 비문을 직접 썼다. 태조 때부터 찾아 헤매던 시조 묘에 대한 추적과 왕실 정통성 확보 작업이 그날 완료됐다. 507년 만이다. 그리고 11년 뒤인 1910년 8월 29일 나라가 망했다. 경술국치(庚戌國恥)라 부른다.
그래서 문득 삼척을 보았다. 솔섬 사라진 월천리에서, 507년 동안 정통성을 찾아 헤매다 11년 만에 망한 나라를 보았다. 월천리 농부의 배신감을 보았다. 아, 나라를 넘기는 데 간여한 내각서기관장 한창수는 그날 훈장을 받았다. 훗날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와 은사금 2만5000원을 받았다. 여기까지다.
[삼척 여행수첩]
〈답사 순서〉
1.준경묘: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의 묘소. 대한제국 황제 고종 대에 이곳이 이양무의 묘소로 확정돼 대대적인 정비작업을 벌였다. 입구에서 한 시간 거리. 낙락장송 금강송 숲에 싸여 있다.
2.이안사 집터: 준경묘 입구에서 왼편으로 차량으로 5분 거리. 이정표 있음. 이양무의 부인 묘인 영경묘도 부근이다.
3.실직군왕릉: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손자 김옹위의 묘.
4.공양왕릉: 이성계가 보낸 자객 손에 목이 졸려 죽은 고려 마지막 왕의 무덤. 근처에 공양왕이 '살해'된 고개 '사래재'가 있다.
5.해신당공원: 파도에 목숨을 잃은 처녀 애월이를 기리는 사당과 공원. 사당과 공원에는 남근(男根)투성이.
6.오분항: 신라 관료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 정벌을 위해 함대를 출항시켰다는 항구. 삼척항 옆에 있다.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도 있다.
7.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울진 봉평리에서 발견된 신라 고비(古碑)를 전시한 전시관. 진흥왕 순수비보다 오래된 비석. 발견 유래부터 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