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공사가 규정과 다르게 외국인 센터를 두 명 쓰고 있다."
최근 프로농구(KBL)엔 이런 농담이 나온다. 구단별로 규정상 193㎝가 넘는 장신 외국인을 단 한 명만 쓸 수 있는데 안양 KGC인삼공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스개를 탄생시킨 이는 '외국인 선수급'의 활약을 펼치는 인삼공사의 센터 오세근(29·신장 200㎝)이다. 원주 동부 김주성(37)에 이어 국내 센터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세근은 올 시즌 국내 선수 가운데 득점 2위, 리바운드 2위를 기록 중이다. 오세근의 활약에 인삼공사는 서울 삼성과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근 인삼공사 홈인 안양체육관에서 오세근을 만나 외국인 센터가 주름잡는 KBL에서 살아남은 법에 대해 물었다. 그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아프니까 센터다."
오세근의 손톱은 검게 물들어 있다. 왼쪽 종아리는 멍이 빠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누르스름했다. 그는 "매 경기 외국인 선수들과 몸싸움을 하다 보면 할퀴고 깨지고 부딪쳐 손가락부터 팔, 엉덩이, 허리가 온통 멍투성이가 된다"고 했다.
KBL이 '한국인 센터 황무지'가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단순히 키 문제는 아니었다. 대학 시절 정상급 센터였던 선수들도 KBL에 오면 외국인 선수와의 경쟁에서 밀려 골밑 대신 외곽을 맴돌았다. '센터 기피 현상'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오세근은 끊임없이 골밑을 파고든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골밑에서 몸을 부딪치면서 하는 플레이를 선호했다"며 "힘들지만, 그래도 그게 더 좋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오세근을 두고 "외국인 선수와 대등하게 몸싸움을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한국인 센터"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오세근은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았다. "힘으로만 하면 질 수밖에 없어요. 같은 키라도 (외국인 선수들은) 덩치도 더 크고 몸무게도 더 나가고, 심지어 점프력도 훨씬 좋아요.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특히 까다로운 외국인 선수가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어휴. 다 힘들어요. 안 힘든 상대가 없어요"라고 했다.
외국인 센터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찾은 오세근의 해법은 "몸 대신 머리를 쓰는 것"이었다. 그는 "힘으로만 덤비면 경기도 안 풀리고 부상만 당한다"며 "외국인 센터들이 쉽게 볼을 잡지 못하도록 쉴새 없이 움직이고 손놀림을 빠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오세근은 누구보다 30분씩 일찍 경기장에 나와 몸을 풀고, 경기 후에는 자기의 경기 영상을 모두 돌려 보는 '복습 마니아'다.
지금은 생존을 위해 절치부심하지만, 프로에 오기 전까지 오세근은 천하무적이었다. 중앙대 2학년이었던 2008년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그해에 중앙대가 대학농구 최다 연승인 52연승을 달성하는 데 앞장섰다. 2010년 대학리그 상명대와의 경기에서는 국내 공식 경기 사상 최초의 쿼드러플 더블(주요 공격·수비 네 부문에서 두 자릿수 기록)을 세웠다. 14점, 18리바운드, 13어시스트, 10블록슛이었다. '오세근 드래프트'로 불렸던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선 모두의 예상대로 전체 1순위로 인삼공사에 지명됐다. 2011-2012 시즌 신인왕과 챔피언 결정전 MVP도 그의 차지였다.
하지만 이후 우승 반지는 추가되지 않았고, 왼쪽 무릎과 오른쪽 발목 수술을 받아야 했다. 지난해에는 대학 시절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사실이 적발돼 출전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정상과 바닥을 모두 경험한 오세근은 올 시즌 다시 정상을 노린다. 그가 말했다. "두 달 전 아들딸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프로에 온 이후로 팀 분위기도 가장 좋고요. 올 시즌 챔피언이 되는 자리에서 우리 쌍둥이를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