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과학실에서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려 녹말의 색깔 변화를 관찰했던 기억이 나는가.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똑같은 녹말 반응 실험에 ‘아이오드(Iodine, I)’ 용액을 사용한다고 배운다. 지난 2005년 이후 새로 나오는 교과서부터 원소 용어 표기 방식이 독일식에서 영어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왜 원소 용어 표기법을 바꾸게 됐으며, 새 용어가 실생활에 얼마나 적용됐는지 알아봤다.
원소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순수 물질을 뜻하며, 원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를 원자라고 한다. 지난해 11월 8일 원소 4개가 추가로 공식 이름을 얻으면서 지구 상에서 발견된 원소는 총 118개가 됐다. 각 원소는 이름뿐 아니라 원자번호와 원소기호를 가진다. 예컨대, 금(Aurum)의 원자번호는 79번, 원소기호는 이름의 앞글자를 딴 ‘Au’이다.
원자번호 1번부터 92번까지는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이고, 여기서 원자핵 내부 양성자의 수가 적은 순에서 많은 순으로 번호를 매긴 것이다. 즉, 원자번호 1번의 수소는 가장 적은 양성자의 수(1개)를 가지고 있다. 그 나머지 원자번호 93번부터 118번까지는 인위적으로 만든 원소이다.
원소의 이름은 최초 발견자가 고대 신화, 대륙·국가, 저명한 과학자 등에서 따와 명명했다.
원소 용어 바뀐 까닭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현재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지난 2005년 일부 원소 용어를 고친 다음 한국산업표준(KS) 규격으로 제정했다. 기존 용어는 독일식 발음으로 표기된 것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 교과서를 통해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이에 따라 왜색을 띤 용어이자 영어로 소통하는 국제 현실과도 동떨어진 용어라고 판단, 국제 순수 및 응용화학연맹(이하 IUPAC)*에서 정한 영어 발음으로 표기법을 바꾸었다.
새 표기법이 고시된 당시에는 갑작스러운 변경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용어와 병행 표기를 허용하고, 초·중·고 교과서나 각종 서적은 점차 바꿔 나가기로 했다. 이후 2013년 개정된 교과서에 영어식 원소 용어가 전면적으로 등장했다.
어떻게 바뀌었나
바뀐 지 10여 년, 학계 이견 여전하다는데
학회에서는 구 용어와 새 용어를 두고 이견이 분분하다. 대한화학회는 IUPAC가 인정하는 용어를 따르며, 이를 '무기화합물 명명법'이라는 간행물로 발행해 교육부의 교과서 편수관실에 제출하고 홈페이지에도 공개하고 있다. 원소번호 11번 '소듐(Sodium)'과 19번 '포타슘(Potassium)'을 각각 '나트륨(Natrium)'과 '칼륨(Kalium)'으로 병행 표기하지 않는다. 25번 '망가니즈'와 53번 '아이오딘' 역시 '망간'과 '요오드'를 옛 이름으로 여긴다.
반면, 한국생물과학협회에서 발간한 생물학 용어집(2014년)에는 '방사성 아이오딘(Radioiodine)'이 아닌, '방사성 요오드'라고 쓰여있다. 새 용어를 쓰지 않는 것과 관련해 "일제의 관행이 아니라 독일 학자들이 처음 발견한 효소이기 때문에 명칭의 선점(先占) 원칙에 따라 독어 발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교육현장에서도 새 용어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랜 세월 구 용어로 수업을 진행해 하루아침에 새 용어로 가르치는 것을 어색해하는 교사들도 일부 있지만,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헷갈린다. 교과서에는 새 용어가 수록됐더라도 부모들뿐만 아니라 언론에조차 여전히 구 용어를 널리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은 정답이 ‘망가니즈’인 과학시험 주관식 문제에 '망간'이라고 쓴다고 해서 틀렸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해당 개념을 몰라서 잘못 쓴 게 아니라는 의견이다.
국가기술자격시험 또한 아직도 구 용어를 사용한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출제 담당자는 "산업현장에서는 다수가 예전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새 용어를 쓰면 이해가 어렵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우리나라 공신력 있는 학계에서 신·구 원소 용어를 두고 입장 차가 있는 데다 많은 일반인도 구 용어에 익숙하기 때문에 당분간 혼용 사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새 용어를 배우고, 학교 밖에서는 구 용어를 쓰는 이 현상을 언제까지나 묵인할 수만은 없다. 혼란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라도 하나의 용어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 참고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국제 순수 및 응용화학연맹(IUPAC)
대한화학회
한국생물과학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