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와 민주노총 등이 국정 역사 교과서를 주 교재로 사용해 올해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고 결정한 고등학교 이사장과 교장 등을 상대로 "왜 이런 결정을 하느냐" "(신청을 철회하지 않으면) 학교를 흔들겠다"는 등 협박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교조 등은 "국정교과서로 친일 미화, 독재 찬양하는 교육을 하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학교들은 "학교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맞서고 있다.
16일 경북 영주시 경북항공고 앞에는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국정 역사 교과서 선정 환영'이란 보수 단체의 현수막과 함께 '역사적 사실 왜곡과 오류투성이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하라'는 내용이 적힌 전교조 측 현수막이 나란히 걸렸다. 지난 14~15일 연구학교 신청에 반대하는 전교조 측의 피켓 시위가 연이틀 이어졌고, 이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은 나흘 만에 500건이 넘는 찬반 관련 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경북항공고는 지난 15일 문명고(경북 경산), 오상고(구미) 등과 함께 연구학교를 신청한 전국 세 학교 중 한 곳이다.
이 학교 김병호 교장은 "군 특성화 학교로서 육·해·공 부사관에 많은 졸업생이 진출했다"면서 "군과 학교에서 일관된 역사의식과 국가관을 전달하는 것이 아이들의 정신적 혼란을 막을 수 있겠다고 판단해 연구학교를 신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연구학교 신청을 하기 전부터 전교조, 민노총 등의 조직적 시위와 압력에 시달렸다"고 한다. 지난 13일엔 전교조, 민노총 회원 9명이 이 학교를 방문해 "언성을 높이며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강요"한 데 이어 "곧 정권이 교체될 텐데 왜 연구학교를 신청하나. 촛불중앙회에 올려 경북항공고를 흔들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고 학교 측은 전했다. 김 교장은 "학교가 문을 닫더라도 국정교과서를 지켜가겠다"면서 "어떤 단체든 자기네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안 된다는 사고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학교를 신청한 문명고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 학교 홍택정 이사장은 "민노총과 전교조 그리고 일부 학부모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느냐'고 항의했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우리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또 "전교조에선 그래도 점잖게 '좋은 학교인 문명고가 그럴 수 있느냐'고 항의한 수준이라면 민노총은 '문명고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협박해 왔다"면서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국정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겠다"고 말했다. 이 학교 김태동 교장도 "연구학교 신청은 학생들에게 좀 더 다양한 선택을 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라며 "신청 전에 개최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찬성표가 더 많아 연구학교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구미 오상고는 전교조 등의 압박과 교내 학생들의 동요 등이 겹치면서 16일 연구학교 지정 신청을 아예 포기해 버렸다. 전교조 등은 "오상고가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지난 15일) 연구학교 신청을 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연구학교 신청 마감 기한은 지난 15일이었지만 시·도교육청에서 심의하는 16일에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등 사후 보완이 이어질 예정이었다"며 "외부 압력으로 이 절차가 무산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다음 주 전국 시·도교육청에 "이번에 연구학교로 신청하지 않은 학교라도 보조 교재로 쓰기 원하면 국정 역사 교과서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는 공문을 보낼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부 교육청이 연구학교 신청 공문을 일선 학교에 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조 교재 신청 공문까지 막는다면 학교에서 개별 신청을 받아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바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한국교총은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우려한다"며 "학교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연구학교 신청을 비난하고 압박하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