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것은 헌정 사상 최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이 결정되면서 헌법과 공직선거법에 따라 앞으로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재판관)은 10일 오전 11시 23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주문을 선고했다. 그 순간 대심판정 곳곳에서 무겁고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대심판정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측과 국회소추위원 측 관계자들과 취재진 80명, 온라인 접수를 통해 79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일반방청객 24명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 헌정 초유 대통령 파면…”국민의 신임 배반”
헌재는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배경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소추사유 관련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위헌, 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면서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강조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9일 본회의에서 의원 299명 가운데 찬성 234명, 반대 56명, 무효 7명, 기권 2명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박씨는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지 92일만에 청와대를 비워주게 됐다.
헌재는 국회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이후 집중 심리에 착수해 준비절차기일 3회, 변론기일 17회 등 총 20회의 재판을 진행했다. 선고를 위해 증거 조사한 자료만 4만8000여쪽, 소추위원측과 박 전 대통령 측 외에 시민 등이 낸 탄원서도 40박스에 달한다.
헌재는 국회 소추위원 측이 제출한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 사유(법률 위반 8개와 헌법 위반 5개)를 ▲국정농단에 따른 국민주권·법치주의 위반 ▲대통령의 권한 남용 ▲언론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세월호 사태 관련)▲형사법 위반 등 5가지 핵심 쟁점 사안으로 압축했다.
◆ 헌재 “비선실세 이익 위해 대통령 지위·권한 남용, 기업 재산권·경영자유 침해”
박 전 대통령을 파면으로 몬 결정적 사유는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이다. 최씨에게 공무상 비밀을 공유하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이나 최씨 개인 소유·운영 법인을 통한 이권추구를 도와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헌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재단 설립 및 이권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세월호 참사 대응을 소홀히 해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를 져버렸다는 탄핵사유 등은 인정되지 않았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고, 다만 그러한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헌재 “탄핵소추·8인 재판 적법”...朴측 불공정 주장 일축
탄핵소추나 헌법재판의 절차를 트집 잡은 박 전 대통령 측 주장은 모두 배척됐다. 박 대통령 측은 그동안 탄핵소추안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가결절차에 하자가 있다거나, 9인 재판부가 아니면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헌재는 지난 1월 박한철 전 소장이 퇴임하며 8인 재판관 체제가 됐다.
이에 대해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가결 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위법이 없으며, 다른 적법요건에 어떠한 흠결도 없다”고 일축했다. 헌재는 또 “피청구인 측 주장은 결국 심리를 하지 말라는 주장으로서 헌정위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가 된다”면서 “8명의 재판관으로 이 사건을 심리해 결정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상 헌재로서는 헌정위기 상황을 계속해서 방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이후 집중 심리에 착수했다. 그동안 탄핵소추 재판은 3회의 준비절차기일과 17회의 변론기일을 포함해 총 20회 진행됐다. 최순실씨 등 증인 25명이 대심판정에 나와 신문을 받았지만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출석하지 않았다.
파면된 전직 대통령은 법령에 따라 경호·경비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 대상에서 배제된다. 파면으로 물러난 전직 대통령은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도 잃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소추 특권을 잃은 채 검찰 수사대상에도 오르게 됐다.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인 만큼 압수수색, 계좌추적 등 강제수사가 가능하며, 조사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통한 신병도 확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