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참 모순적인 존재다. 누군가와 함께하길 강렬하게 원하면서도, 때로는 너무나 격하게 혼자 있고 싶으니까. 30년째 부부 문제를 연구해온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장클로드 카우프만 교수가 프랑스의 부부와 커플 150쌍을 인터뷰해 을 펴냈다. 그는 책에서 “부부가 한 침대에서 자느냐 각방을 쓰느냐 사이에서 망설이는 것은 가까이 있고자 하는 욕망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욕망 간의 갈등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부부는 함께 자는 게 더 좋을까, 따로 자는 게 더 좋을까? 각방 쓰기가 부부 사이를 나쁘게 만드는 걸까, 이미 사이가 나빠진 부부들이 각방을 택하는 걸까? 설문을 통해 우리나라 부부들의 잠자리를 들여다봤다. 이번 조사는 여성 포털 사이트 이지데이와 네이버 오피스에서 2월 2일부터 15일까지 이뤄졌으며 성인 남녀 463명이 참여했다.

현재 각방을 쓰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52%로 집계돼 과반을 넘겼다. 결혼 햇수별로 들여다보면 1~9년 차의 신혼부부와 30년 차 이상의 중년 부부는 한 방을 쓰는 경우가 조금 더 많았고 10~29년 차 부부는 각방을 쓰는 비율이 조금 더 높게 나타났다.

각방을 쓴다고 답한 응답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부분은 부부 사이가 안 좋아 각방을 쓴다는 부부가 9%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각방 부부 10명 중 9명은 갈등으로 인해 따로 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각방 원인 1위는 ‘배우자의 잠버릇’이었다.

집이 떠내려갈 만큼 코를 심하게 골거나 무의식중에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사지를 휘두르는 배우자와 함께 자는 것, 확실히 곤욕이다. 비슷한 비율로 2위를 차지한 것은 ‘육아’. 아이가 태어나면 한동안은 밤잠을 설쳐가며 우는 아이를 달래야 하기 때문에 다음 날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각방을 택하는 주부들도 많다. 부부가 생활하는 시간대가 달라 잠자리를 따로 한다는 응답도 25%로 3위를 차지했다.

‘각방’의 공포는 몸이 멀어지며 마음까지 멀어질까 하는 두려움이다. 이미 각방을 쓰고 있는 부부들에게 이전과 비교해 사이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는지 물었다.

응답자의 57%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했다. 부부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응답은 29%,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다는 응답은 14%로 집계됐다.

처음 각방을 쓰자고 제안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무려 74%의 응답자가 ‘아내’라고 답했다. 아마 남편들은 각방을 쓰고 싶어도 쓰고 싶다고 말을 못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부부만의 ‘사랑 나누기 의식’이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일 수도.

결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각방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배우자와 한 방을 쓰고 있다는 응답자들에게 만약 각방이 쓰고 싶었던 적이 있다면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대부분의 응답자는 ‘부부는 한 침대에서 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배우자의 반대’를 이유로 꼽은 응답자는 16%, 따로 잘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자는 14%를 차지했다.

전체 응답자에게 배우자와의 각방 쓰기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물었다. 10명 중 5명이 반대, 4명은 찬성, 1명은 중립 입장을 나타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한 이들은 ‘헤어지는 지름길이다’, ‘안 그래도 잠자는 시간에만 만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함께하는 것이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또 ‘아기 때문에 각방을 쓰는 경우 남편은 아내가 얼마큼 힘든지 모르게 된다’는 답변도 있었다.

찬성하는 이들은 ‘수면의 질은 중요하다’, ‘서로 배려하는 차원이라면 괜찮다’, ‘억지로 같이 자면 피곤할 뿐, 각자 방을 쓰다 만나는 것도 길게 가는 방법’이라고 답했다. 아기 때문에 각방 쓰는 경우 ‘한 명이라도 푹 잘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중립적인 의견을 제시한 이들은 ‘침대를 두 개 쓰는 것도 방법이다’, ‘각자 선택의 몫이다’, ‘장단점이 있다’고 답했다.

“우리 부부 각방 써요!”

당당히 밝힌 스타와 셀럽들

요즘은 스타와 셀럽들도 TV에 출연해 배우자와 각방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힌다. 건재한 부부 사이를 과시하며 더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각방 쓰기’가 곧 ‘부부 불화’라는 선입견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걸까.

탤런트 송채환(오른쪽) 가수 김정민(왼쪽)

▷탤런트 송채환
송채환·박진오 부부는 탤런트와 영화감독이라는 서로의 일 때문에 따로 생활하는 일이 많아 각방을 쓰게 됐다고 한다. 송채환 씨는 어떨 때는 남편이 손님처럼 느껴져 "누구세요?"라고 한 적도 있다는 우스개를 던지며 "남편과 어색해질 때도 있지만 합방을 할 때면 너무 좋다"고 했다.

▷가수 김정민
아들 셋을 둔 원앙부부 김정민·루미코 씨도 각방을 쓴다. 혼자 안방을 차지하는 사람은 남편. 루미코 씨는 "(안방은) 남편 전용"이라며 "코골이가 너무 심해서 아들도 도망간다"고 했다. 김정민 씨는 "코골이 때문에 같이 못 자겠다고 해서 안방으로 쫓겨났다"고 말했다.

탤런트 이재은(오른쪽)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왼쪽)

▷탤런트 이재은
탤런트 이재은과 교수 겸 안무가 이경수 부부가 각방을 쓰는 이유는 두 사람의 체감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경수 교수는 "집사람과 나는 온도가 잘 맞지 않는다. 아내는 안방, 나는 거실에서 잔다.

특히 여름에는 정말 같이 잘 수가 없다. 나는 더운데 아내는 춥다고 한다. 그래서 한 번씩 함께 자려고 해도 결국 새벽에 거실로 나가게 된다”고 했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김태훈 부부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각방을 썼단다. 김태훈 씨는 "결혼 후 한 방에서 지내야 된다는 건 결혼의 신화 같은 것"이라며 "각방을 쓰게 되면 대안이 생기게 된다.

우리 부부는 한  방에서 대화하지는 않지만 식탁에 앉아서 굉장히 오래 얘기한다”고 밝혔다. 이어 “각방 때문에 멀어진다는 건 이미 감정 상태에 문제가 있어서 각방을 쓰게 된 경우이지, 각방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을 찾아낸다”고 했다.

“남편 방 꾸며주고 듬뿍 사랑받습니다”

잠은 따로 자도 우리는 팀플레이

각방 쓰는 부부라고 사이가 나쁘리란 법은 없다. 경기도 동두천에 거주하고 있는 이희정(가명) 씨는 4살 연상인 남편을 만나 10년을 연애하고 지난 2012년 결혼했다. 각방을 쓴 지는 3년째. 잠만 따로 잘 뿐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매우 맑음’이다.

“제 나이 21살에 남편을 만났어요. 연애와 결혼생활을 합하면 함께한 지 15년이 된 거죠. 그런데 아직도 어떨 때는 신혼 같아요. 평소에는 따로 자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거실이나 안방에서 같이 자는데요. 한 번씩 옆에 와서 같이 자자고 그러면 연애 초기 때 같은 로맨스 무드가 잡히더라고요. 계속 떨어져 자다 함께 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부부는 사랑을 나눈 다음 각자 방에 가서 자기도 해요.”(웃음)

오는 6월 첫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는 희정 씨 부부. 3년 전 각방을 쓰자고 제안한 건 아내였다. 부부의 생활패턴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이를 가져서 일을 쉬고 있지만 제가 도매 쪽 일을 해서 저녁에 근무를 했거든요. 신랑이 잠자리에 예민한 편인데 서로 시간대가 안 맞다 보니 각방을 고민하게 됐죠. 그래도 결혼하고 1~2년 정도는 매일 같이 잤어요. 부부는 한 이불을 덮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서로 힘들어도 참았던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로 불편한데 꼭 같은 방을 쓸 필요가 있을까?”

안방은 희정 씨가 쓰고 아직 아이가 없어 하나 남아 있던 방을 남편만의 공간으로 꾸며줬다. 남편이 거실에서 불편하게 쓰던 컴퓨터를 그 방에 넣어주고 남편이 좋아하는 운동기구도 하나씩 들여놓았다.

“남자들에게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해요. 여자는 친구도 만나고 커뮤니티 형성도 잘하니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하잖아요. 그런데 남자는 친구를 만나도 속 이야기를 잘 못 하고, 가족들 앞에서도 자기 기분을 숨기고 감정을 컨트롤해요. 그래서 혼자서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죠. 그렇게 방을 만든 다음 하루 이틀 따로 자게 됐어요. 신랑도 편한 것 같은데 처음에는 제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런데 저도 이게 편하니까 ‘오빠 거기서 자고 싶으면 그냥 자’ 그랬어요.(웃음) 그렇게 신랑 방에 침대를 들여놓았죠.”

각방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친정이나 시댁 식구들,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시선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물었다.

“두 사람이 안 맞는 것을 억지로 맞추려면 힘이 들잖아요. 둘 다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한 건데 합의만 잘되고 서로 좋다면 어떤 방식으로 살아도 괜찮지 않나요? 각방을 쓰면 사이가 나쁠 거라고 보는 시선에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나와 내 배우자가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희정 씨는 얼마 전 집을 옮긴 것을 계기로 남편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자신이 작은 방을 쓰고 있다.

“원래 이사 가기 전에도 신랑이 미안해했었어요. ‘내 방만 이렇게 꾸며서 되겠어? 우리 이사 가면 자기 방도 잘 꾸며볼까?’라고요. 그런데 저는 컴퓨터도 안 하고 낚시도 안 하거든요. ‘오빠가 큰 방 써’ 그랬죠. 아이가 태어나면 신랑이 안방을 깨끗하게 청소해서 저랑 아기 쓰라고 내주겠대요. 평소에 저를 배려해주는 제안을 많이 해요. 지금까지 자기가 누려왔다는 걸 잘 알거든요.”(웃음)

이른바 '베개 토크' 시간도 없는데 부부 간 대화가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희정 씨는 "우리 부부는 통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며 "대화가 조금 없었다 싶으면 남편이 출근하는 길에도 전화하고 퇴근하는 길에도 전화를 한다"고 했다.
그럼 각방을 써서 안 좋은 점은 전혀 없었을까. 부부 싸움을 하고 난 뒤에라도 꼭 부부는 한 방에서 자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론인데 말이다. 희정 씨도 "다툼이 있을 때는 조금 섭섭했었다"고 했다.

“각자 방에 들어가 놀고 자고 하는 게 일상인데 싸울 때는 예민해지잖아요. 처음에는 자기 방으로 가는 게 굉장히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생각을 하나 보다’ 그래요. 신랑도 눈치가 있는 편이라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기도 하고요. 연애 시절에 비하면 싸움도 정말 많이 줄었죠.(웃음) 저희 부부는 서로 감정이 상할 때 그래요. ‘우리 한 팀이잖아. 서로 공격하지 말고 팀플레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