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구혜선이 앓고 있는 병이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 '방어'(phylaxis)라는 용어에 반대를 뜻하는 'ana'가 붙어 만들어진 이 증상은 한마디로 알레르기로 인한 쇼크를 뜻한다. 아나필락시스가 오면 30분 안에 호흡 곤란, 두통, 어지러움, 구토 등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는데,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아나필락시스의 원인은 음식이나 약물, 벌레 물림 등이다.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고 멀게 느껴지는 질환이겠지만, 실제 아나필락시스를 경험했거나 식품 알레르기 때문에 음식을 가려 먹는 사람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영화 'MR. 히치'에서 해산물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켜 얼굴이 부은 윌 스미스.

식품 알레르기 바로알기, Q&A

Q. 유전이다?

(△) 유전도 하나의 요인이다. 부모·형제 중 한 명 이상이 식품 알레르기·아토피·천식·비염 등 알레르기성 질환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자녀는 알레르기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식품 알레르기 환자는 소아 6~8%, 성인 1~2%이며, 이 중 3분의 1 정도가 유전적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유전적 요인이 전부는 아니며 다양한 환경적인 요인도 식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Q. 어린 나이부터 특정 음식을 먹이면 예방된다?

(△) 최근 달걀이나 땅콩 등의 식품을 어린 아기 때부터 먹이면 알레르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왔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연구진은 꾸준히 땅콩을 먹인 한 살 미만의 아기들에게서, 땅콩 알레르기 발병률이 1% 미만이었다고 밝혔다. 반대로 땅콩을 아예 먹지 않은 아기들은 5살이 되자 17%가량 알레르기가 생겼다. 하지만 모든 식품에 이 가설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해산물처럼 성인이 되어 갑자기 발병하는 식품 알레르기도 있다.

Q. 치료 방법이 없다?

(O) 원인 물질을 피하는 것 외에 특별한 치료법은 없다. 다만 달걀, 우유 알레르기는 대부분 자라면서 자연스레 사라진다.

Q. 증상은 무조건 즉각 나타난다?

(X) 아나필락시스처럼 30분 이내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음식을 먹고 1~2일 뒤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갑자기 입술이 붓거나 몸이 가렵다면 기억을 더듬어 원인 물질을 찾아내야 한다.

Q.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나?

(O) 병원을 찾아 미리 검사해볼 수 있다. 특정 식품의 단백질이 든 시약을 피부에 떨어뜨려 반응을 살펴보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명확히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경험이 수반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한국인에게 많은 알레르기 유발 식품 21종

식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 항원은 동·식물성 단백질이 대부분이며, 가끔 전분이나 지방질도 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정하고 있는 '한국인에게 알레르기를 잘 유발하는 식품' 21가지는 다음과 같다. ▷

메밀 대두 호두 땅콩 복숭아 토마토 난류(卵類·조류의 알) 우유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새우 고등어 홍합 전복 조개류 오징어 아황산(식품 표백을 위한 첨가물)이 들어간 식품.

물론 이는 대표적인 식품을 나열한 것이며, 위 재료들을 가공해 만든 음식과 '교차반응'을 일으키는 식품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셀 수 없이 많아진다. 매우 민감한 사람은 알레르기 유발 식품과 같은 장소에서 생산·제조된 음식도 못 먹는다.

'교차반응'이란, 알레르기가 특정 물질 외에 그 물질과 유사한 항원을 가진 물질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새우는 같은 군(群)에 속한 바닷가재와 75%의 교차반응 확률을 가진다. 이는 새우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중 75%는 바닷가재에도 동일한 알레르기를 가진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21가지 식품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알레르기 유발 식품 몇 가지를 자세히 알아보자.

키스한 후 사망한 여성… '땅콩'이 범인?

서구에서는 '땅콩'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캐나다에서는 샌드위치에 땅콩 버터를 발라먹은 남자친구와 키스한 후 호흡 곤란으로 사망한 여성의 사례도 나왔다. 고의로 땅콩을 먹여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살인죄'도 적용된다. 2012년 뇌성마비를 앓는 딸에게 땅콩 초콜릿을 먹여 죽게 한 미국 엄마가 재판에 서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내의 한 항공사가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에게 마카다미아를 제공해, 기내에서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땅콩은 미국의 한 알레르기 재단에서 선정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32가지 알레르기' 중 사망빈도 1위를 차지한 식품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초등학생의 2% 이상이 땅콩 알레르기를 갖고 있을 정도로 흔한 편이다.

땅콩 알레르기의 원인은 땅콩에 함유된 단백질이다. 때문에 단백질을 제거한 가공식품, 예를 들어 땅콩기름에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차가 있으며, 호두·잣·아몬드 등 다른 견과류는 물론 대두·완두콩·렌틸콩 등 콩 종류도 의심해보는 게 좋다. 심하면 땅콩 껍데기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학교 급식서 '카레' 먹고 의식불명

2013년, 한 초등학생이 학교 급식으로 나온 카레를 먹고 뇌사 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 원인은 카레에 30% 넘게 함유돼 있던 우유. 해당 학생은 우유 알레르기가 심해, 부모가 '우유와 접촉하지도 말게 해달라'고 미리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의 무관심으로 사고를 당했다. 의식 불명으로 중환자실에 있던 이 학생은 1년여 뒤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기사 더보기

12개월 미만의 영아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우유 알레르기는 우유에 함유된 두 단백질, 락토글루부린(lactalbuinin)과 카제인(casein)이 원인이다. 구토, 설사, 혈변 등이 주요 증상인데, 우유를 먹인 뒤 갑자기 피부가 거칠어졌을 때도 의심해봐야 한다. 이때 우유를 끊으면 자연스레 증상이 완화된다. 3세 이후 면역력이 생기면서 우유 알레르기는 대부분 사라지지만 청소년기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우유 알레르기를 유당불내증과 혼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은 유당을 소화시키는 효소가 선천적으로 부족한 경우다. 때문에 우유를 먹었을 때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이며, 불편하기는 하지만 위험한 질환은 아니다. 최근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달걀과 우유 없는 빵'이 인기를 끌기도 한다.

우유와 마찬가지로 달걀 알레르기도 영유아기에 흔히 나타나는 증상으로, 나이를 먹으며 점차 사라진다. 달걀 알레르기 역시 단백질이 원인이다. 노른자보다 흰자에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단백질이 더 많이 함유돼 있다. 따라서 흰자는 아이가 돌을 넘긴 뒤 먹이는 게 안전하다.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의 부모가 주의해야 할 건 음식 뿐만이 아니다. 독감 등 예방접종 주사약 중에도 달걀 성분이 들어간 것이 있다. 따라서 의사에게 달걀 알레르기가 있다고 미리 인지시키고, 접종 후 30분 이상 경과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아토피가 있는 경우에도 다른 아이보다 달걀 알레르기 반응이 더 잘 나타날 수 있다.

해산물 알레르기는 크게 새우, 가재, 게 등의 갑각류(甲殼類) 알레르기와 조개류인 패류(貝類) 알레르기로 나뉜다. 새우나 조개만큼 흔하진 않지만 생선, 오징어, 낙지 등에 알레르기 반응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해산물 알레르기는 선천적인 것보다 성인이 되어 갑자기 발현되는 경우가 더 많다. 성인기에 나타난 해산물 알레르기는 좀처럼 잘 낫지 않으며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복숭아는 먹었을 때와 만졌을 때, 두 가지 경우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복숭아가 피부에 닿았을 때 가려움, 두드러기 등 알레르기 증상이 일어나는 건 '복숭아 털' 알레르기다. 이럴 땐 복숭아와 직접 닿지 않도록 위생장갑을 끼고 만져야 한다. 복숭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단백질 성분은 과육과 과피에 각각 있다. 때문에 복숭아를 만질 순 없지만 먹을 순 있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만질 땐 괜찮지만 먹으면 알레르기가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최근에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중 복숭아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례가 학계에 많이 보고되고 있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밀가루 속 성분은 글루텐(Gluten)이다. 불용성 단백질인 글루텐은 밀가루를 물에 섞고 반죽했을 때 덩어리로 남는 점착성 있는 성분이다. 글루텐 역시 우유처럼 알레르기와 불내증이 별개다. 글루텐 불내증은 밀가루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질환으로, 속이 더부룩하고 헛배가 차는 게 주요 증상이다.

반대로, 선천적으로 몸속에 글루텐을 소화시키는 효소가 없어서 생기는 알레르기성 질환은 '셀리악병'(celiac disease)이다. 아시아보다는 주로 밀을 주식으로 하는 서구에서 많이 발병한다. 셀리악병 질환자가 밀가루를 섭취하면, 분해되지 않은 글루텐 성분이 장 점막의 면역체계를 자극해 복통, 묽은 변, 소화불량 등이 나타난다.

한편, 단백질이 풍부한 작물인 메밀도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특히 메밀 알레르기는 적은 양으로도 아나필락시스를 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다. 메밀 알레르기가 있다면 먹는 것은 물론, 메밀 성분이 함유된 베개, 화장품 등도 쓰지 말아야 한다.

알레르기 예방 지침, 외국을 배우자

식품 알레르기의 유일한 예방법은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알레르기 식품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이들이다. 부모가 함께 있을 땐 알레르기 식품을 멀리할 수 있지만, 학교에 가거나 단체 생활을 할 땐 이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땅콩 알레르기'가 흔한 미국은 초등학교 등에서 알레르기 학생들을 따로 관리하는 지침을 마련해두고 있다.

뉴저지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련한 지침을 몇 가지 살펴보자. 국내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매우 상세하다.

*에피네프린

자동주사기 사용 자격을 갖춘 직원을 고용한다.

*알레르겐

이 제거된 테이블을 준비하고, 안전하게 관리된 테이블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린다.

③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은 누구와도 음식을 공유하지 않는다.

*에피네프린 주사: 쇼크, 심정지의 보조 치료 효능
*알레르겐: 알레르기성 질환의 원인이 되는 항원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심한 줄 몰랐다"

2013년, 학교 급식에서 카레를 먹은 초등학생이 뇌사 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나자 학교 측은 "그렇게 심한 줄 몰랐다"고 했다. '식품 알레르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인식 부족에서 온 황당한 해명이었다.

이후, 교육부 측에서 학교 급식 식단표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 재료를 표기해 가정통신문으로 발송하는 개정안이 시행됐다. 오는 5월 30일부터는 어린이가 좋아하는 제과·제빵류, 아이스크림류, 햄버거, 피자 등을 취급하는 음식점들이 원재료명을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 배달 주문을 받을 때도 원재료가 적힌 스티커를 함께 제공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100만 원이 부과된다.

[햄버거·피자에 알레르기 식재료 표시… 알레르기 음식 찾으려면?]

[사망까지 이르는 '식품 알레르기', 어떻게 피하고 대처할까]

최근 서울지역 초등학생을 조사한 결과, 식품 알레르기 유병률이 20년간 5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로 올수록 식품 알레르기 환자가 느는 건 세계적인 추세다. 더는 '무지(無知)'로 인한 허망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인과 사회는 물론 국가적인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