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며 신약(新藥)이 개발되기도 하지만, 약은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의 충성도가 높은 제품군이다. 다시 말해 과거부터 먹고, 발라오던 약을 계속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하지만 쓰던 약이라고 해서 아무 의심 없이 사용해도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애용해 왔지만 성분과 효능은 잘 몰랐던 상비약들, 그것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신의 구급함은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집에는 상비약을 몇 가지나 갖추고 있을까? 개인적인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소화제나 감기약, 해열제, 연고 등은 상시적으로 쓸 수 있어야 편리하다. 아래는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상비약들이다. 평소 쓰고 있거나 언젠가 봤던 기억을 되살려 약의 이름을 맞춰보자.
③ 한국 최초의 '토종' 두통약.
④ 편의점에 파는 건 '원조'가 아니다.
⑤ 손님 접대 음료로도 쓰였던 귀한 약.
⑥ '응답하라 1988'에도 나왔다.
⑦ 미국의 애처가가 개발했다.
⑧ 딱지 위에 발라도 된다.
⑨ 집에 ⑧번이 없다면 이게 있을 것이다.
⑩ 유한양행의 1호 제품.
⑪ 호랑이 뼈로 만들었다는 건 거짓말.
⑫ '펭귄 파스' 말고 진짜 이름은?
각종 통증 및 감기로 인한 발열 증상에 먹는 약으로, 1879년 미국의 한 약사가 개발했다. '타이레놀'이란 이름으로 약이 판매된 건 1955년부터이며, 국내에는 1994년 들어왔다.
타이레놀은 본래 캡슐 형태의 약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캡슐이 아닌 '알약' 형태로 바뀌게 되는데,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이 바로 그 계기다. 1982년 시카고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누군가 타이레놀 안에 청산가리를 넣어 유통한 것으로, 8명이 사망했다. 이후 타이레놀을 생산하는 존슨앤드존슨의 회장은 '이물질이 투입될 수 없는 포장' 개발을 지시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약 형태가 됐다. 당시엔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사건을 수습하는 타이레놀의 책임감 있는 태도가 많은 이들의 신뢰를 샀다. 결과적으로 독극물 사건이 타이레놀이 '세계인의 두통약'으로 발돋움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타이레놀은 두통뿐 아니라 생리통·감기 등에 먹어도 된다.
타이레놀의 주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인데, 우리 몸의 통증 기준을 높여 아픔을 못 느끼게 하는 원리다. 타이레놀의 포장 상자에 적힌 '500mg'은 1정당 함유된 아세트아미노펜의 양을 뜻한다. 이 성분은 간에서 대사돼 소변으로 배출되는 게 보통이나, 과량 복용하면 간장 및 신장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12세 이상 성인 기준) 하루 최대 8정을 초과하지 말고, 4~6시간의 간격을 둬 먹어야 한다. 술 마신 후나 다른 종합감기약과 함께 복용하면 안 된다. 생후 4개월 이상의 소아에게 먹일 수 있는 타이레놀은 따로 있다.
[음주 후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
아이가 있는 집에 꼭 하나씩 있던 '주황색' 해열제로, 1987년 삼일제약에서 처음 판매했다. '부루펜'이란 명칭은 소염·해열·진통 등에 효과가 있는 이 약의 주성분인 이부프로펜(ibuprofen)에서 따 왔다. 90년대 "부르세요, 부루펜!" 등의 광고 카피로 '국민 해열제' 반열에 올랐다. 흔히들 부루펜을 어린이 전용 약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시럽과 알약이 따로 있을 뿐 성인이 먹어도 무관하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타이레놀과 이부프로펜 성분의 부루펜은 둘 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해열제인데, 기능이 조금 다르다. 우선 타이레놀은 소염 기능이 없다. 반면 공복에 먹여도 위장에 무리가 없는 장점 덕에, 한밤중 갑자기 열이 날 때 사용하기 편리하다. 부루펜은 생후 6개월 이상의 아이에게만 먹이는데, 항염 효과가 있어 염증을 동반하는 목감기, 인후염 등에 좋다. 다만 주의할 점은 아이의 열이 내릴 때까지 한 종류의 약만 먹여야 하는 것이다. 두 약의 반감기가 달라, 한 차례 약을 먹인 뒤 다음 번 먹일 때까지의 시간 간격이 차이 나기 때문이다.
부루펜의 유통기한은 개봉 후 한 달 가량이다. 1~30도의 상온에 보관해야 하며, 냉장고에 넣는 것은 금물이다. 부루펜을 먹였는데 아이가 토한다면 좌약 형태의 해열제를 사용한다.
1979년 발매되기 시작한 게보린은 '토종 두통약'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당시 두통약 시장을 장악하던 건 '사리돈'이란 수입약이었다. 이후 게보린은 출시 6년 만인 1985년 진통제 시장 점유율 1위 약이 된다. "맞다! 게보린"이란 광고 카피도 이 때 나온 것이다.
게보린의 주성분은 타이레놀과 동일한 아세트아미노펜이다. 그런데 게보린에는 여기에 카페인과 이소프로필안티피린(IPA·Isopropylantipyrine)이란 성분이 추가로 더 들어간다. 게보린이 타이레놀보다 더 빠르고 강한 통증 완화 효과가 있는 건 카페인 덕분이다. 때문에 만성 두통보다는 간헐적 두통에 먹는 게 현명하다. 그렇다면 IPA는 뭘까? 사실 이 성분은 '한국인의 두통약'으로 스스로를 이미지메이킹 한 게보린을 '나쁜 두통약'으로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2008년, 한 시민단체가 IPA가 두드러기와 홍반, 구토, 재생불량빈혈 등 부작용을 유발한다고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한때 국내 시장에서 게보린을 퇴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만큼 논란이 거셌지만, 2015년 정부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보린은 IPA 성분 때문에 15세 미만의 소아·청소년에게는 복용이 금지된다. 성인이더라도 1일 3회를 넘지 않으며, 복용 간격은 4시간 이상 두어야 한다.
쌍화탕은 동의보감에서 기와 혈을 쌍(雙)으로 조화롭게 해준다는 뜻의 한약을 뜻한다. 본래 백작약, 숙지황, 황기, 당귀, 계피, 감초, 대추 등을 한데 달여 제조한다. 그런데 이것을 먹기 쉽도록 병에 넣어 음료로 만든 사람이 광동제약의 창업주 故 최수부 회장이다. 그는 자신이 한방 보약 외판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1975년 '광동 쌍화탕'을 탄생시켰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쌍화탕은 힘든 일을 하거나 큰 병을 앓은 뒤 기운이 빠져 땀이 저절로 흐르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되어 있다. 전통 쌍화탕의 약재를 그대로 따르는 광동 쌍화탕 역시 환절기 등 몸이 허해질 때 마시면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 숙지황과 당귀는 피를 생성해주는 보혈 효능이 있으며, 천궁·계피·감초는 혈액순환 촉진, 황기는 인삼 대용으로 쓰이는 약재다.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쌍화탕에 직접적인 감기 치료나 해열 효과는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미 감기가 걸린 뒤라면 다른 약을 먹는 게 더 낫다. 여담으로, 흑갈색의 색상을 지닌 쌍화탕은 사극에서 사약 역(役)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탕' 자(字)가 들어간 '쌍화탕'만이 약국에서 판매되며, 비슷한 컨셉의 다른 음료들은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편의점 등에서도 구입 가능하다. 부작용이 드문 생약 성분이기는 하지만, 과다 복용 시 소화장애·설사가 발생할 수 있다.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해인 1897년 탄생한 동화약품의 '활명수'는 국내 최초의 액상 소화제다. 당시 궁중의 선전관(현재의 청와대 경호실 간부)이던 노천 민병호가 궁중요법에 양약의 장점을 더하여 개발했다. 당시에는 급체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민병호가 활명수를 교회 신자들에게 나눠주자 '신통한 명약'이라며 금세 소문이 돌았다. '활명수(活命水)'라는 명칭도 '생명을 구하는 물'이란 뜻이다.
활명수는 11가지의 한약재 성분으로 제조되는데, 가장 마지막에 첨가되는 클로로포름과 멘톨(박하)의 배합률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이에 책임자만이 몰래 돌아앉아 활명수 제조의 마지막 단계를 시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00년대 초, 활명수는 설렁탕 두 그릇 값이 넘을 정도로 고가였는데, 동화약품(당시는 동화약방)의 사장은 활명수를 판 돈으로 독립운동을 도왔다. 한편, 활명수의 인기를 좇아 여러 '짝퉁' 활명수도 활개를 쳤는데 이것이 바로 동화 활명수에 '부채표'가 붙는 계기가 된다. '까스활명수'는 1966년, 기존의 활명수에 탄산가스를 주입하면서 탄생했다.
과거 활명수는 소화제라기보단 만병 통치약이었다. 귀한 약이다보니 손님 접대 음료로도 쓰였다. 하지만 까스활명수가 모두에게 다 맞는 건 아니다. 주로 뜨거운 성질의 생약이 함유되다보니,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부적합하다. 또한 만성 위염, 위궤양 등이 있는 사람에게도 좋지 않은데 활명수에 있는 탄산이나 고추추출물 등이 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배 아플 땐 배에 빨간 약 바르면 낫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과거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던 '국민 소독약'이다. 약의 색깔이 빨간색이라 '빨간 약'이라 불렸으며 일본어로 '아까징끼'라고 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하지만 피부에 바르면 노란색이 된다. 몇 년 전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에도 이 빨간 약이 등장했는데, 그 시절엔 어린이들의 무릎이나 팔꿈치에 꼭 '빨간 약 자국'이 있을 만큼 흔히 쓰이는 약이었다.
쓰는 사람들은 그저 빨간 약이라고 통칭하여 불렀지만, 사실 이 약은 몇 차례 세대교체를 겪었다. 가장 최초의 빨간 약은 '머큐로크롬(mercurochrome)'이다. 그러나 수은이 함유된 머큐로크롬은 발진, 가려움 등 여러 부작용을 야기한 탓에 전세계적으로 판매 금지되었다. 이후 요오드팅크(tincture of iodine)가 빨간 약의 자리를 대신하다가, 지금은 그보다 자극성은 더 적고 살균력은 뛰어난 '포비돈 요오드(povidone iodine solution)'를 쓴다. 가정용 소독약으로는 물론, 수술실에서도 사용된다. 2015년엔 이 포비돈 요오드가 에볼라 바이러스를 치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이목을 끌기도 했다.
빨간 약을 쓰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임산부와 갑상선 환자다. 갑상선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많은 양의 요오드를 조절하지 못한다. 임산부의 경우, 요오드가 태반 벽을 통해 태아에게 들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밖의 사람들이 빨간 약을 쓴다면 한가지 팁이 있다. 약을 환부가 아닌 주변에 바르는 것인데, 환부에 직접 바를 경우 피부 재생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빨간 약을 자주 쓰면 피부에 색상이 흡착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일회용 반창고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대일밴드'는 국내에 처음 일회용 반창고를 들여온 업체가 '대일화학공업'이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일회용 반창고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발명됐다. 밴드 발명에 얽힌 일화는 다음과 같다.
1900년대 초, 얼 딕슨(Earle Dickson)이라는 미국인은 아내가 요리하며 손을 벨 때마다 붕대와 반창고로 직접 치료를 해주었다. 그런데 자신이 출장을 간 사이에 아내가 다칠까봐 걱정이 되었던 딕슨은, 혼자서 붙일 수 있는 반창고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외과 치료용 테이프에, 거즈 조각과 상처를 폭신하게 감싸주는 패드를 붙인 일회용 밴드였다. 이 밴드는 이름 없이 팔리다가 1920년이 되어서야 상표가 생기는데, 그것이 미국의 밴드 대명사인 '밴드 에이드(band-aid)'다.
밴드는 그 자체로 치료 효과가 있다기보다는 응급처치, 상처 보호용으로 쓰인다. 때문에 소독을 따로 해줘야 하며 방수가 되지 않아 세균 침입이 쉽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습윤 밴드'가 좀 더 인기다. 습윤 밴드는 상처 부위의 습기를 유지하는 대신 주변은 완전히 밀폐하여 새 살이 빨리 돋게 한다. 그러나 상처가 이미 곪은 상태라면 습윤 밴드가 아닌 일반 밴드를 써야 한다.
['습윤 밴드 vs 일반 밴드' 상황별로 골라 붙여야]
1980년 한국에 들어와, 또다른 피부 상처 치료제인 '마데카솔'과 함께 국내 연고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약이다. 후시딘과 마데카솔은 출시 때부터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성장했지만, 사실 두 약은 성분이 다르다. 성분이 다르다는 건 효능이 다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다르단 얘기다.
후시딘의 경우, 항생제 성분인 '퓨시드산나트륨(sodium fusidate)'이 주성분이다. 퓨시드산나트륨이 과거엔 '후시드산나트륨'으로 표기되었던 까닭에 제품명이 '후시딘'이 되었다. 후시딘의 가장 큰 특징이 피부에 빨리 흡수된다는 건데, 독특한 분자 구조를 가진 퓨시드산나트륨이 피부 침투력이 좋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기 광고에서는 '딱지를 떼지 않고 발라도 된다'는 점을 무척 강조했다. 하지만 사실 딱지가 생기기 전, 상처 직후에 발라야 가장 효과가 좋다.
후시딘은 부작용이 적고, 생후 4주 이상이라면 모든 연령대에서 사용할 수 있다. 다쳐서 생긴 상처 뿐 아니라 여드름, 염증, 종기 등에 두루 바를 수 있는데, 알레르기성 피부 질환에는 효과가 없다.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 주의한다.
마데카솔은 후시딘보다 6년 앞선 1974년 국내에 도입됐다. 프랑스 라로슈 나바론사(社)에서 개발한 이 약을 동국제약이 수입했는데, 1984년부터는 국내 공장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마데카솔은 성분의 74%가 식물성이다. 주 원료는 인도양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자생하는 '센텔라아시아티카'라는 식물. 본래 이 식물은 해당 지역의 원주민들의 피부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으로 쓰였다. '마데카솔'이란 명칭은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따온 것이다.
후시딘의 광고 문구가 '상처엔 후~'라면, 마데카솔은 '새살이 솔~솔~'이다. 그만큼 재생 효과가 강조된 연고란 뜻인데, 초기의 마데카솔은 항생제도 넣지 않고 오로지 피부의 재생에만 집중했다. 지금은 네오마이신(항생제)과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마데카솔이 출시돼 있다. 물론 100% 센텔라아시아티카 추출물로만 된 마데카솔도 아직 출시된다. 최근엔 국내 최초로 '분말' 형태의 상처 치료제를 개발해, 지혈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참고로, 마데카솔의 종류 중 스테로이드가 포함된 것을 쓸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스테로이드는 장기간 사용할 경우 가려움, 여드름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남성들이 화장을 하는 것이 흔해졌는데, 과거의 남자들은 겨울철 튼 손에 안티푸라민을 바르는 것이 전부였다. 안티푸라민의 본래 용도는 진통·소염이지만, 핸드크림 대용은 물론 온갖 아픈 곳에 다 쓰였다. 영화 '남영동 1985' 속에도 어머니가 아들에게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는 장면이 나온다.
안티푸라민은 1933년 탄생해 8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국내 토종약이다. 당시 유한양행을 창립했던 고(故) 유일한 박사가 아내이자 소아과 의사였던 호미리 여사의 도움을 받아 안티푸라민을 개발했다. 유한양행의 첫 작품이었다. 안티푸라민의 상징인 초록색 철제 케이스와 간호사 그림은 1961년 등장한 것이다.
안티푸라민의 성분은 멘톨, 캄파, 살리신살메틸 등으로 진통·소염, 혈관 확장, 가려움증 개선 등에 효과가 있는 것들이다. 특유의 향은 멘톨과 살리신살메틸이 만들어낸다. 유일한 박사가 직접 지은 안티푸라민이란 이름은 '반대(anti)' + '염증을 일으키다(inflame)'을 합한 것으로, 명칭에서부터 진통소염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바셀린 성분도 다량 있어 보습 효과가 뛰어난데, 이 때문에 핸드크림 대용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연고 제품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현재 매출은 파스 제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약, 동남아 여행 가면 꼭 사오는 약으로 유명하다. 본래 명칭은 '타이거 밤(Tiger balm)'으로 싱가로프의 화파(Haw Par) 사가 제조했다. 그 역사만 100년이 넘었으며, 동·서양 할 것 없이 전세계인이 애용 중이다.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정품 호랑이 연고를 모방한 모조품도 여럿 나왔다. 이에 '호랑이 발' 모양을 보고 모조품을 가려내는 방법이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호랑이 연고'라는 위엄있는(?) 명칭과 케이스 디자인 때문일까. 과거 민간에선 호랑이 뼛조각·호랑이 기름 따위가 들어가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주성분은 멘톨, 박하유, 장뇌유, 유칼리유, 계피유 등의 식물성 오일이다. 용도 또한 상처 치유가 아닌 근육통 등 통증 완화에 쓰는 것이다. 까지거나 찢어진 곳에 바를 경우 부작용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한다. 호랑이 연고를 관자놀이에 살살 문지르면 두통 치료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사실이다. 카주풋유(말레이시아 및 호주에서 자생하는 카주풋나무의 기름)의 향기가 아로마테라피 역할을 하여 심신을 안정시켜 주기 때문이다.
호랑이 연고는 케이스가 흰색인 것과 빨간색인 것의 두 종류가 있다. 빨간색이 좀 더 강한 연고다. 24개월 이하의 유아에게는 사용하지 않으며, 소아, 임산부, 수유부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사용한다. 또 민감한 눈가에는 닿지 않도록 주의하며 바른다.
어깨나 목, 팔목 등 관절이 아프다고 할 때면 어른들은 꼭 이렇게 말씀하신다. "파스 붙여줄까?"
알싸한 향기만으로 이미 통증이 가라앉는 느낌이 드는 파스는 우리나라에 1969년 들어왔다. 당시 국내엔 '물파스' 밖에 없었는데, 신신제약이 일본 기술을 배워 최초로 '붙이는 파스'를 도입했다.
파스 경쟁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 스포츠 행사를 앞두고 더욱 불붙었다. 다양한 제약사에서 파스 제품을 내놨는데 '펭귄 파스'로 유명세를 탄 제일약품의 제일파프도 이때 나온 것이다. 제일약품은 냉감을 주는 '쿨파프'와 열감을 주는 '핫파프'를 처음으로 출시해 이 시장을 이끌었다.
파스는 삼투압의 원리를 이용해 약품을 피부 안으로 스며들게 한다. 보통 쿨파프에는 멘톨이, 핫파프에는 캡사이신이 들어있다. 쿨파프와 핫파프 모두 뇌에 차갑거나 뜨거운 감각을 느끼게 하여 다른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직접적인 치료 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삐끗' 했을 때 파스보다 얼음찜질을 먼저 하는 게 더 효과가 빠르다. 먹는 약보다 부담이 덜해 일상생활에서 파스를 오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또한 주의해야 한다. 파스에만 의존하다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파스를 붙이고 그 위에 찜질을 하면 화상 위험이 있으며, 24시간 이상 붙이고 있을 경우 피부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