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아웃에 주자(走者) 1·2루. 타자가 친 공이 잡기 맞춤하게 내야에 떴다. 이른바 인필드 플라이(infield fly). 타자는 자동 아웃돼 투 아웃. 그런데 웬걸. 유격수가 실수로 공을 놓쳤다. 2루 주자가 움찔하더니 냅다 3루로 달렸다. 말 그대로 비명횡사(非命橫死). 졸지에 공격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베이스를 떠나지 않아도 되는데 공이 바닥에 떨어지자 착각(錯覺)한 것이다. 그놈의 진루(進壘) 본능 때문에. 사회인 야구에서 겪은 일이다. 야구에만 이런 착각이 있을까? ‘이 밤의 끝을 잡고 있는 나의 사랑이 더 이상 초라하지 않게 나를 위해 울지 마….’ 1995년에 나온 명곡 ‘이 밤의 끝을 잡고’(솔리드) 가사 일부다. 가수는 네 번 모두 [끄틀]이 아니라 [끄츨]로 노래했다([ ]는 소리를 나타내는 부호). 구개음화(口蓋音化)가 아무 때나 일어나는 줄로 착각한 모양이다. 받침 ‘ㄷ, ㅌ’이 [ㅈ, ㅊ]으로 소리 나는 게 구개음화다. 다만 뒤에 조사나 어미가 오고, 그 모음이 ‘ㅣ’일 때만 생기는 현상이다. ‘같이, 붙이다, 여닫이’는 [가치, 부치다, 여다지]지만 ‘같은, 붙을, 여닫아’는 [가튼, 부틀, 여다다]가 되는 것이다. 당시 음악 프로그램 소개말도 [끄츨]이었다. 노래 중간 다른 멤버가 ‘끝은’을 [끄튼]으로 제대로 읊어 되레 어색할 정도였으니. 노래방 가면 즐겨 부르되 신경 쓰는 가사가 있다. ‘정녕 내 곁을 떠나가야 한다면 말없이 보내드리겠어요….’ 1980년대 후반을 달군 ‘사랑하기에’. 이 가수도 ‘곁을’을 [겨츨]로 발음했다. 여러 사람이 헷갈리거나 잘못 알게 되지는 않았을지. 노랫말 아닌 방송 말에서도 툭하면 이런 잘못이 들린다. 조선일보 주말 부록판(附錄版) ‘Why?’는 일반적으로 [와이]라고 발음한다. [화이]라고 하면 어지간히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으리라. ‘우리말이야 다 알아들으니 대충 말하면 어떤가. 하지만 외국어는 제대로 발음해야지.’ 이게 우리 모습이다. 연탄재도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거늘. 앳되던 ‘이 밤의…’ 가수가 중년 되어 노래한 동영상을 최근 보았다. [이 바메 끄틀 잡꼬 인는 나에 사랑이….] 어찌나 반갑던지. 김조한, 좋아하기로 했다.
입력 2017.04.1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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