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새벽 경기 화성시 정남면 최모(28)씨가 운영하는 수족관에서 관상용 새우들이 사라졌다. 40㎡(약 12평) 넓이의 최씨 수족관에는 2㎝ 내외 길이 새우 1000여 마리가 수조 1개당 1~2마리씩 살고 있었는데 그중 10여 마리를 도둑맞은 것이다. 없어진 새우 중엔 한 마리에 300만원 정도에 거래되는 '보아새우'를 비롯해 고가의 새우도 여럿 포함돼 있었다. 최씨가 이날 도둑맞은 새우의 시가는 총 1700만원에 달했다. 이 중엔 포란(抱卵) 상태의 새우도 있었다. 한 번에 알 100개가량 포란하는 암컷 새우가 낳는 새끼 새우들의 가치는 총 5000만원을 넘는다고 한다. 피해자 최씨는 "1년 반 넘게 공들여 키워 이제 막 알을 낳을 참이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최씨 수족관에서 새우를 훔쳐간 사람은 경기 수원에서 수족관을 운영하는 김모(41)씨였다. 김씨는 열대어·새우 등을 취미로 키우는 일명 '물생활' 동호인들 사이에서 예쁘고 비싼 물고기와 새우들을 여럿 갖고 있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피해자 최씨와는 수족관 컨설팅이라는 같은 직종에 있는 데다 새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가까워져 3~4년 전부터 친구처럼 지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씨가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예쁜 새우들을 기르자 김씨는 욕심이 생겼다. 몇 차례 최씨에게 "몇 마리만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피해자 최씨가 도둑맞은 2㎝ 내외의 관상용 새우들. 관상용 새우는 껍질 무늬가 얼마나 화려하고 두툼한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왼쪽 사진의 세 마리 새우 중 흰색 바탕에 검은색 무늬가 있는 두 마리 ‘보아새우’의 몸값은 각각 300만원이다.

최씨는 김씨의 흑심을 알아채지 못했다. 김씨의 요구대로 자신이 키우는 새우 중 예쁜 것들을 골라 몇 마리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공짜 새우로 만족하지 못했다. 절도 사건이 있기 전날인 5일 저녁 최씨가 김씨 보는 앞에서 자물쇠를 잠근 것이 화근이었다. 번호로 된 자물쇠를 최씨가 잠그는 것을 곁눈질로 본 김씨가 비밀번호를 외운 뒤 최씨가 수족관을 비운 틈을 타 자신이 탐내던 새우를 싹쓸이해 간 것이었다.

최씨는 김씨를 의심했지만 CCTV를 달아놓지 않아 물증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호회 한 회원이 김씨의 수족관을 방문해 찍은 사진이 증거가 됐다. 김씨가 훔친 새우를 자신의 것인 양 수조에 넣어둔 것을 구경하러 왔던 동호회 회원이 찍은 사진을 동호회 게시판에 올리면서 덜미가 잡혔다. 최씨는 "새우는 등 무늬가 개체마다 달라 다행히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새우들은 최씨 수족관으로 돌아왔지만 김씨 수족관과 경찰서를 오가며 스트레스를 받아 절반 이상이 폐사했다. 입건된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포란한 새우가 새끼를 낳으면 돈이 된다는 점을 알고 욕심이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열대어 동호회원 김모(44)씨는 "회원들 사이에서 고가의 열대어나 새우 등을 서로 도둑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취미로 물고기를 키우는 경우도 있지만 몸값이 수백만원까지 치솟는 개체가 생기면서 물고기나 새우가 새끼를 낳도록 유도해 판매하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새우뿐만 아니라 열대어 구피의 경우 종어(種魚)를 따로 분류하고 한 달 먹이 값만 수십만원을 들여 집중 관리하면 한 쌍에 수십만원까지 치솟는다고 한다. 손바닥만 한 크기이지만 몸에 나타나는 무늬에 따라 마리당 30만~100만원까지 치솟는 열대어도 있다.

동호회원 최모(33)씨는 "알을 밴 종어만 골라 훔쳐가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며 "공통된 취미로 친해졌는데 그렇다고 고소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수족관을 운영하는 한 40대 동호회원은 "도난을 당했다고 해도 다른 수조에 들어 있으면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눈 뜨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족관 운영하는 사람들은 CCTV가 필수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수원 남부경찰서는 지난 20일 김씨를 절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