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카마니니(Camanini·44)는 이탈리아 '괴짜 요리사'다. 지난해 그는 '돼지 방광에 요리한 파스타'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오줌보'라고도 부르는 방광에 파스타와 물, 치즈, 소금, 후추, 식용유 등 식재료를 넣고 밀봉한 다음 뜨거운 물에서 익힌다. 축구공처럼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돼지 방광을 칼로 째면 잘 익은 파스타가 쏟아져 나온다. 그는 "단지 화제를 불러일으키려고 개발한 요리는 아니다"고 했다.

"파스타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지금까지 파스타는 끓는 물에 삶기만 했어요. 하지만 돼지 방광에 익히면 삶은 것과 전혀 다른 식감이 됩니다. 전통 이탈리아 요리의 새롭고, 현대적인 재해석이 제가 요리에서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입니다." 이 파스타는 지난해 이탈리아 음식 전문지 '이덴티타 골로세'가 전 세계 음식 전문가 101명을 설문해 선정한 '올해의 요리'에 선정됐고, 카마니니는 '올해의 요리사'로 뽑혔다.

이탈리아 요리사 리카르도 카마니니가 3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 주방에서 파스타를 조리할 때 사용할 돼지 방광에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는 “과거 이탈리아에서도 아이들이 돼지 오줌보로 공을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며 웃었다.

"돼지 방광에 파스타를 요리할 영감을 어디서 얻었느냐"는 질문에, 카마니니는 가방을 뒤적여 책 한 권을 꺼냈다. 4세기 말~5세기 초 고대 로마 요리를 집대성한 '아피키우스(Apicius)' 라틴어 원본이었다. "이 책에 보면 고대 로마 사람들은 음식을 장거리 운반할 때 돼지 방광을 사용했더군요. 저장 식품이나 발효 식품을 만들기도 했고요. 이탈리아 대표 음식인 파스타를 '원조 이탈리아인'인 로마 사람들이 사용하던 돼지 방광에 요리하면 어울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시도했지요. 식당과 집에 음식 관련 서적이 2000권쯤 있어요. 책에서 요리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파스타를 끓는 물에 바로 넣어 삶지 않고 익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돼지 방광에 물과 파스타를 넣어 익히면 쫄깃하지 않고 푹 퍼지거나 서로 들러붙어 떡처럼 되기 십상이었다. 파스타의 종류와 분량을 계속 바꿔가며 2015년 12월부터 4개월 동안 매주 평균 10번 실험했다. 그 결과 카무트(kamut·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의 일종)로 만든 파스타 100g당 물 105g·페코리노(양젖치즈) 45g·올리브오일 25g·소금 1.4g·후추 0.8g을 함께 넣고 2분마다 방광을 돌려가면서 28분 익히면 완벽한 식감의 '카치오 페페 파스타'를 완성할 수 있다는 '공식'을 찾아냈다. 카치오 페페는 양젖치즈(카치오)와 후추(페페)를 주재료로 하는 로마의 대표적 파스타이다.

①잘 씻은 돼지 방광에 파스타와 나머지 재료를 넣고 단단히 묶는다. 뜨거운 물에 돼지 방광을 넣고 2분마다 돌려가며 28~32분간 익힌다. ②손님상 앞에서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돼지 방광을 칼로 짼다. ③파스타를 꺼내 접시에 담아 낸다.

TV조선이 5일까지 개최하는 '서울푸드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카마니니는 "나만의 아이디어를 음식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열네 살에 요리를 시작한 카마니니는 아무런 구속이나 제약 없이 자신의 요리 세계를 펼치기 위해 꾸준히 돈을 모았고, 마흔한 살이 되던 2014년 마침내 레스토랑 '리도 84'를 이탈리아 북부 가르다(Garda) 호숫가에 열었다. 개장하면서부터 '혁신적이고 참신하다'는 호평을 얻었고, 6개월 만에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 미쉐린(Michelin)으로부터 별 1개를 획득했다.

그는 "요즘 손님들은 단순하고 편한 음식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렇잖아도 복잡한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데, 손님들을 음식을 먹으면서까지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너무 많은 식재료를 쓰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음식은 내지 않습니다. 요리 하나당 재료는 최대 3가지를 넘지 않도록 합니다. 대신 특이하거나(crazy) 흥미로운 풍미 하나가 도드라지게 합니다. 다 먹고서 '아, 그 식당에서 이런 걸 맛봤지' 기억하도록요. 즐거운 추억,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