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의 북쪽 해자(성 주위에 둘러 판 못)에선 서기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토우(土偶·흙으로 빚은 사람 형상)들이 나왔는데, 이 중 터번을 머리에 두른 토우〈사진〉가 주목된다. 허리가 잘록한 페르시아풍의 긴 옷을 입은 이 토우는 이란계 중앙아시아인인 소그드(Sogd)인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최문정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통일 이전부터 소그드인이 경주에 왕래했을 정도로 신라의 국제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토우와 같은 곳에서 나온 목간(木簡)은 지금까지 나온 삼국시대 목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목간에서 '병오년(丙午年)'이란 글자와 6세기 초에만 쓰였던 관직명 '간지(干支)'가 확인됐는데, 목간의 제작 연대가 6세기 초 병오년인 526년(법흥왕 13)일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목간에서는 또 '삷고', 즉 사뢰고(아뢰고)를 뜻하는 '백견(白遣)' 등 통일 이후에 사용됐다고 알려졌던 이두식 표기도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