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세계사
피터 프랭코판 지음 |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 1024쪽 | 5만3000원
서기 781년, 아바스 왕조 칼리프의 아들인 하룬 알라시드의 결혼식이 바그다드에서 열렸을 때, 세계 각지에서 온 하객들에게 엄청난 선물이 쏟아졌다. 은이 가득 담긴 금 쟁반과 금이 가득 담긴 은 쟁반, 값비싼 향수를 수북이 담은 유리 그릇이 테이블에 등장했고 누구나 원하는 대로 그걸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바그다드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도시였다. 사방으로 연결된 교통로를 통해 동방과 서방의 물자가 모여들었고, 화폐경제 시스템을 타고 막대한 조세가 유입됐다.
제목만 보고 이 책을 '동서 교류의 역사' 정도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영국 역사학자이자 옥스퍼드대 비잔틴연구소장인 프랭코판(Frankopan·46)은 지금껏 우리가 세계사의 주 무대로 여겨온 '동양'과 '서양' 사이에 있는 곳이 실크로드가 놓인 '경유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세계의 중심'이었다고 말한다. 그곳은 지중해 동해안과 흑해 연안에서 히말라야 산맥과 둔황(敦煌) 인근까지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 초원과 사막과 평야와 산맥 사이로 수많은 길이 실핏줄처럼 이어진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다.
이런 인식 대전환을 바탕으로 쓴 세계사가 이 책이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곳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같은 세계 거대 종교들이 탄생해 서로 밀치락달치락한 곳이기도 하며, 수많은 언어 집단이 경쟁하던 가마솥이었다. 철학과 과학, 문학과 예술의 최고 수준 저작이 이곳에서 쓰였으며, 여기서 일어난 정치·경제적 변화의 파장은 멀리 서유럽이나 중국에까지 여진(餘震)을 미쳤다.
우리가 지닌 세계사의 상식은 뒤집힌다. 서기 751년 이슬람 제국과 당 제국 사이의 탈라스 전투에서 붙잡힌 중국인 포로가 제지법을 전파했다고? "이슬람 세계에서 8세기 후반부터 종이가 생산돼 지식 전파가 폭발적으로 이뤄진 건 사실이지만, 중국인 포로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은 잔혹한 정복 사업을 벌였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서 나온 고고학적 증거로는 폭력적인 정복의 흔적이 별로 없다." 8세기 북아프리카를 휩쓸고 유럽으로 진군한 이슬람군을 프랑크 왕국이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막아내 유럽 세계를 지키지 않았는가? "전투의 승패와 상관없이 더 진군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명이 뒤떨어진 유럽 세계를 보고 급속하게 열정이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슬람 제국에 대한 유럽의 본격적인 반격으로 알려진 십자군 원정도 이 책에선 상당히 의미가 달라진다. 예루살렘 함락 소식을 들은 무슬림 세계의 반응은 경악이 아니라 냉담과 무관심이었다. 유럽인은 문화와 상품의 수준이 높은 중동에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지만, 중동에선 유럽을 그렇게 보지 않았다.
책 후반부는 1492년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이후 세계사의 무게중심이 서유럽으로 옮겨간 뒤 상황을 서술한다. 해상 교통로를 장악한 서유럽은 마치 그 이전부터 자신들이 역사의 주도권을 잡았던 것처럼 미화하고 왜곡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크로드 지역은 이제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났는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땅 밑의 보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금광과 우크라이나 도네츠강 유역의 석탄 앞에서 열강은 군침을 흘렸다. 하지만 가장 긴요한 자원은 '검은 비단'이라 할 수 있는 석유였다. 1차 세계대전 직전 이란 유전을 확보한 영국 전함은 바다에서 독일 배보다 오래 버텼다. "연합국의 대의가 석유의 파도를 타고 승리를 거뒀다"는 말이 나왔다.
열강은 실크로드 지역의 통제권을 둘러싼 각축전을 벌였고, 그 주도권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넘어갔다. 다시 이 지역에 도전장을 내민 강대국은 과거 실크로드 동쪽에서 비단을 수출했던 나라, 바로 중국이다. 2013년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내건 중국은 유라시아 국가들을 연결해 경제벨트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낙타를 탄 상인 대신 유선 케이블망을 깔고 중앙아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은 이런 중국의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G2의 새로운 천하 전략 속에서 실크로드가 재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2015년 출간 이후 그 전복적인 시각 덕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이 책은 분명 숱한 독자들의 세계사에 대한 상식을 뒤집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서구(西歐) 중심주의'가 '중아(中亞) 중심주의'로 옮겨갔을 뿐, 역사에서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삼고 나머지 지역을 '변방'으로 치부하는 편견은 그대로다. '아시아의 한쪽 끄트머리'로 묘사된 근세 이전 중국은 비단과 도자기의 생산지 정도로만 비친다. 균형을 갖춘 역사 서술이란 이토록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