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의 샤넬', '거리의 황제'... 뉴욕 젊은이를 상징하는 브랜드, 슈프림
티셔츠에서 벽돌까지, 로고만 들어가면 완판 행렬!
루이비통 로고 베껴 고소당한지 17년 만에 루이비통이 애원하는 협력자로
매주 목요일 극소량의 신상품 출시로, 전 세계 소비자 줄세워
문턱 없는 매장, 스케이트 보드 타고 쇼핑 가능

루이비통은 2017 가을

지난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17 가을/겨울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은 ‘파격’ 그 자체였다. 슈프림의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힌 가방으로 시작된 이 컬렉션은 루이비통 남성복 역사상 가장 젊고 생동감 넘치는 컬렉션으로 기록됐다.

과연 이 패션쇼가 루이비통의 것인지 슈프림의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루이비통의 모노그램과 만난 빨간 슈프림(Supreme) 로고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콧대 높은 럭셔리 브랜드와 뒷골목 브랜드의 만남에 인스타그램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일부 평론가들은 “슈프림이 침체된 루이비통을 살려놓았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들의 만남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온라인상에는 루이비통의 모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슈프림을 5억 달러(한화 약 5,600억 원)에 인수했다는 루머가 급속도로 퍼져갔다. 곧 가짜뉴스로 밝혀졌지만, 슈프림 팬들은 푸념을 늘어놨다. “아니, 슈프림의 브랜드 가치가 고작(?) 그것밖에 안 된다고?”

◆ 루이비통의 러브콜 받은 스트리트 브랜드의 신화, 슈프림이 대체 뭐길래?

‘뒷골목의 샤넬’, ‘거리의 황제’, ‘스트리트의 끝판왕’, 슈프림을 대변하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슈프림은 1994년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에 의해 설립된 뉴욕의 스트리트 브랜드다. 희소성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비즈니스로 애플 못지않은 골수팬을 확보했다. 얼마나 팬심이 깊은지 지난해 슈프림이 로고를 새긴 벽돌을 30달러에 출시했는데, 바로 매진됐다. 이 벽돌은 곧 이베이(e-bay)에서 1,000달러에 재판매됐다. 루이비통의 디렉터 킴 존스는 “슈프림은 뉴욕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브랜드”라며 협업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슈프림 로고만 들어가면 완판! 슈프림 지하철 카드와 벽돌

슈프림의 매출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매주 매장 밖에 늘어서는 긴 줄과 몇 배의 마진이 붙어 판매되는 리세일(resell) 제품, 그리고 창업자 제임스 제비아의 개인 자신이 4,000만 달러(한화 약 470억원)로 추정된다는 사실은 그간의 성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슈프림이라는 브랜드를 몰라도 빨간 박스 안에 흰색 글씨가 들어간 슈프림 로고는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젊은이들이 많은 카페에 가면 노트북에 슈프림 로고 스티커를 부착한 이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빨간 박스 로고는 미국 개념주의 예술가 바바라 크루거 (Barbara Kruger)의 작품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에서 따온 것이다. 슈프림은 직역하면 ‘최고’를 뜻한다.

◆ 성공비결 1. 매주 극소량 생산, ‘Drop’ 시스템

매주 목요일 뉴욕 맨하튼 라파예트 거리의 슈프림 매장 앞엔 진풍경이 펼쳐진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긴 행렬, 이 가운데는 전날 밤부터 노숙을 한 사람들도 꽤 있다. 오전 11시 매장문이 열리지만, 매장 안에는 10명씩밖에 들어갈 수 없기에 줄은 더디게 줄어든다.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상품은 아이템당 한 개, 사람들은 당장 필요가 없어도 무조건 구매를 한다. 일단 ‘득템’하기만 하면 이베이에 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 슈프림 매장 앞은 신상품을 기다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보통의 브랜드가 한 시즌의 컬렉션을 한 번에 발매하는 것과 달리, 슈프림은 매주 적은 수량의 아이템을 선보인다. 이를 ‘드랍(Drop)’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한정된 물량이 출시되다 보니 대부분의 제품이 발매와 동시에 매진되거나, 며칠 안에 완판된다.

슈프림의 온라인 매장도 전쟁터다. 출시와 동시에 완판이 되다보니, 유튜브와 블로그 등엔 ‘카드 결제를 빨리하는 법’과 같은 튜토리얼이 게시되고, 자동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매크로 프로그램 ‘슈프림 봇(Bot)이 거래되기도 한다. 이날 팔린 상품들은 몇 시간도 안 돼 비싼 값이 매겨져 이베이에 올라온다. 애초 발매가 18만 원의 박스 로고 후드 티셔츠가 120만 원까지 뛰는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치기도 한다.

슈프림을 열광케 하는 또 다른 요소는 오로지 400벌,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콜라보레이션이다. 이제는 당연해진 콜라보레이션과 한정판매의 시초가 바로 슈프림이다.

슈프림 X 나이키 에어조던 5

매주 드랍에는 협업 제품이 출시되는데, 그 리스트가 화려하기 그지없다. 나이키, 반스, 노스페이스 등 유명 브랜드부터 꼼데가르송, 톰브라운 등 럭셔리 브랜드, 장 미셸 바스키아와 데미안 허스트 같은 아티스트까지 브랜드와 장르를 넘나든다. 케이트 모스와 마이클 잭슨, 커밋도 협업 리스트에 올랐다. 지금까지 700건이 넘는 협업이 진행됐다. 이쯤 되면 루이비통이 왜 수프림과 협업을 진행했는지 수긍이 간다.

◆ 성공비결 2. ‘스케이트 보드’라는 명확한 아이덴티티와 문제아스러운 비지니스 컬처

슈프림 뉴욕 매장에는 문턱이 없다. 스케이트 보드를 탄 채로 매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고안했기 때문이다.

슈프림은 처음부터 스케이트 보드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보드를 탈 줄 몰랐던 창업자 제비아는 뉴욕 뒷골목의 스케이트 보더를 매장 직원으로 채용하는 자구책를 발휘한다. 오픈 첫날부터 스케이트 보더들이 매장으로 몰려왔고, 매장은 곧 뉴욕 스케이트 보더들의 아지트가 됐다. 직원들은 보드를 탄 채 매장을 돌아다녔고, 특유의 자유분방함으로 고객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불편함보다는 스케이트 보드를 즐기는 이들의 문화로 받아들여졌다.

매장 가운데 볼을 만들어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도록 한 LA 매장 전경

직원과 고객들은 함께 보드 스킬을 나누며 문화를 만들어 갔고, 심지어 ‘슈프림’이라는 이름으로 스케이트 보드팀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럽게 데크(스케이트 보드 판)와 티셔츠가 팔려 나갔다.

론칭 초 슈프림은 도심 여기저기에 로고 스티커를 붙이는 게릴라 마케팅을 즐겼는데, 이는 슈프림이라는 브랜드를 확실히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슈프림은 케이트 모스가 등장한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광고 위에 빨간 박스 로고를 붙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일로 인해 슈프림은 판매중지 처분을 받았다.

2000년에는 루이비통의 모노그램을 데크에 새겨 팔았다가 판매중지 처분을 받았다. 2003년에는 뉴욕 포스트에 슈프림 티를 입고 있는 금융사기범의 체포 사진이 실렸는데, 그 사진을 그대로 티셔츠에 프린트해 출시하기도 했다. 이런 반사회적이고 반항적인 태도는 10~20대 젊은 보더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루이비통의 카피로 고소를 당했던 슈프림이, 17년이 지난 지금은 루이비통을 구원한 구세주가 됐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루이비통은 2017 가을

◆성공비결 3. ‘품질’ 티셔츠 한 장을 만들어도 제대로

슈프림이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단지 한정판매 전략이나 스케이트 보드를 중심으로 한 컬처 마케팅 때문만은 아니었다. 슈프림의 옷을 입어본 사람들은 슈프림의 장점으로 ‘품질’을 꼽는다. 스웨트셔츠 한 장을 만들어도 두툼하고 좋은 품질의 원단에 로고를 튼튼하게 박아 제대로 만든다. 그리고 경쟁 브랜드보다 조금 더 비싼 값에 판다. 사람들은 이 차이를 수긍했다.

제임스 제비아는 과거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에 충실한 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슈프림의 성공을 묻는 질문에 “딱히 비결이랄 것은 없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 팔기 때문에 비즈니스가 잘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4년 캘빈클라인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2004 봄

슈프림은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전 세계 네 국가에서만 공식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본진인 미국에도 매장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단 두 곳뿐이며, 유럽에도 런던과 파리에 각각 하나의 매장이 있다. 파트너가 운영하는 일본에만 도쿄, 나고야 등 6개의 매장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주 목요일 전 세계 슈프림 매장은 긴 줄로 장사진을 이룬다.

슈프림의 경영방식은 건방질 정도다. 제임스 제비아는 “600개를 다 팔수 있어도 나는 무조건 400개만 만들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려면 사고 안 사려면 말라는 식이다. 라인을 확장하고, 물량을 늘리고, 유명 백화점에 입점했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몇 개의 매장과 웹사이트를 통해 한정 수량만을 판매하고, 돈에 집착하지 않는듯한 태도를 보인다. 바로 이것이 ‘슈프림 다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