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에서 한반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화제가 됐다. 정지상이 세상을 떠난 때가 1135년이니, 약 1000년 전 사건 때문에 후손이 고통받은 셈이다.
이 할아버지께서 유독 유별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특정 가문 사이 혼약을 피하는 풍습이 꽤 있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라면 아직 이런 관행을 지키는 분이 계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앞서 본 경주 김씨-서경 정씨 사례처럼 서로 통혼을 피했던 가문이 어디 어디 있는지 짚어보도록 하겠다. 아무리 흐지부지된 옛 시절 관습이라도, 따르는 이가 아직 있는 이상 상식 정도로 알아둬서 나쁠 건 없을 테니.
#연일 정씨 – 광산 이씨
조선 선조 시절이던 1589년 정여립이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는 상소가 조정에 올라왔고, 대사간(大司諫) 이발이 이 사건에 휘말려 문초를 받다 죽음에 이르렀다. 그의 혈육 역시 대부분이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고, 아들 하나만이 종의 아들과 옷을 바꿔입고 화를 피해 살아남아 대를 이었다.
사실 이발의 죽음은 당시 국왕이던 선조의 뜻이 반영된 것이었다. 이발은 과거 “선조 임금 아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해 왕의 눈 밖에 났었다 한다. 그러나 이발의 본가(本家)던 광산 이씨 문중의 분노는 수사 책임자 정철에게 쏠렸다.
그 때문에 이들은 정철의 가문인 연일 정씨를 함께 하늘을 지고 살 수 없는 원수로 여겨, 제사상에 올릴 고기를 다질 때마다 칼 소리에 맞춰 원수의 살을 저민다는 의미로 “정철정철정철…”이라 읊조렸다. 실제로 지난 2008년 1월 KBS에서 방영된 ‘한국사 傳 – 시인은 왜 당쟁의 투사가 되었나, 송강 정철’ 편에서 현재까지 이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을 방영하기도 했다. 사무친 한이 이 정도니, 한동안 연일 정씨와 사돈 맺기를 꺼린 건 물론이다.
여담으로, 훗날 어쩌다 이발 방계 가문 남자와 정철 방계 가문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됐는데, 집안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이 여성도 제사를 앞두고 별 수 없이 “정철정철정철…”거리며 고기를 다졌다는 야사(野史)가 있다. 다만 보다 못한 시아버지가 “너는 그러지 마라”며 말렸다고는 한다.
#남평 문씨 – 순흥 안씨
원수지간 가문끼리만 혼인을 꺼리는 건 아니다. 되려 집안 간 사이가 너무 돈독해서 통혼을 피했던 경우도 있다. 남평 문씨와 순흥 안씨가 이 사례다.
정확한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과거 남평 문씨 집안 청년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던 중 순흥 안씨를 만나 길동무 삼았는데, 서로 마음이 잘 통해 의형제를 맺었다 한다. 이후 남평 문씨 가문과 순흥 안씨 가문은 비록 피는 다르지만 형제 집안이라 해서 결혼을 피했다 한다. 여담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남평 문씨,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는 순흥 안씨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순흥 안씨다.
물론 요즘엔 별 의미 없는 이야기다. 사실 두어 시대 전 분인 독립유공자 문양목(1869~1940,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선생만 해도 어머니가 순흥 안씨 가문 출신이다.
#김해김씨 – 허씨 / 인천 이씨
국내 모든 허씨 가문 선조는 가야 수로왕과 왕후 허황옥이다. 아유타국 출신인 왕후가 수로왕에게 "저는 타지방 사람이니 훗날 후손이 남지 않을까 두렵다"며 청해 아들 열 명 중 둘을 허씨로 삼았다 한다. 현재는 태인 허씨, 하양 허씨, 양천 허씨 등 허씨 본관이 다양하지만, 이들 모두 거슬러 올라가면 수로왕의 두 아들이 시조다. 수로왕은 김해 김씨 시조니, 결국 김해 김씨와 허씨는 한 줄기에서 뻗은 가지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인천 이씨도 이들과 혼인을 피했다 한다. 통일신라 시절 김해 허씨 가문 사람인 허기(許寄)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안녹산의 난을 맞아 당 현종 호위에 참가했고, 그 공로로 이씨 성을 하사받았다. 허기는 이후로도 쭉 허씨 성을 유지했지만, 그 후손 중 허사문이 고려 태조 왕건의 딸과 결혼해 낳은 아들 중 둘째가 이허겸(李許謙)으로 개명해 인천 이씨가 탄생했다. 이 때문에 인천 이씨도 김해 김씨나 허씨와 같은 가문으로 친 것이다.
#동성동본 결혼도 가능해진 마당에
물론 옛 시절 이런 전통이 있었다 한들, 요즘 세상에서도 이를 지킬 이유는 없다. 사실 동성동본 금혼제도 폐지로 아예 같은 본관 성씨끼리도 결혼이 가능해진 것만도 벌써 20년 전 일이다.
한 가문 출신끼리도 부부가 될 수 있게 된 마당에, 다른 가문과의 수백년 전 인연을 짚어가며 사랑하는 이들을 가로막는 건 그리 합당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