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과 간담회 하는 김동연 부총리

"부총리 언급 이후에 확실히 토요일엔 카카오톡 메시지가 안 오더라구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토요일 카톡금지령을 내린지 약 보름, 기재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주말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상급자의 결단이 조직에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대목이다.

사무실에 머무는 시간이 길 뿐 아니라 퇴근 후 울리는 카톡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카톡금지법' 등이 업무로부터의 완벽한 분리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김 부총리 "토요일엔 직원들 쉬도록 해야"

9일 기재부에 따르면 김 부총리는 지난달 2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효율적인 업무스타일을 구축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회의에서 "토요일은 웬만하면 직원들이 쉬도록 해 주말이 있는 삶을 보장해 주길 바란다"며 "전화와 카톡 등 업무관련 연락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나부터 주말에는 극히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보고받거나 사무실에 나오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후 3번의 토요일을 보낸 현재 예전과 비교해서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기재부 직원들의 평가다.

기재부의 A사무관은 "일요일에는 근무해야 하는 날이 많으니 어쩔 수 없지만 토요일은 아예 업무 관련 카톡이 안 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B과장은 "평소 주말에도 갑자기 업무 관련 지시가 생각나면 잊어버릴까봐 습관적으로 카톡이나 문자를 보내곤 했었는데 부총리의 당부가 있은 후로는 아무래도 자제하게 된다"고 말했다.

C과장은 "1:1 카톡도 그렇지만 단체카톡이 줄어든 것이 좋은 점"이라며 "주말인데도 실국별 단체채팅창에 업무 관련 얘기를 꺼내면 마치 그 사람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는 노는 사람처럼 여겨져 경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니 피곤한 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다만 조직의 장(長)이 아무리 주말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해도 업무 자체가 많으니 피부에 와 닿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공무원은 주말이 보장된다는 통념과는 달리 정부 부처는 일요일에 업무를 봐야 할 때가 부지기수다. 특히 업무영역이 넓고 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와 조율해야 할 일이 많은 기재부는 업무량이 과중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새 정부의 정책 기틀을 잡아야 할 시기인데다 여름철마다 내놓는 세제개편안, 예산안 편성 등이 예정돼 있다. 추가경정예산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위한 대응, 가계부채종합대책 등 기재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정책시리즈가 줄줄이 발표될 예정이다. 야근은 일상인데다 여름휴가도 쉽지 않다는 게 기재부 직원들의 하소연이다.

C과장은 "새 부총리 취임 이후 기대는 하고 있지만 너무 바쁘다보니 아직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주말카톡서 자유롭기 위해선 인식개선이 먼저

사기업에서도 업무용 카톡으로 인한 피로도는 극심하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전국의 제조업 및 주요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 24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업무시간이 아닌데도 스마트기기를 사용해 업무를 해 본 경험이 있는 근로자는 전체 응답자 중 70.3%(1688명)로 조사됐다. 개인적 여가시간에도 스마트기기를 통해 업무 수행을 권유받고 있는 근로자도 29.3%에 달한다.

이 때문에 지난 대선 때 유력 후보들은 너도 나도 근로자들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공약을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퇴근 후 업무 지시 제한을 공약으로 발표한 바 있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프랑스에선 올해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도입한 새 노동법을 적용하고 있다. 업무시간 이외에는 이메일을 보내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응답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근로자의 휴식 시간에 업무상 연락을 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차단된다. 근로시간대 종료 30분 이후 회사 스마트폰의 이메일 기능이 차단되고 다음날 근로시간 30분 이전에 서버기능이 다시 가동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철저히 분리하는 인식이 갖춰지지 않으면 법이 완비되더라도 실생활에선 여전히 껄끄러운 상황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단 업무지시 뿐 아니라 직장 단톡방에는 사적 대화도 수시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서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강모(35)씨는 상사가 시도 때도 없이 올리는 사진이 스트레스다. 상사가 주말에 어느 산을 등반했는지 전혀 알고싶지 않은데도 저절로 알게 되는 상황에 한숨만 나온다.

강씨는 "퇴근 이후나 주말에도 팀 단톡방에 꽃이나 음식, 일몰, 본인의 사진 등을 마구 보내는 50대 상사가 있다"며 "반응을 안 하면 안 한다고 뭐라고 하기 때문에 대꾸하는 것도 고역"이라고 토로했다.

강씨는 "월요일 아침 환담이면 충분할 얘기를 주말에 단톡방에서 보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며 "팀원들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지만 오롯이 사적인 시간인 주말까지 직장 동료들과 연결되고 싶진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