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한 성직자는 최근 인터넷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인천 초등학생 여아 살해 사건의 공범인 박모(19)양의 아버지로 지목돼 질타를 받고 있었다. '성직자라는 사람이 자식 교육을 어떻게 그리 엉망으로 시킬 수 있는가' '돈을 쏟아부어 변호사들을 선임했다' 등 사실과 무관한 글이 퍼져 있었다. 이 성직자는 "사람들이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나에게 올가미를 씌우고 있다. 법적 대응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신상 털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지난 3월 발생한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 피의자 부모들이 타깃이 됐다. '주범 김모(17)양의 부모가 전문직인데, 딸이 정신병 치료를 받아왔다는 점을 내세워 감형(減刑)에 힘쓴다' '공범 박양의 부모는 성직자인데 일류 변호사로 사건을 무마시키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이들의 직업과 이름 등 신상명세를 털겠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전혀 무관한 사람의 신상이 공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네티즌들의 무분별한 '신상 털기'는 애꿎은 피해자를 낳고 있다. 김양의 어머니가 근무하는 직장으로 지목된 곳은 한 달이 넘도록 "어떻게 그런 사람이 다닐 수 있느냐"는 항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김양의 아버지가 의사라는 이야기에 인천 시내 병원들도 곤란을 겪었다. 인천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거기가 김양 아버지가 근무하는 병원이 맞느냐'는 항의 전화가 쏟아져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라고 밝혔다. 미성년자의 범죄에 대해선 부모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무관한 사람의 사생활까지 마구잡이로 공개되는 피해가 나오는 것이다.
지난해엔 소셜 미디어에서 유행한 한남패치(사생활이 문란한 남성을 폭로하는 계정), 강남패치(유흥업소 종사 여성을 폭로하는 계정)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속출했다. 유흥업소 종업원이라며 사진이 공개된 한 여성은 결혼을 앞둔 일반인이었으나, 신상 털기 탓에 파혼에 이르렀다. 신상이 공개된 사람 중 일부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알려졌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상 털기는 언론에 익명으로 보도되는 사람들의 정체를 드러내 사회적인 수치심을 주려는 대중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신상 털기에 나선 네티즌들은 자신이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당수가 무책임하게 허위 사실을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