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꿈에서 보았다. 드넓은 초원과 수천마리의 홍학떼를. 푸른 바다와 만년설이 앉은 산을. 잠에서 깨자마자 ‘탄자니아’라는 단어가 머리에 박혔다. ‘비전트립’이라 이름붙인 이번 여행은 이렇게 시작했다. 명주, 보라, 연진, 수희, 성현. 5명의 청춘과 팀을 꾸렸다. 7월 22일부터 30일까지 8박 9일동안 이들과 함께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담았다. [프롤로그]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인천에서 카타르 도하까지 10시간, 도하에서부터 또 6시간. 환승 시간까지 포함해 모두 20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아프리카.

다르에스살람 쥴리어스 니에레레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이 느껴진다. 햇볕은 뜨겁지만 바람만큼은 시원하다. 바람에선 커민가루 향이 났다.

다르에스살람 공항의 수하물 수취 공간, 사람은 가득하고 수하물 안내 화면엔 항공편명이 나오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기까지 2시간이 걸렸다.

◆ 탄자니아 최대 상업도시, 다르에스살람

공항 입국 심사대 앞에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입국 비자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한국에서 비자를 미리 발급받았던 우리 일행은 빠르게 입국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탄자니아 방문 계획이 있다면 국내에서 비자를 발급 받는 것을 추천한다.

공항 내 수하물 수취 공간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 짐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수하물용 카트는 대부분 바퀴가 훼손돼 짐을 올리지 않아도 끌기가 어려웠다.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에 왔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공항 도착 후 2시간이 지나서야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마자 택시 기사들의 호객 행위가 이어진다. 모두 다 첫마디를 ‘치나?’(중국인?)라고 던진다. 처음 몇 번은 ‘코레아’라고 답하다가도 계속 듣다보니 그러려니하고 답을 넘기게 된다. 다르에스살람에선 일반 택시보단 우버(UBER)택시를 이용하면 편하다. 택시 기사와 택시비를 놓고 흥정할 필요도 없고, 원하는 지점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궁에서 한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르에스살람의 수산시장. 인도양 해역에서 잡힌 다양한 생선을 볼 수 있다.

토요일 오후였지만 도로 곳곳이 막혔다. 평일엔 정체가 더욱 심하다고 현지 가이드가 소개했다. 차가 신호대기를 하면 인도에 있던 상인들이 창 쪽으로 다가온다. 상인들의 손에는 캐슈넛과 과일, 또 각종 생활용품이 들려있다. 이들 역시 ‘치나?’라고 말을 건다. 최근 중국이 아프리카 진출에 적극 나서면서 아프리카를 찾는 중국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현지 가이드는 설명했다.

인도양에 접한 다르에스살람엔 아름다운 해변이 많다. 코코비치나 슬립웨이 등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다르에스살람 곳곳의 시장을 돌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탄자니아 대통령궁에서 불과 한블록 떨어진 수산시장에선 다랑어에서부터 랍스터, 코코넛크랩 등 인도양의 풍부한 어족자원을 만날 수 있다.

이 수산시장에서 대통령궁으로 향하는 길의 이름은 ‘버락 오바마 드라이브’,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탄자니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해 붙인 이름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응고롱고로 분화구. 응고롱고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분화구다.

◆ 야생동물의 에덴동산 ‘응고롱고로’

다르에스살람에서 사흘밤을 지낸 우리 일행은 아루샤로 이동했다. 탄자니아 북쪽, 케냐 국경지역과 가까운 아루샤는 세렝게티나 킬리만자로를 찾는 사람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다르에스살람에서 아루샤까지는 경비행기로 2시간 가량 걸렸다.

해발고도 1300m에 위치한 아루샤는 다르에스살람보다 훨씬 선선했다. 아루샤에서 사파리&트래킹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효영 킴앤드디조익스페디션 대표는 “아침, 저녁으론 날씨가 꽤 추우니 긴팔이나 바람막이를 꼭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7시30분, 8인승 사파리 밴을 타고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응고롱고로(Ungoronggoro)는 마사이어로 ‘큰 구멍’이라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분화구가 바로 응고롱고로다. 아루샤에서 북서쪽으로 180km 지점에 위치한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입구까지 사파리밴을 타고 3시간이 걸렸다.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홍보관엔 일장기가 많이 보인다. 이 홍보관은 일본 정부가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지원해 지어졌다. 세렝게티 국립공원 홍보관엔 태극기가 걸릴 예정이다. 코이카는 2015년부터 150만달러를 들여 세렝게티 홍보관 개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세렝게티 홍보관은 올해 완공될 예정이다.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을 달리고 있는 사파리 투어 밴.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입구에서 허가를 받고 입장한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준 건 원숭이 무리였다. 차량을 타고 30분쯤 달리니 전망대가 나왔다. 넓은 응고롱고로 분화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600m 가량 고도차가 난다. 사파리밴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변하는 식생태계를 관찰하는 것도 사파리 투어의 재미 중 하나다.

분화구 정상에서부터 내려가기 시작하자 야생동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품바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멧돼지와 얼룩말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응고롱고로에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기린도 볼 수 있었다.

분화구 평지 지역엔 야생 동물이 가득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응고롱고로는 1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아 야생동물의 에덴동산이라고 불린다. 수천마리의 얼룩말과 누를 볼 수 있으며, 사자와 코끼리, 하마 등 대형 포유류도 서식하고 있다.

이 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은 식량이 풍부해 이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응고롱고로는 동아프리카 야생 생태계의 축소판이 됐다. 제한된 시간에 야생 동물 사파리를 즐기기엔 최적의 코스다.

응고롱고로에서 북서쪽으로 더 이동하면 세렝게티 국립공원이 나온다. 세렝게티를 찾은 사람들은 캠핑까지 하며 사파리를 즐긴다. 다음날 잔지바르로 떠나야 하는 우리 일행은 캠핑은 다음으로 미루고 숙소로 돌아왔다.

잔지바르의 ‘샌드뱅크’. 에메랄드 바다와 백사장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 노예의 눈물이 서린 섬, 잔지바르

잔지바르로 향하는 날, 아루샤 공항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탄자니아 국내항공 예약 사이트인 ‘에어비바’(www.air-viva.com)에서 항공사로 예약 사실을 전하지 않은 것이다. 일행 6명 중 3명은 빈자리가 있어 예약한 비행기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3명은 항공티켓을 따로 구해서 이동해야 했다.

김효영 대표는 “티켓 중개 업체를 거치지 않고 여행사에서 직접 티켓을 구매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당일 저녁 잔지바르 행 에어탄자니아 좌석을 구할 수 있었다.

제주도의 1.3배 정도 되는 잔지바르는 아프리카의 보석으로 불릴 저도로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자랑한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백사장,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잔지바르는 천년 이상 아프리카, 인도, 아랍, 유럽의 무역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러한 역사로 인해 잔지바르엔 다양한 문화가 혼합돼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아랍이다. 잔지바르 스톤타운은 아랍식 석조 건축물로 이뤄져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곳곳에 숨은 역사의 흔적은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준다.

노예 무역의 아픈 역사를 기리는 기념물. 석상과 석상을 연결한 체인은 실제 노예를 결박할 때 사용됐던 물건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독특한 문화를 간직한 잔지바르는 노예 무역의 본거지라는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서아프리카 세네갈에서 팔린 흑인 노예는 유럽과 북미로, 잔지바르에서 팔린 흑인 노예는 중동과 인도로 떠났다.

스톤타운의 ‘노예시장’ 유적지는 노예의 비참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예상들은 성인 10명이면 꽉 찰 창고같은 공간에 50~75명을 가두고 최소한의 식량과 물을 공급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하는 것이야 말로 건강한 노예를 증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잔지바르의 석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지, 그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