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족(族)'이라는 말이 유행이 된 지 오래다. 인생을 후회 없이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욜로'처럼 살다 '골로' 간다는 뜻의 '골로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골로족은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들이다. 지출이 많은 식비를 줄이기 위해 고구마 한 박스, 계란 한 판 등 대량으로 음식을 사서 한 가지 음식으로만 식단을 짜기도 한다. 건빵이나 대용량 냉동 볶음밥 등 싼 가격에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들이 '인간 사료'라 불리며 인기를 끈다. 인터넷에선 맥주 등 야식비를 줄이자는 '야뿌(야식 뿌리치기)'나 '하루 5000원 이하 절약 식단' 등의 노하우를 공유한다. '출출할 땐 음식 대신 얼음·사탕을 씹어 먹거나 물을 마시면 식욕을 줄일 수 있다' 같은 내용들이다.

서울 중구 한 금융회사의 입사 1~2년 차 5명이 이달 초 '자아비판 모임'을 만들었다. 비판의 대상은 영수증. 한 달치 영수증을 모아 서로 분석하며, 지출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다. 첫 모임에선 "이 브랜드는 매달 정기 할인을 하는데, 왜 할인 이틀 전에 샀느냐" "묶은 머리가 어울리는데, 파마·염색에 30만원이나 썼느냐"는 말들이 오갔다. 참석자 절반 이상이 '쓸모없이 쓴 돈'이라고 판단한 지출액을 합산했다. 그 금액이 가장 많은 사람이 그날 저녁을 샀다. 이들은 매달 첫 금요일 정기적으로 이 모임을 갖기로 했다. 한 참석자는 "모임 이후 커피값·택시비 등을 줄여 한 주 동안 5만원 정도 지출을 줄였다"고 했다.

[쓸데 없이 돈 쓴 나를 비판합니다… 저는 '골로족'이니까요]

주부들이 알뜰하게 살림을 꾸리기 위해 수입과 지출을 꼼꼼히 기록하던 가계부. 디지털 세상에 요즘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많다. 연말이면 각종 가계부가 쏟아져 나오고, 여러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는 매장 안 두 곳에 가계부 코너를 따로 마련했다. 특히 취업난·전세난 등으로 쪼들리는 20~30대 젊은이들에게 예상 외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 층을 타깃 삼아 알록달록한 색깔과 귀여운 일러스트로 꾸민 가계부가 출시되고, 농협에서 매년 무료로 배포하는 가계부는 다양한 생활 정보가 듬뿍 들어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서울에서 구하기 어려워 일부러 지방 농협을 찾아간다거나 유료로 사겠다는 사람도 있다. 젊은이들을 겨냥해 가계부를 펴낸 한 직장인은 "가계부를 작성하면서 즉흥적 소비를 줄였고, 돈을 안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더 잘 쓸 수 있게 됐다"며 "또래들끼리 팁을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다 보니 가계부 쓰는 재미가 더욱 커졌다"고 했다.

["적은 돈… 손으로 쓰며 관리할래요"]

'편의점 포차'에서 모이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편의점 포차는 말 그대로 소주·맥주에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냉동 및 냉장 식품, 과자, 라면 등을 안주로 파는 '수퍼형 주점'이다. 최근 1~2년 사이 기존 음식점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술과 안주를 내놓는 수퍼형 주점이 대학가와 각 지방 번화가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 수퍼형 주점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늘었다 사라졌던 '편의방(편의점과 주점을 합친 것)'과 닮은꼴이다. 주로 지갑이 얇은 청년층이 값싸고 편안한 술자리를 즐기기 위해 찾는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수퍼형 주점은 불황 속 주머니 사정이 힘든 고객층을 재미있고 신선한 방식으로 공략하기 위해 만든 아이디어"라며 "값싼 술과 안주를 찾는 고객과 저렴한 비용으로 창업하려는 창업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수퍼형 주점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포차',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의 아지트]

골로족과 일맥상통하는 코드 '궁상'은 현 세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 청년 실업자는 120만명, 청년 실업률은 11%를 웃돈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해도 월급은 빚을 갚는 데 대부분 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가계 신용 잔액'(가계가 은행·보험·대부업체 등에서 받은 대출과 결제 전 카드 사용액까지 포함한 금액)은 1359조7000억원으로, 국민 한 사람당 2600만원의 빚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계와 싸우는 하루하루가 전쟁인 셈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청자는 드라마와 예능 속 궁상을 보면서 웃고,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다. 팟캐스트 라디오로 출발해 최근 몇 달간 프로그램 1위를 놓치지 않았고, 결국 방송까지 진출한 '김생민의 영수증'은 의뢰인의 한 달 치 영수증을 보고 저축액과 돈 아끼는 법을 조언해준다. 페디큐어를 하지 말고 발을 모래 속에 감추라든지, 소화제를 사지 말고 점프를 통해 소화시키라든지 하는 '궁상스러운' 유머 속에 '근검절약의 아이콘' 김생민이 강조하는 '절실함'이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MBC)에 출연한 배우 이시언은 "쇼핑은 '중고나라'에서 즐긴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취업 준비생 A씨는 "현실과 동떨어진 화려한 삶보단 나와 별반 다른 바 없어 보이는 '궁상'을 볼 때 더 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이나정 PD는 "사고 치고,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시청자는 자신의 팍팍한 처지를 TV 궁상 코드에 비추어보는 듯한 '거울 효과'로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네"… 궁상 男女, 청춘을 위로하다]

당장의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실적인 삶을 산다'는 이러한 모습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원해서가 아니라,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젊은 층의 소비 감소는 통계로 나타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대 이하 가구주의 월평균 실질 소비 지출은 2007년 170만원에서 2016년 150만원으로 9년 사이 20만원 줄었다. 40대와 50대의 지출이 각각 20만원씩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저렇게까지 해야 해?'라며 가볍게 웃어 넘기다가도,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김생민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한번 사는 인생, 즐기는 법'이 다가 아니라 '한번 사는 인생, 꾸준히 잘 살아내는 법'도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