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는데,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 일부가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뇌물 공여에 대한 판단과 뇌물 수수에 대한 판단은 동전의 양면 관계"라는 말이 나왔다.
'뇌물 혐의'는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도 핵심 쟁점이다. 판단 근거가 되는 증언이나 서류 증거가 거의 같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 선고 결과가 박 전 대통령 선고의 '예고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두 사람은 기소된 시기가 달라 따로 재판받고 있다.
이 부회장 재판부는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승마 지원금 72억9000여만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000만원 등 총 89억여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89억원 뇌물 수수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해 2015년 7월 25일 단독 면담에서 이 부회장에게 승마 지원을 요구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 독대하면서 (승마협회) 임원 교체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등 이 부회장을 강하게 질책하고, 승마 지원이 이뤄진 후에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최씨로부터 승마 지원 진행 상황을 계속 전달받아 온 것으로 보이고, 최씨의 독일 생활이나 주변 인사를 직접 챙기기도 한 점 등을 종합하면 공모 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영재센터가 최씨의 사익 추구 수단인 점을 알면서 이 부회장에게 빙상 단체 지원 등을 요구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지원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가 관계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김영한(사망) 전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 일지에 '삼성 경영권 승계 모니터링'이라는 메모가 있고, 지난 7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캐비닛에서 삼성 관련 보고서가 발견된 점 등이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대통령의 적극적 지원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 뇌물을 공여했다"고 밝혔다. 통상 뇌물 수수자가 공여자보다 엄한 처벌을 받는 점 등을 감안하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가 인정될 경우 중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은 뇌물이 아니라고 봤다. 박 전 대통령도 이 부분 뇌물 수수 혐의는 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삼성을 포함한 18개 그룹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774억원을 강제 모금한 혐의(직권남용·강요)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이 혐의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이 최씨의 사익 추구 수단이었고, 박 전 대통령도 이에 관여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재단 설립과 출연 과정은 청와대 경제수석실 주도로 이뤄졌고 기업들은 대통령의 관심 사항에 따라 전경련의 사회협력비 분담 비율로 책정된 출연금을 어쩔 수 없이 납부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했다. 재단 출연이 강요로 이뤄졌다는 점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롯데와 SK에 면세점 허가 등을 대가로 160억원가량을 요구하거나 받은 혐의(뇌물 수수·요구)도 받고 있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SK는 기소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이재용 부회장 재판과는 연관성이 없고 아직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 혐의 등을 포함해 모두 18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현대차나 KT, 포스코 등 8개 기업에 최씨를 위해 이권(利權)을 요구한 혐의,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 47건을 유출한 혐의 등이다. 또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명단인 '블랙리스트'를 만들라고 지시한 혐의도 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지난 5월 23일 첫 공판 이후 매주 4차례씩 59회 열렸다. 그러나 아직 뇌물 수수 혐의 부분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구속 재판 시한인 10월 17일 이전에 선고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