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떨어져 파인 땅에 한 송이 망초꽃이 피었다. 평화 위해 싸우다 한 줌 재로 스러진 군인들 돌무덤 위로 붉은 꽃비가 내린다. 화가 송창(65)은 "우리 땅 어느 한 곳도 그늘 없는 곳이 없잖아요"라고 했다. 그 그늘 위에 꽃을 얹어주고 싶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꽃그늘' 전시다.

화가 송창이 경기도 연천 유엔군 화장터의 풍경을 담은‘그곳의 봄’앞에 섰다.

송창은 '임술년' 창립 동인으로 우리 현대사의 아픈 현장들을 화폭에 담아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1980년대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두루 선보이지만, 관람객의 눈길을 붙드는 건 단연 '꽃그림'이다. 화가의 가슴에 꽃이 들어온 건, 2010년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유엔군 화장터를 방문하면서다. "6·25전쟁 중 중공군에 의해 전멸된 영국군 1개 부대의 넋이 잠든 곳이지만 모두에게 잊혔지요. 돌과 시멘트를 비벼 급조해 만든 화장터는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스산한 분위기였어요. 그곳에 누가 놓아두었는지 모를 오래된 조화가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공원묘지의 버려진 꽃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애도, 산 사람과 죽은 자의 매개"로서 꽃을 유화가 그려진 캔버스 위에 하나둘 붙이기 시작했다. 녹슨 경원선 철로, 임진강 나룻길, 비무장지대 등 전쟁이 할퀴고 간 자리마다 화사한 꽃송이들이 피었다.

세 개의 화면으로 분할된 대형 그림 '그곳의 봄'(2014년)이 대표작이다. 잊힌 화장터 풍경을 가운데 두고 하얀 망초꽃과 영국을 상징하는 개 레트리버를 좌우에 그린 뒤 붉은 꽃을 뿌렸다. 맞은편 벽에 걸린 그림은 '그곳의 봄'과 대구를 이룬다. 화장터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에 있는 남계리 주상절리 풍경.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 눈물날 만큼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는 곳이지요. 삼국시대 이래 군사적 요충지로, 전쟁 때 영국군이 전멸한 곳이기도 하고요." 그 역설의 슬픔이 깊어 화가는 눈부시도록 청명한 하늘을 온통 붉은 물감으로 뒤덮은 뒤 '꿈'(2013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24일까지. (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