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화(墨畵)

물 먹은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1921~1984)('김종삼전집', 나남출판, 2005)

"이 소하고 나하곤 같이 죽을 거래이…" "(소가 먼저 죽으면 장사) 치러 줘야지, 내가 상주질할 긴데, 허허".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에서 마흔 살 소를 바라보며 팔순 농부가 한 말이다. 이려, 워워, 어저저, 이려쩌쩌 소리에 맞춰 메고 지고 갈고 끌면서 사십여 년을 동고동락한 일소(農牛), 이런 소는 가축이 아니다. 한솥밥을 먹는 살아있는 입, 생구(生口)다.

시 속의 '물 먹은 소'도 할머니와 함께 논밭을 일구고 짐을 져 나르며 한생을 늙었을 것이다. 봄 여름 가을을 함께 일했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의 발잔등이 부은 것도, 서로가 적막한 것도 이심전심했을 것이다. 소의 목덜미에 얹은 할머니 손바닥의 어루만짐이 어르는 침묵의 결이고 마음의 길이다. 물도 먹었으니 묵화의 농담(濃淡)처럼, 흑백의 여백처럼, 번짐이든 스밈이든 지남이든 그윽할 것이다. 그득한 적막 속에서 겨울을 향해 함께 저물어간다는 공감의 공생, 연민의 연대, 늙음의 늑장, 지난한 지남들, 그러한 쓰담쓰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