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박연(金箔宴). 금박 잔치라는 뜻의 이 공방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다. 북촌한옥마을 탐방 코스와도 연결된다. 지난 26일 이 가게의 사랑채로 들어서니 벽 한가운데에 전통 혼례 때 신부가 입는 겉옷인 장삼(長衫)이 걸려 있었다. 붉은색 장삼 가슴 부분엔 구름 속에서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는 금색의 문양이 선명했다. 중요무형문화재 119호인 금박장(金箔匠) 김덕환(83)씨와 이수자인 아들 김기호(50)씨가 만든 작품이다.

금박장은 비단 위에 얇고 다양한 문양에 금박을 붙이는 장인이다. 주로 한복 위에 금박 작업을 한다. 문양 도안부터 문양판 만들기, 옷감에 문양 찍기, 부금(付金·금박 올리기)까지 손이 많이 간다. 김씨 부자가 작품용 홍장삼을 완성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한옥마을에 있는 ‘금박연’에서 김기호 장인이 어린 여자아이용 댕기에 금박 작업을 하고 있다. 김씨 집안은 100년 넘게 한복에 금박으로 문양을 넣는 일을 해 왔다.

이들의 금박 가업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기호씨의 고조부 김완형 선생은 조선 철종(재위·1849~1863) 때 왕실 의복의 금박 제작을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100년이 넘은 작업대, 조각칼, 인모(人毛)로 만든 붓 등이 가게의 역사를 말해준다.

김씨는 중앙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산업용 로봇을 개발했다. 20년 전 아버지가 협심증으로 쓰러지자 회사를 그만두고 가업을 물려받았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왔기 때문에 정식으로 일을 배우기가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 집안의 금박장들은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등 전 대통령 부인의 해외 순방용 한복에 금박 문양을 넣었다.

김씨는 2002년 금박 공예로 유명한 일본 가나자와 시로 방문조사를 떠났다. 한복을 찾는 사람들이 줄면서 가게 운영이 어려워지자 활로가 필요했다. 김씨는 "가나자와처럼 금박 공예에 현대적인 감각을 도입하면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씨 집안은 서울 공평동, 마포, 답십리, 경기도 분당의 집 한쪽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금박 일을 했다. 5대째인 김씨는 2006년 6월 분당에서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 근처로 옮겨와 '금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정식 가게를 냈다. 2012년 2월엔 지금의 위치인 북촌한옥마을로 이전하고, 금박연(金箔宴)이라는 새 간판을 걸었다.

금박연은 2008년 아버지가 처음 연 작품 전시회명이기도 하다. 130㎡(약 40평) 남짓한 공간에 전시관과 작업장, 마당엔 체험 작업장을 만들었다. 1시간 안팎인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재료비 등으로 1만5000~6만원을 내고 책갈피·복주머니 등에 금박을 입히는 법을 배운다. 자신이 만든 물건은 가져간다. 김씨는 금박장 이수자이기도 한 아내 박수영(50)씨와 체험 프로그램을 관리한다.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하루에 100명이 넘는 사람이 올 때도 있다.

김씨는 그동안 50여 가지 상품을 개발했다. 금박을 입힌 명함지갑, 필통, 보석함, 넥타이 등이 인기라고 한다. 그는 "장인의 정성과 역사, 전통을 지키면서도 사람들이 원하고, 즐겨 쓰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