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Private Brand·대형마트 같은 유통업체가 내놓은 자체브랜드)상품' 하면 무엇이 먼저 생각나나요? 기존 제품과 비교해 품질은 크게 나쁘지 않은데, 가격은 싼 이른바 '미 투 상품(me too·잘나가는 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또는 우유나 과자 같은 식품이나 화장지와 같은 생필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자세히 보면 이 같은 상품들뿐만 아니라 화장품이나 패션상품, 애완용품 PB상품에 가전제품 PB상품도 찾을 수 있습니다. 품질은 일반 제조업체가 생산하는 이른바 'NB제품(National Brand)'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2013년 기준으로 대형마트 3사와 SSM(Super Supermarket·기업형 수퍼마켓) 3사, 편의점 3사의 판매액을 합산해 보면 우리나라 PB 시장 규모는 9조3000억원으로 추정됩니다. 3조6000억원이었던 2008년보다 2배 이상 커졌습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경기 침체와 소비 부진을 생각하면 이 시기 동안 판매액이 크게 늘어난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우리나라 3대 대형마트를 살펴보면, 2014년 기준으로 전체 판매액에서 PB상품 판매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마트가 19%,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26% 수준입니다. 이는 미주대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크로거(30%), 코스트코(27%), 월마트(15%)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다만, PB 시장이 가장 발달한 유럽을 보면 세인즈버리(51%), 테스코(48%), 아스다(46%) 등 PB 판매 비중이 50% 내외의 기업도 많고, 알디&리들의 경우 비율이 82%나 됩니다. 이런 점에서 국내 PB 시장은 앞으로도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트에서 상품 하나를 집어 들었다면 그것이 PB제품인지 NB제품인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그 기준은 ①누가 기획하고, ②누가 생산하며, ③누구의 상표를 붙여 ④어디에서 판매하느냐 등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을 차례대로 적용해본다면 PB제품은 '유통기업의 기획에 따라' '제조업체가 생산한 제품에' '유통기업의 상표가 부착돼' '해당 유통 점포에서만 판매되는' 상품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만약 대형마트인 이마트에서 '피코크', 롯데마트에서 '통큰', GS25에서 '유어스'와 같은 유통기업 브랜드 상표를 보고 PB라고 얘기한다면, 이는 세 번째 기준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포장지 뒷면의 '유통전문판매원: K마트'라는 표기를 보고 그 상품이 K마트의 PB임을 알아차린다면, 이는 네 번째 기준을 사용한 것입니다.
국내 시장에서 PB상품이 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유통업체들의 막강한 영향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종합소매업(식료품, 의류, 잡화 등을 종합적으로 판매하는 소매업종)의 시장 규모는 54조원 증가했는데, 이 중 78%(42조원)는 대형마트·SSM·편의점의 유통기업이 증가시킨 것입니다. 종합소매업 내에서 이들의 판매 비중은 2003년 67.8%에서 2014년 73.1%로 올랐습니다. 이는 제조업체가 만든 상품의 유통에서 유통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유통기업이 제조기업에 대해 갖게 되는 구매자 영향력(Buyer power)이 한층 강화됐음을 뜻합니다.
앞서 살펴봤던 PB상품의 정의에 따르면, PB는 전통적으로 제조기업이 전담하던 제품 기획·생산·상표 부착의 영역에 유통기업이 개입해야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통기업의 강한 구매력과 영향력이 존재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조그만 동네 수퍼가 PB를 출시해 판매하기란 어렵습니다.
PB상품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경기 불황이 한몫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니, 소비 심리가 움츠러들고 대신 알뜰하게 소비하려는 성향은 커집니다. 이렇게 되면 비슷한 품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값이 싼 PB상품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함께 PB상품의 공급이 증가한 것도 PB상품을 성장시킨 요인으로 꼽힙니다. 최근 유통기업들은 국내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여왔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시장의 집중이나 경쟁 정도를 평가하는 도구로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라는 것을 사용합니다. 이 수치는 각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산출되는데, 낮을수록 경쟁 정도가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기업형 유통업체들의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를 산출해보면 2006년 이래 꾸준히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경쟁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NB상품만 존재한다면 유통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격을 내리는 전략을 쓰게 됩니다. 하지만 지나친 가격 할인 경쟁은 유통 마진 감소를 불러오기 때문에 이를 계속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PB제품은 유통기업이 제품 결정에 관여하고, 해당 제품을 자기 점포에서만 독점적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다른 유통기업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유통 마진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소비자가 특정 PB상품을 선호하게 되면, 이는 특정 점포를 선호하는 것으로 이어져 소비자의 점포 충성도가 높아집니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 SSM, 편의점 업계는 경쟁적으로 PB상품 공급을 확대해 온 것입니다.
PB상품의 생산 판매가 확대되면 유통업계와 제조업계는 어떤 경제적 영향을 받게 될까요. 한국개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대형 유통업체 자체상품 확대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유통 점포의 경우 PB 매출 비중이 1%포인트 상승하면 해당 점포의 매출액이 평균 2230만원 증가하고, 유통 이익은 270~900만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제조업계의 상황은 반대였습니다. 제조 대기업의 경우 PB 매출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할 때 기업 매출액이 약 11억원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또 납품 제조업체 1000곳을 면접 조사한 결과 PB 매출 비중 증가로 인해 기업 매출액이 전반적으로 감소한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PB상품의 매출은 증가했지만, PB와 경쟁하게 된 자사 NB상품의 매출이 감소한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소위 자기 잠식 효과 또는 제 살 깎아 먹기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PB상품에는 다양한 경제 지식이 녹아있습니다. 대형마트에서 PB상품 하나 사면서 이 같은 얘기를 해보는 것도 좋은 경제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대형마트, SSM(기업형 수퍼마켓), 편의점 가운데 지금까지 PB(Private Brand·자체브랜드) 시장의 성장을 주도해 온 것은 대형마트입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간 치열한 경쟁 속에 대형마트 3사는 PB 매출을 2008년 3조2000억원에서 2011년 5조80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성장세가 조금씩 둔화되고 있습니다. 2013년 대형마트 3사의 매출액은 5조6400억원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SSM과 편의점도 PB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점이 이유로 꼽힙니다.
2017년 현재의 PB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곳은 편의점 업계입니다. GS25·세븐일레븐·CU 등 편의점 3사는 PB상품 매출액을 2008년 1600억원에서 2013년 2조6000억원으로 무려 16배나 키웠습니다. 또 PB상품 매출 비중은 같은 기간 4%에서 28%로 끌어올렸습니다. 매출 비중 면에서는 대형마트(22%)와 SSM(26%)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편의점이 대형마트·SSM과 달리 점포를 늘리는 것에 제약을 받지 않아 점포 수가 많이 늘어난 데다, 24시간 영업과 간편식 위주의 PB상품 출시로 동네 상권과 1인 가구의 수요를 충족시킨 영향이 큽니다.
아직은 PB상품이 NB(National Brand·제조업체 브랜드)상품의 특성을 약간 변형했거나, NB상품에서 포장 형태만 바꾼 미 투(me too·잘나가는 제품과 유사한 제품) 상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미 투 상품 위주의 PB 시장은 커질 만큼 커져 추가 성장은 더딜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고급화·차별화되는 방향으로 생산·판매될 가능성이 큽니다. 또 가구나 문구 전문점처럼 전문 소매업에서 PB상품이 출현해 비중을 높여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PB제품은 유통기업의 영향력이라는 조건이 갖춰지면 어느 품목에서나 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