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집권 2기 중국 최고지도부는 테크노크라트(이공계 출신 기술관료)가 퇴조하고 문과 출신의 정치·이론가들이 전면에 등장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7일 보도했다. 1980년대 이래 유지된 '공정사치국(工程師治國·이공계 출신이 국가를 다스림) 전통이 퇴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시대에는 고속성장보다는 절대권력을 뒷받침할 사상 방면의 통제와 선전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SCMP는 풀이했다.

SCMP에 따르면, 지난 25일 선출된 시진핑 집권 2기 상무위원 7명 중 이공계 출신은 칭화대 화공과를 졸업한 시진핑 주석이 유일하다. 다른 6명의 상무위원은 경제학(리커창 총리), 경영학(왕양), 철학(자오러지), 정치학(리잔수·한정), 국제정치학(왕후닝) 등 모두 문과 출신이다. 덩샤오핑 시대 이후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모두 이공계 출신이었다. 상하이 자오퉁대 전기과 출신인 장쩌민 전 주석은 전기기사 자격증을 딴 뒤 비누제조창에서 일했다. 소련 유학 후에는 창춘 제1자동차 제조창에서 공정사(기사)로 근무했다. 이런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1983년에는 전자공업부장(장관)을 역임했다. 리펑 전 총리도 모스크바에서 전력학을 배우고 돌아와 수력발전소에서 근무했다. 칭화대 수리공정과를 졸업한 후진타오 전 주석도 수력발전 엔지니어 등 10년간의 현장 경험을 거쳐 정치에 입문했다.

중국 권부의 테크노크라트 최절정기는 후진타오 집권 2기 때였다. 후 주석을 포함한 상무위원 9명 중 경제학 박사인 리커창을 뺀 전원이 이공계였다. 우방궈는 칭화대 무선전자과, 원자바오 총리는 베이징지질대 지질광산측량탐사 전공, 자칭린은 허베이공대 전력학과, 리창춘은 하얼빈공대 공업기업자동화학과, 시진핑은 칭화대 화공과, 허궈창은 베이징화공대 무기화학과, 저우융캉은 베이징석유대학 탐사과 출신이었다. "중국 지도자가 되려면 이공계를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공계 출신들이 이처럼 득세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마오쩌둥의 이공계 중시 정책이 있었다고 SCMP는 전했다. 마오쩌둥은 소련 모델을 좇아 경제 발전을 추진하면서 전국 대학에서 이공계 학과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인문계는 대폭 줄였다. 그 영향으로 1930~1940년대에 태어나 마오쩌둥 집권기에 대학에 입학한 청년 중 이공계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이 훗날 테크노크라트 지도자가 됐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처럼 1950년대에 태어나 문화대혁명 이후 대학에 들어간 5세대 지도자들이 부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이 G2(주요 2개국) 반열에 오를 만큼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이제는 공산당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사상을 통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8일 19차 당 대회 개막식 업무보고에서 '금세기 중반까지 부강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전임자들과 달리 구체적인 성장률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당 중앙재경영도소조판공실 관계자는 "시 주석은 앞으로도 구체적인 성장률 목표를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생산 능력 부족이 더는 중국 발전에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이번에 당장(黨章·당헌)을 수정하면서 '당정군민학 동서남북중 당은 모든 것을 영도한다(黨政軍民學, 東西南北中, 黨是領導一切的)'라는 마오쩌둥의 발언을 삽입함으로써 모든 분야에서 전면적 사상적 통제를 예고했다. 당정군민학은 정부와 군, 민간단체, 학계 등 각 분야를, 동서남북중은 중국 전역을 의미한다. 정치·이론가 출신의 부상은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 인선이라는 것이다.

SCMP는 "중국 공산당이 농민·노동자 출신 지도자 시대에서 출발해 테크노크라트 시대를 거쳐 이제는 정치 전문가, 이론가 등이 당을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