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의 거대한 촛불이었던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는 생의 불꽃이 꺼지기 1년 전 최후의 시집 '촛불'을 남겼다. 최근 재번역돼 발간된 이 책을 간밤에 읽으며 지금과 사뭇 다른 촛불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촛불은 몽상가의 것이다. 사유 건너편에서 밤샘하는 '내밀한 야등(夜燈)'이자 사색에 잠긴 이마를 비추는 '백지(白紙)의 별'이다. 동시에 촛불은 '가치와 반(反)가치의 결투장'이다. 촛불은 태워야 할 것을 빨갛게 태우면서 그 연소의 힘으로 가장 순수한 흰 불꽃을 맨 위로 밀어올린다.
때문에 촛불은 철학과 문학의 것이었다. 그 밝고 말 없음의 흔들림에서 인간 정신의 고해성사는 흘러나왔다. 신석정이 첫 시집 '촛불'에 담긴 시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를 통해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물을 때,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단편 '촛불'에서 '악을 악으로 다스리려 할수록 악은 우리 쪽으로 옮겨온다'고 예언할 때 촛불은 명상과 자각을 길어올리는 묵상(默想)이었다.
오늘날 촛불은 인문학과 화학이 아닌 정치학의 영역에 놓여 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여러 사회 암전(暗轉) 속에서 정치 목적을 상징하는 물상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촛불의 기호적 변화가 국내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출장차 들렀던 지난 1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도 분리 독립을 외치는 카탈루냐인들이 횃불에 가까운 촛불을 들고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도 어디 우리만 할까. 한국의 촛불은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지난 29일은 '촛불 집회 1주년'이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앞장선 단체의 '기록기념위원회'도 생겨났다. 이 단체는 "적폐 청산을 호소하자"며 청와대 행진을 추진하다 비판 여론으로 이를 취소하는 소동을 빚었다. 현 정권 지지층이 "대통령이 만만하냐"며 막아 세운 탓이다. 그러자 "대신 '촛불 파티'를 벌이자"는 법석이 일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탄핵을 위해 '촛불 행동'을 열겠다"는 괴단체도 등장했다. '촛불 문학' 등을 표방하는 장르도 나오기 시작했으나 촛불이 변화가 아닌 하나의 의미로 고착되면서 예술이 지니는 촛불의 환유(換喩)는 단조로워지고 있다.
바슐라르에게 촛불은 영감이 태동하는 불가항력의 원천인 동시에 존재의 변화를 상징하는 세계였다. "몽상가는 거기서 자기 자신의 존재와 자기 자신의 변화를 본다." 촛불 1주년을 맞으며 다시 켜야 하는 건 변화로서의 촛불이자 몽상을 가능케 한 상념로서의 촛불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촛불 앞에서 존재와 그 너머의 변화를 응시하는 철학자는 어디에 있나. 몽상 아닌 망상, 변화 대신 변칙을 희구하는 촛불이 일렁인다. 바슐라르는 '촛불은 홀로 탄다. 시중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썼고, 사상의 시야를 밝게 했다가 조용히 불꽃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