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히어로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팬심(心) 담은 작품을 배우들이 좋아해 주는 걸 보면서 그림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전해준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일러스트 작가 우나영(38)씨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개봉을 앞두고 지난달 배급사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의뢰로 그린 아트워크(온라인 홍보용 포스터) 이야기다. 이 작품은 헐크 역의 주연배우 마크 러팔로가 자신의 트위터에 "이거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라며 소개해 크게 화제가 됐다. 그러자 디즈니코리아는 작품을 출력해 미국으로 보냈고, 러팔로와 토르 역의 크리스 헴스워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포스터에 서명해 다시 우 작가에게 선물로 보내왔다.

원래 같은 편인 주인공 토르와 헐크는 이번 영화에선 맞대결을 펼친다. 단원 김홍도 그림을 패러디해 두 영웅이 씨름하는 모습으로 이를 표현했다. 씨름꾼 왼쪽 아래 엿장수 자리엔 로키(토르의 동생)가 들어갔다. "로키는 밉지만은 않으면서도 얄밉거든요. 토르를 도울 생각은 않고 웃으며 구경하는 구도가 딱이겠다 싶었죠."

자신의 작품집을 든 우나영씨. 표지 속 소녀가 입은 옷의 색은 디즈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옷에서 영감을 얻었다. 오른쪽은 김홍도의 ‘씨름’을 패러디한 ‘토르: 라그나로크’ 포스터.

어릴 때부터 만화와 게임을 좋아했다. '흑요석'이라는 필명도 게임에 나왔던 아이템 이름이다.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게임회사에서 그래픽 일을 했다. 적성에 맞았지만 '내 그림'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졌다. '성균관 스캔들'(2010) 같은 드라마를 보며 발견한 한복의 아름다움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디즈니 만화처럼 익숙한 이야기를 한국화로 재해석했다. "전래동화와 달리 한국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알고, 한복을 입혔을 때 신선한 모습이 나오는 데 끌렸다"고 했다.

올 초엔 작품집도 냈다. 댕기머리 소녀와 갓 쓴 호랑이가 '미녀와 야수'처럼 나란히 선 그림은 디즈니와 정식으로 협업하는 계기가 됐다. 3월 개봉한 실사판 '미녀와 야수' 아트워크엔 노랑 저고리 미녀와 푸른 관복을 입은 야수가 들어갔다. 5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에선 피터(크리스 프렛)에게 자주색 두루마기를 입혔다. 프렛 역시 이 작품을 자기 트위터에 소개하며 "끝내준다(Awesome!)"고 했다. 우 작가는 "익숙함과 새로움이 만날 때 나오는 재미있는 에너지를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우 작가는 영문 성(姓)을 일반적인 'Woo'나 'Wu'가 아닌 'Wooh'라고 쓴다.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활동하며 쓰시던 거라서 제겐 큰 의미가 있죠." 할아버지는 조선일보 연재소설 '언젠가 그날'(선우휘), '불새'(최인호), '비극은 있다'(홍성유) 등을 비롯해 1960~70년대 대표적인 신문소설 삽화가로 활동했던 우경희(1924~2000) 화백이다. "할아버지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어릴 땐 좀 무서웠다"고 한다. 그러나 피는 못 속이는 법. "할아버지한테 그림을 배운 것도 아니고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남기신 작품을 보면 선(線)이 닮았어요. 신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