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선 선수가 펼치는 메달 경쟁 말고 또 하나의 장외(場外) 메달 경쟁이 펼쳐진다. 메달 디자인을 둘러싼 창의력 대결이다. 세리머니의 정점이자 승리의 꽃인 이 빛나는 금속덩이는 대회 기간 수백 번 열리는 시상식에서 줄곧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표 이미지가 된다.

“바늘에서 우주선까지 디자인하는 게 산업디자이너라더니 반지부터 아파트까지 디자인하고 있네요.” 디자이너 이석우씨가 불법 복제 대상이 된 그의 대표작 ‘레그 체어’에 앉은 채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샘플을 들고 있다. 1 2010년 디자인한 모토롤라의 ‘모토로이’. 2 몸체를 분리할 수 있게 디자인한 ‘3M 무선 충전기’. 3 시계로 쓸 수 있게 만든 재난 키트 ‘라이프 클락’. 4 손잡이를 원형으로 만들어 손목에 건 채 휴대폰을 쓸 수 있게 만든 우산 ‘KT 폰브렐라’. 5 바닥에 세울 수 있는 구조로 만든 ‘제로 G 라이팅’. 6 대학 졸업작으로 만든 CD 플레이어 겸 조명 ‘음악을 비추고 빛을 만지다’. SWNA

그러니 개최국마다 들이는 공이 대단하다. 2024년 파리올림픽 준비위원회는 대회를 7년이나 앞둔 시점에 메달 디자이너로 프랑스 출신의 스타 디자이너 필립 스탁을 선정했고, 지난 7월 시안을 공개했다. 선수들이 가족이나 코치와 기쁨을 나눌 수 있게 최대 4개로 분리되는 '공유 메달'이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버려진 스마트폰 속 금속을 재활용해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9월 공개된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에도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한글'과 '한복'을 콘셉트로 이번 메달을 만든 이는 디자이너 이석우(39·SWNA 대표). 메달 샘플 30여 종과 스케치가 가득한 서울 홍대 앞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메달 디자인은 어떻게 맡게 됐나.

"지난해 4월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디자인개발부에서 연락이 왔다. 원래 다른 분이 하던 걸 내가 맡아줬으면 한다고 하더라. 사업 때문에 고민 많던 때라 이 프로젝트를 돌파구 삼아 전력투구했다."

―작업 맡은 뒤 최순실 사건이 터졌다. 올림픽을 둘러싼 잡음도 많았는데 지장은 없었나.

"평창 가서 조직위 관계자들 앞에서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디자인 이해도가 남다른 분이 계셨다. 얼마 뒤 그분이 청문회 증인석에 앉아 있더라. 참 묘했다. 다행히 실무 담당자들이 바뀌진 않아 일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원래 금속 3D 프린트로 제작할 계획이었는데 한국조폐공사에서 압인(壓印·동전 만드는 것처럼 눌러서 찍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하게 된 것만 바뀌었다."

―디자인 관점에서 메달은 어떤 대상인가.

"표면적인 최종 소비자는 메달리스트지만 널리 보면 축제를 즐기는 국민 모두다. 모든 사람이 수긍하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컨센서스를 이뤄내는 과정 자체가 디자인의 일부다. 디자이너가 조율자·설득가 역할까지 해야 한다."

―올림픽이란 큰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88올림픽이 열렸는데 친구들하고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 가서 육상 경기를 봤다. 생각보다 선수와 관중 사이 간격이 매우 가까워 숨소리도 들리고 땀방울까지 보이더라. 그 경건한 무대에 올릴 메달이라니 어깨가 무거워졌다."

―디자인으로 스포츠 정신을 표현하는 작업 아닌가.

"얼마 전 연 개인전 타이틀이 '공정의 미학(the aesthetics of process)'이었다. 디자인은 과정의 싸움이며 가능성을 좇는 집요한 태도란 의미였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진실하고 단단한 과정 자체가 감동 아닌가. 그걸 담으려 했다."

―어렸을 때 메달 많이 받는 아이였나.

"공부와는 담쌓은 사고뭉치였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 작은 불이 났는데 선생님이 다짜고짜 나를 혼냈을 정도다. 여섯 살 때 미술대회 나가 받은 동메달 빼고 학창 시절 상 받은 기억이 없다. 성적표엔 체육·미술만 '수', 나머진 '미' '양'. 아내가 내 성적표를 보고 기겁하더라."

―체육·미술만 우등생이었던 학생이 최대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디자인했다. 적성 개발의 성공 사례 같은데(웃음).

"하하, 그런가. 어머니의 방임 교육 덕분이다. 공부하란 소리 한마디 안 하셨는데 30년 동안 해주신 한 가지가 있다. 보여주고픈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사인펜으로 제목 달아 고이 접어 주셨다. 무언(無言)의 가르침이었다."

'한글'과 '한복'을 콘셉트로 평창올림픽 메달을 만든 디자이너 이석우.

―20~30대 초반 삼성, 모토롤라 등 대기업과 '티그' '퓨즈 프로젝트' 같은 미국 유명 디자인 회사를 경험했다. 상당히 이른 나이에 디자인계에 이름을 알렸는데.

"형식적인 통과 의례가 될 뻔한 대학 졸업작이 내 인생을 바꿨다. '음악을 비추고 빛을 만지다'라는 이름의 CD 플레이어와 조명을 결합한 제품이었다. '음악은 듣고 빛은 본다'는 상식을 비틀어 조명이 비추는 곳에 리모컨 인터페이스가 뜨게 하고 이걸 누르면 음악이 재생되는 개념이었다. 이 작품으로 2005년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미국 IDEA 금상'을 받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개인이 디자인상 수상하는 게 드물던 시절이었는데.

"당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 디자이너로 입사해 다니고 있었다. 휴가 내고 미국에서 열린 시상식에 가서 2분간 제품 설명을 했다. 그때 나를 눈여겨봤던 유명 디자이너 이브 베하가 자기 회사(퓨즈 프로젝트)에서 일해보자고 연락해와서 고심 끝에 이직했다. 이후 미국 디자인 회사 '티그'로 옮기게 된 계기도 이 작품 덕이었다."

―서른한 살에 모토롤라 미국 본사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리드' 넷 중 하나로 뽑혔고 서울로 발령받았다. 젊은 나이의 출세가 버겁지 않았나.

"타이틀이 수석 부장이었다. 미국 기업이지만 한국 지사였다. 나이 어린 상사는 애매했다. 주어진 프로젝트만 집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모토로이'가 그때 디자인한 제품이다."

―결국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독립했다.

"모토롤라 시절 회사에 요구한 게 하나 있었다. 업무 외 시간에 개인 작업을 하게 해달라는 거였다. 회사에서 그걸 받아줘 2009년부터 '주말 스튜디오'를 차렸다. 평일엔 휴대폰 디자인을, 토·일 주말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가구·조명 등을 디자인했다. 취미 삼아 한두 개 만들던 게 소문나면서 제작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스튜디오 일이 커지면서 2011년 독립해 동료 디자이너와 디자인 회사 'SWBK'(현재는 SWNA)를 만들었다. 요즘 거리에서 많이 보이는 '레그 체어'가 그때 만들어졌다."

―레그 체어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의 결과물었다니. 흥미롭다.

"시간 쪼개 만든 거라 남다른 애착을 가진 제품인데 카피 제품이 넘쳐 안타깝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 브랜드는 아예 내 의자 디자인을 베낀 제품을 매장마다 깔았더라. 커피 마시러 갔다가 화들짝 놀라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지식재산권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환경에서 디자이너로 살기란 참 어렵다."

―가전 회사, 디자인 회사 등을 두루 거치며 배운 점이라면.

"삼성에선 지구력·현실감·균형감 갖춘 디자이너를 많이 만났다. 모토롤라에선 큰 로드맵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배웠다. 미국 디자인 회사에선 자유롭게 사고를 전개하는 훈련을 했다. 어쩌면 평창 메달엔 이 모든 경험이 집약된 요체다."

―어떤 식으로란 말인가.

"바늘부터 우주선까지 만드는 게 산업 디자인이라는데 최근 반지(한 게임 업체 사원용 기념 반지)부터 아파트(강남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까지 디자인했다. 그런데 메달은 전혀 다른 독특한 대상이었다. 기능은 없고 상징이 중요하다. 조각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예술 작품이 되어선 안 된다. 259세트나 제조해야 하기 때문에 작품성 못지않게 양산 가능성도 중요하다. 휴대폰 회사에서 양산 스케줄까지 챙겼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대개 메달은 표면 패턴에 신경 쓰는데 평창 메달은 평면을 입체화시킨 게 핵심이다. 이 발상 전환도 그때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메달 주인공들에게 당신의 메달이 어떤 의미이길 바라는가.

"힘겹게 생활하는 왕년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얘기를 종종 접한다. 내가 만든 메달은 꽃이나 잎사귀가 아니라 새싹의 줄기 부분을 도려내 동그랗게 만든 거다. 메달을 딴 순간보다 목표를 향해 흘렸던 땀을 기억하자는 의미다. 메달리스트들이 세월이 흘러 집에 걸어둔 메달을 보고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기보다 땀 흘렸던 과정을 기억하면서 평생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한다."

이 메달, 앞태보다 옆태!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

이석우씨가 디자인한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의 진짜 얼굴은 앞면이 아니라 옆면이다. 가만 보면 세로로 ‘ㅍㅇㅊㅇㅇㄹㄹㅁㅍㄱ’이란 한글 자음이 연속적으로 보인다. ‘평창동계올림픽’이란 단어에 들어간 한글 자음을 순서대로 새긴 것. ‘평’에선 ‘ㅍ’ ‘ㅇ’, ‘창’에선 ‘ㅊ’ ‘ㅇ’이 나온 식이다.

한글 자음을 문화 씨앗으로 보고, 그 씨앗이 입체로 자라난다고 상상했다. 자음을 길쭉하게 잡아당긴 다음, 동그란 모양으로 도려냈다. 새싹으로 치면 줄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란다. 한글 자음을 변형시켜 결실보다는 인고의 과정이 중요하단 의미를 담았다. 목에 거는 줄은 한복 옷감으로 만들었다.

이석우

1978 서울 출생

1997 서울예고 졸업

2005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졸업

2005 삼성전자 입사

2006 미국 '퓨즈 프로젝트' 입사

2007 미국 '티그' 입사

2009 모토롤라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리드, 수석 산업 디자이너

2011~ 디자인 회사 SWBK(현 SWNA)설립

2011~ 가구 브랜드 '매터앤매터' 설립

2012·2013 포브스코리아 대한민국 차세대 리더 부문 선정

2013~ 한국예술종합학교 디자인과 겸임교수

2015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콘셉트 부문 '올해의 글로벌 톱10 디자인 전문 회사'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