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북한의 대남 공작 활동을 차단하고 간첩을 검거하는 활동을 1961년부터 해왔다. 그 과정에서 정보 수집, 공작, 수사, 조직 확인, 검거로 이어지는 노하우도 쌓였다. 국정원은 통상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이 넘게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하며 증거를 모으다가 검거는 빠르게 진행했다. 전·현직 관계자들은 "간첩을 잡기 위해 위장 잠입을 시켜 증거를 모으는 게 수사인가, 정보 수집인가"라며 "이를 따로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대표적 사례는 1995년 '부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이다. 김동식은 1990년 5월 국내에 침투해 1980년부터 서울에서 활동하던 고정간첩 이선실(북한 권력 서열 19위)을 무사히 북한으로 데려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무장 간첩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운동권 학생들도 포섭했다. 김동식은 1995년 또 남파됐는데, 이번에는 고정간첩계의 거물 '봉화 1호'를 북한으로 복귀시키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러나 '봉화 1호'는 이미 1980년 국정원에 검거, 포섭돼 '역(逆)공작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봉화 1호'에게 내려오는 북한 지령문 등을 통해 북한 공작 동향을 파악했고, '봉화 1호'를 미끼로 김동식 일당을 일망타진했다. 국정원은 다른 간첩들을 잡기 위해 15년 동안 '봉화 1호'를 북한 공작 지도부에 포섭이 들통나지 않게 관리한 것이다.
'무하마드 깐수(한국명 정수일)' 사건도 비슷했다. 중국 옌볜 출신인 깐수는 북한 노동당에서 간첩 교육을 받은 뒤 레바논인으로 국적을 세탁해 1982년 한국에 잠입,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교수 생활을 하면서 간첩 활동을 했다. 깐수는 15년간 활동했지만 아내조차 그 사실을 모를 정도로 위장에 철저했다. 안기부(국정원 전신)는 도청 등으로 그를 추적하다 1996년 검거했다.
2006년 일심회(386간첩) 사건도 마찬가지다. 1989년 밀입북해 조선노동당에 충성서약을 한 미국 시민권자 장민호(미국명 마이클 장)는 1997년부터 '일심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386 학생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포섭했다. 일심회는 조직원 노출을 막기 위해 '단선연계(單線連繫)' 원칙에 따라 직계 상하 조직원 일대일로만 접촉을 하는 등 은밀하게 활동했다. 요원들은 이들 전체를 무너뜨리기 위해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중국 등을 오가며 증거를 모았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하혁명조직 'RO'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은 첫 제보 뒤 3년가량 내사를 했다. 또 내부 고발자 도움을 얻어 RO가 '유사시 국가 기간시설 파괴' 등을 논의한 녹음 파일 등을 입수했다. 이 사건 피의자는 당시 현직 국회의원이어서 보안이 더욱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