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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가기 싫은 사람/ 장사하기 싫은 사람/ 모여라"―송골매 '모여라' 중

평생 방학과 휴가만 있다면 그곳이 낙원일 것이다. 잠을 깨는 매일 아침 사람들은 소망한다. 그냥 이대로 아침이 멈춰버리길. '희망찬 아침'은 계몽과 선전의 수사일 뿐 현실엔 없다. 학업과 생업의 지겨움을 뒤로 하고, 모두가 꿈꾸는 그 낙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땡땡이'치면 된다. 책임감이라는 사회가 씌운 굴레를 잠시 벗고 약간의 존재적 모험을 각오하는 것이다. 록밴드 송골매의 노래 '모여라'는 이 세상 '땡땡이'들을 위한 노래다.

"모여라"라는 호쾌한 코러스 도입부에 이어 보컬 배철수가 질박한 목소리로 호명한다. "학교 가기 싫은 사람/ 공부하기 싫은 사람/ 모여라." 이 노래가 나온 그 옛날, 얼마나 많은 학생이 킥킥대며 쾌재를 불렀던가. 노래는 곧장 이 사회의 가장 깊숙한 금기를 건드린다. "회사 가기 싫은 사람/ 장사하기 싫은 사람/ 모여라." 한국 사회에서 학업과 근로 의욕을 꺾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송골매는 이 불온함을 장난스럽게 다룬다.

그리고 체제의 가장 굳건한 도덕적 이념에 균열을 낸다. "아침부터 놀아보자/ 저녁까지 놀아보자/ 밤새도록 놀아보자"라고 밴드가 메기면 "그래 그거 좋겠다"고 배철수가 받는다. 한국 록이 만든 가장 근사한 '콜 앤드 리스폰스(call & response)'다.

그렇다. 인간은 근면하고 성실하기보다 게으르고 빈둥대도록 설계된 종이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는 체제 강화용 서사일 뿐이다. 토끼의 의문은 이런 것이다. 저들이 만들어 둔 결승선에 왜 먼저 가야 하지? 인생은 무용한가 유용한가. 록의 옷을 입은 송골매의 대답은 당연히 '무용'이다. '하루 종일 노는' 것으로 근면의 세계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전복적 록 스피릿이 아니고 무엇일 텐가. 이 노래가 나온 1990년 한국이 여전히 개발도상국이었음을 생각하면 송골매의 반사회적 장난기는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이를 의식했을까. 노래의 후반부는 다소 어정쩡한 타협에 이른다. "하지만 시간은 정해져 있고/ 우리도 언젠가는 늙어"간다. 그래서 "모인 사람 모두 바보"다. 그리고 노래의 마지막. "모였으면 뒤돌아 가"라고 말하며 멋쩍은 것인지, 호방한 것인지 모를 웃음을 터뜨린다. 송골매는 이 지점에서 주춤거리고 좌고우면한다. 아쉽다. 모인 그들을 돌려보낼 게 아니라, 세상 끝날 때까지 놀아보자고 했어야 한다.

송골매는 록밴드도 아이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한국 대중음악 황금기를 제대로 누린 수혜자다. 그들 최대의 히트작 2집이 나온 1982년은 송골매의 날갯짓으로 요란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인트로의 리듬 기타는 약동하는 젊음의 메타포였고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사랑하자던 '모두 다 사랑하리'는 청춘의 송가였다.

'모여라'는 송골매의 마지막 히트곡이다. 노래한 배철수가 작사·작곡까지 했다. 한때 투 톱이었던 구창모의 그늘에 다소 가려 있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늘 남달랐다. 송골매가 '한국적 록'의 완성에 기여한 바가 크다면, 토착적 서정을 록의 자장(磁場) 안으로 끌어들인 배철수의 공이 가장 크다. 노래가 실린 9집은 송골매의 황혼 비행 기록이다.

인생은 결국 무용하다. 자신의 쓸모를 찾아 헤매고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뜻 없이 흘러간다. 인생의 긴 오디세이가 끝나고 떠났던 항구로 돌아와 낡은 닻을 내릴 때 자책과 후회는 때늦은 부채상환서처럼 몰려오리라.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불안을 연료 삼아 숨 가쁘게 뛰어온 이 길엔 무엇이 있었던가. 배철수가 돌려보낸 '땡땡이'들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