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의 아랫면은 눈 위를 달리면서 손상을 입는다. 오물이 달라붙거나 흠집이 생기면 미끄러지는 속도가 느려지고 컨트롤이 어려워진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스키 선수들은 아랫면에 파라핀·불소 등의 물질로 만들어진 왁스를 바른다. 아랫면이 반들반들해지면서 마찰이 줄어들고 활강 속도가 빨라진다. 자동차로 따지면 왁스가 '액셀 페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반대로 '브레이크 페달'처럼 스키를 눈 표면에 잡아주는 왁스도 있다. 소위 '킵 왁스'라고 불리는 왁스다. 왜 이런 왁스가 필요할까.
스키에 왁스를 바르는 작업은 서너 시간씩 걸린다. 여러 겹을 겹쳐서 바르기 때문이다. '기초 왁스→경기용 왁스→스피드 왁스' 순서다. 기초 왁스는 스키에 묻은 이물질을 닦아내는 역할을 한다. 양초처럼 고체로 된 왁스를 '왁스용 다리미'로 녹여 아랫면 전체에 넓게 바른 뒤, 플라스틱 자처럼 생긴 도구로 싹싹 밀어낸다. 왁스와 함께 오물을 벗겨 내고 흠집을 메우는 작업이다. 그다음 경기용 왁스를 입힌다. 속도가 생명인 알파인 스키 선수들은 경기용 왁스와 스피드 왁스를 뿌려서 마찰 계수를 '0'에 가깝게 최소한으로 낮춘다.
그러나 평지, 때때로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크로스컨트리·바이애슬론 종목에선 반대 역할의 왁스가 필요해진다. 스키가 미끄러우면 전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 종목 선수들은 일반 파라핀 왁스에 고무 성분과 송진 가루 등을 섞어 끈적하게 만든 '킵 왁스'를 뿌린다. 다리미로 눌러 붙이면 비탈길에서도 스키가 뒤로 잘 밀리지 않는다.
다만, 킵 왁스만 뿌리면 속도를 낼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일반 왁스와 적절하게 섞어 줘야 한다. 이 비율이 일종의 노하우다.
전문가들은 "왁스를 어떻게 바르느냐에 따라 속도가 시속 5㎞까지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15~30㎞씩 달리는 크로스컨트리·바이애슬론에서 시속 5㎞ 차이면 기록상으로는 10분 안팎 차이가 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스키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대표팀에 왁스 전문 코치를 별도로 두고 노하우를 키워왔다. 한국은 지난해 말 러시아 출신 예브게니 가폰(50) 코치를 영입, 선수들의 스키 관리를 맡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