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에 개원한 17대 국회부터 이번 20대 국회까지 여당과 제1 야당의 이념적 간극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가 데이터 저널리즘 기관인 서울대 폴랩(pollab·한규섭 교수)과 함께 빅데이터 분석 기법으로 '국회 이념 지도'를 파악한 결과다. 폴랩은 2004년 5월부터 작년 12월까지 약 14년간 17~20대 국회가 처리한 법안 총 9478건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표결(275만여 건) 행태를 분석했다. 17대 2189건, 18대 2617건, 19대 3470건, 20대 1202건이 분석 대상이었다. 법안별로 찬성·반대·기권 등 비슷한 투표 성향을 보이는 의원들에게 이념 점수를 매겨서 상대적 이념 성향을 평가한 것이다.

◇갈수록 멀어지는 여당과 제1 야당

조선일보·서울대 폴랩은 전체 국회의원들의 표결 성향을 '가장 진보' -50점에서 '가장 보수' +50점 사이에 위치하도록 척도화한 후 각 정당 소속 의원들의 이념 점수 평균치로 정당별 이념 점수를 파악했다.

분석 결과, 여당과 제1 야당의 이념 점수는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27.6점, 통합민주당 -21.4점이었고 18대 국회는 새누리당 18.4점, 민주통합당 -31.8점이었다. 19대 국회는 새누리당 23.9점, 더불어민주당 -28.1점이었고 20대 국회는 자유한국당 29.5점, 더불어민주당 -24.7점이었다. 여당과 제1 야당의 이념 점수 차이는 17대(49.0점)→18대(50.2점)→19대(52.0점)→20대(54.2점) 등으로 계속 벌어졌다. 여야 대립이 갈수록 격해짐에 따라 각 정당 의원들의 법안 표결 행태도 차이가 커지면서 이념적 거리가 멀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여소야대이자 다당제 구도인 이번 20대 국회는 안정적 국회 운영을 위해 협치가 필수적이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악화되고 있는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고 했다.

◇20대 국회 정당별 이념 분포

이번 조사에서 20대 국회의 경우 소속 의원의 이념 스펙트럼이 가장 다양한 정당은 국민의당이었다. 국민의당 의원 39명 중엔 이념 점수가 중도에서 오른쪽인 18.4점부터 거의 왼쪽 끝인 -45.3점까지 있었다. 당내에서 가장 보수 성향 의원과 가장 진보 성향 의원의 차이가 63.7점에 달했다. 국민의당 의원들은 법안 표결을 할 때 당 정체성보다는 개인 소신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은 의원 121명의 이념 점수가 5.9점부터 -49.4점으로 양쪽 차이가 55.3점이었다. 자유한국당 의원 116명은 가장 오른쪽인 50.0점부터 3.2점까지 차이가 46.8점으로 나타났다. 바른정당 의원(11명)은 27.9점부터 -7.3점까지 분포했고 양쪽 차이는 35.2점이었다. 소속 의원이 6명인 정의당은 가장 진보인 -50.0점부터 -42.3점까지 차이가 7.7점에 불과했다. 법안 투표 때마다 모든 의원이 거의 같은 방향으로 표를 던졌다는 의미다.

한 교수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의회의 법안 표결 행태 분석에서 밝혀진 성향이 유권자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 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유권자도 국회 표결 행태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폴랩이 분석한 '20대 국회 이념 지도'에서 지역별로 의원들의 성향이 가장 진보적인 곳은 수도권이었다.

'가장 진보' -50점부터 '가장 보수' +50점까지 각 의원들에게 이념 점수를 부여한 결과 수도권 의원들은 평균 -8.5점이었다. 호남권이 -4.1점으로 뒤를 이었다. 과거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평가됐던 호남을 제치고 수도권이 진보 1번지로 떠오른 것이다. 호남권 의원 중 다수가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인 국민의당 소속인 반면 수도권은 진보 성향이 강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다수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의원들이 가장 보수적인 지역은 대구·경북(29.3점)이었고 다음은 강원(20.0점), 부산·경남(12.6점) 순이었다. 충청권(3.9점) 의원은 진보와 보수 어느 쪽도 아닌 가장 중도(0점)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별로 보면 민주당 의원 중엔 부산·경남(8명) 출신이 평균 -26.3점으로 가장 진보적이었고 수도권(78명) -23.0점, 충청권(13명) -22.1점 등이었다.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21명) 출신이 35.0점으로 가장 보수적이었고 부산·경남(27명) 28.6점, 충청권(14명) 28점, 강원(7명) 27.8점, 수도권(29명) 26.2점 등이었다.

국민의당은 호남권(23명)이 -4.7점이었고 수도권(3명)의 -5.4점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바른정당은 수도권(7명)이 13.8점으로 영남권(3명)의 7.6점에 비해 더 보수적이었다.

20대 국회의원들의 선수(選數)별 이념 성향에선 민주당은 초선이 재선 이상보다 진보적인 반면 자유한국당은 초선이 더 보수적이었다.

민주당은 초선(-26.7점)이 재선 이상(-22.8점)에 비해 중도에서 왼쪽이었고, 자유한국당은 초선(34.1점)이 재선 이상(26.7점)에 비해 오른쪽이었다. 중도 진보 성향인 국민의당도 초선(-9.6점)이 재선 이상(-4.3점)보다 더 진보적이었고, 중도 보수 성향인 바른정당은 초선(23.5점)이 재선 이상(10.1점)보다 더 보수적이었다.

초선 의원들이 법안 표결에서 개인의 소신보다는 당론 또는 당의 정체성에 따른 투표를 많이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 소속된 의원들이 그대로 합쳐서 신당을 만들 경우 '통합 신당'의 이념 성향은 중도에서 약간 왼쪽인 중도 진보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보다는 더불어민주당과 다소 가까운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일보가 데이터 저널리즘 기관인 서울대 폴랩(pollab·한규섭 교수)과 함께 '국회 이념 지도'를 파악한 결과다.

폴랩이 2016년 6월부터 작년 12월까지 20대 국회가 처리한 법안 총 1202건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표결 행태 분석에선 정당별로 이념적 위치가 '가장 진보' -50점부터 '가장 보수' 50점 사이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정당별로 소속 의원들의 법안 표결 행태가 뚜렷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각 정당 소속 의원들의 이념 점수 평균치로 구한 정당별 이념 점수는 정의당 -47.6점, 더불어민주당 -24.7점, 국민의당 -7.5점, 바른정당 12.6점, 자유한국당 29.5점이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진보 성향,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보수 성향으로 구분됐다.

최근 통합 논의 중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이념 점수 차가 20.1점이었다. 중도(0점)에서 좌우에 위치한 두 정당의 이념적 간극은 국민의당과 민주당의 차이(17.2점),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차이(16.9점)보다 컸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을 한데 묶어서 '통합 신당'의 이념 점수를 도출한 결과는 -3.1점으로 중도에서 약간 왼쪽이었다. 통합 신당의 이념 성향은 자유한국당(29.5점)보다는 민주당(-24.7점)에 다소 가까운 중도 진보 성향이란 얘기다.

국민의당에선 통합을 놓고 찬반이 맞서고 있지만, 박지원 의원 등 통합 반대파 18명의 이념 점수 평균치(-9.7점)와 나머지 의원들의 평균치(-5.5점)는 차이가 크지 않았다.

현 여야 교섭단체 지도부 중에서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이념 성향이 가장 왼편에 있고,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가장 오른쪽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을 추진 중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국회 표결 성향이 비슷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국회 당시 진보 성향이 강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대 국회 주요 의원들의 성향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작년 5월 대선을 앞두고 의원직을 사퇴하기 전까지 20대 국회에서 법안을 표결할 때 이념 성향이 7.0점으로 중간(0점)에서 오른쪽이었다. 국민의당과 통합을 추진 중인 바른정당 유승민(6.2점) 대표도 중도·보수 성향을 보였다. 안 대표와 이념적으로 매우 유사했다. 양당 통합에 반대하고 있는 국민의당 박지원(5.5점) 전 대표는 안·유 대표에 비해선 왼쪽이었지만 중도·보수 성향에 가까웠다.

한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이념 점수는 -4.6점으로 진보 쪽이었다. 하지만 평소 강성 이미지로 인해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진보 성향이 강한 편은 아니었다. 친문(親文)으로 분류되는 홍익표(-46.7점), 박남춘(-40.2점), 김경수(-38.2점), 전해철(-20.6점) 등은 민주당에서도 진보 성향이 강한 의원들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19대 국회의 이념 성향 분석에서 -30.0점으로 전체 의원 중 61번째로 진보 성향이 강했다. 야당에서 친박(親朴)인 자유한국당 최경환(45.5점)과 대한애국당 조원진(47.2점) 등은 오른쪽 끝에 가까운 강한 보수 성향 의원들이었다.

◇멀어진 여야 원내대표 이념 간극

'20대 국회 이념 지도'에선 여야 협상을 이끄는 원내 사령탑의 성향 차이도 협치(協治)의 장애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민주당 우원식(-24.3점)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김성태(22.5점) 원내대표의 이념 간극은 46.8점으로 비교적 먼 편이었다. 지난해 여야 파트너였던 민주당 우상호(-2.9점) 전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정진석(15.0점) 전 원내대표의 이념 점수 차이는 17.9점에 불과했다.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또 다른 야당 맞수였던 자유한국당 정우택(35.4점) 전 원내대표와 이념 점수 차이도 38.3점으로 현재 양당 원내대표의 차이(46.8점)보다 가까웠다. 무소속인 정세균(-6.3점) 의장과 국민의당 박주선(-11.7점) 부의장은 진보 쪽이었고, 자유한국당 심재철(30.6점) 부의장은 보수 색채가 뚜렷했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폴랩이 분석한 '20대 국회 이념 지도'에서 가장 진보 성향을 보인 의원은 정의당 김종대(비례) 의원이었다. 노무현 청와대 행정관과 군사 평론가로 활동했다. 반면 가장 보수적인 의원은 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자유한국당 곽상도(대구 중·남) 의원이었다.

진보 성향에서는 김종대 의원에 이어 정의당 추혜선(비례), 더불어민주당 정춘숙(비례), 정의당 윤소하(비례) 의원 순이었다. 상위 10명 가운데 6명이 비례대표 의원이었다. 진보 성향인 정의당 비례대표가 다수 포함된 결과다. 지역구 의원 중에선 민주당 남인순(서울 송파병), 홍의락(대구 북을). 김경협(경기 부천원미갑) 의원이 가장 진보적으로 평가됐다.

보수 성향 상위 10명은 한국당 소속이었다. 이 중 6명은 대구·경북 의원이었다. 옛 친박(親朴)계 의원이 다수다. 곽 의원에 이어 윤한홍(경남 창원 마산·회원), 박명재(경북 포항남·울릉), 곽대훈(대구 달서갑) 의원 순으로 보수적이었다. ▶기사 더보기

'국회 이념지도' 분석은 미국 의회에서 표결 결과를 분석해 의원들의 이념 성향을 가르는 데 널리 활용되는 W-NOMINATE 통계기법을 활용했다. 의원들의 표결 행태 유사성에 근거하여 이념 성향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각 법안에 대한 찬반만을 기준으로 진보·보수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투표 성향을 보인 의원들에게 비슷한 점수를 부여하며 그룹으로 묶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 의원 다수가 찬성한 법안에 특정 의원이 찬성할 경우 진보 쪽으로 점수가 주어지고, 자유한국당 의원 다수가 찬성한 법안에 특정 의원이 찬성할 경우 보수 쪽으로 점수가 주어진다. 분석 대상인 법안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개별 의원들 간 이념 차이가 드러난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