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숲'이다. 꽃이 있고 바람 불고 연못 물 어른대는데 꿈인 듯 환상인 듯 아련하다. 그림도, 조각도 아니다. 분명한 건 초록 숲이 '보석(寶石)'으로 빛난다는 사실이다.
작가 채림(55)은 "그냥 숲을 산책하듯 둘러보시면 된다"며 웃었다. 이달 28일까지 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목도 '숲의 사색'. 보석과 회화가 만났다. 보석디자이너 출신 채림은 목판을 옻으로 칠한 뒤 그 위에 자개, 은, 호박, 산호, 비취, 청금석 등을 붙이거나 브로치처럼 꽂아 풍경화를 그린다.
'춤추는 버드나무'는 클라우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에 갔을 때 받은 영감으로 작업했다. 언뜻 유화 같지만 자세히 보면 정교히 깎은 자개와 22K로 도금한 은이 촘촘히 박혔다. '기다림'은 옻칠로 우윳빛 아이보리색을 구현해 눈길을 끈 작품. '숲속을 거닐며'는 17개 작은 그림들이 모여 소나무 숲의 광활한 풍경을 연출해 탄성이 터진다. 힌두어로 '생명의 기원'이란 뜻의 '프라나'도 재미있다. 작가가 구스타프 클림트에게 경의를 표하려 옻칠에 금박을 입혀 만든 작품. "보석세공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클림트는 금박을 응용해 신비롭고 화려한 양식의 작품을 만들었죠. 거장에게 바치는 찬가입니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채림의 실험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2014년 파리 그랑팔레의 '살롱 데 앙데팡당'전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엔 런던 사치갤러리의 '스타트 아트페어'에도 출품해 해외 컬렉터들 눈에 들었다. 그는 "옻을 일본말 '우루시'로만 알던 서양 컬렉터들에게 한국 전통의 옻(OTT)을 알렸다는 데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옻이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애인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남자들한테 '옻칠을 배워보라'고 농담 하지요. 내 뜻대로 색이 안 나와 속상할 때 많지만, 그게 또 옻의 매력입니다." (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