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2018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원서 접수가 끝나고, 15일부터 대학별 합격자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합격자 발표는 2월까지 계속된다. 설레는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리는 학생도 있겠지만, 예상보다 낮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 때문에 별 기대 없이 낙심한 수험생도 많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안재환·최한결(19)군도 그랬다. 국내 대학 입시에서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안군은 "고교 때 모의고사는 대부분 영역에서 1등급을 받았지만 내신은 4등급 선이어서 정시를 목표로 했다"며 "그런데 수능 성적이 평소보다 40점가량 낮게 나와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군 역시 "목표했던 수시에서 낙방하고 나니 정시에선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고 했다. 앞날을 고민하던 이들은 유학을 결심하고 지난해 1월 캠브리지코리아 센터를 찾았다. A레벨(level) 과정을 통해 해외 대학에 진학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A레벨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국제시험기관(CIE)이 운영하는 세계적인 대학 진학 과정으로, 캠브리지코리아가 7년 전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그 후로 1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어떤 성과를 얻었을까. 안군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Imperial College)에, 최군은 홍콩과학기술대에 합격해 입학을 앞두고 있다. 2018년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임페리얼 칼리지는 8위, 홍콩과학기술대는 30위에 올랐을 만큼 세계적인 명문대로 손꼽히는 곳이다. 해당 순위에서 서울대는 36위였다. 올해 캠브리지코리아 센터에서 두 사람을 포함, 34명이 해외 대학에 지원해 최종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영국 케임브리지대,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등에서 합격증을 받은 학생도 있다. 유정선 캠브리지코리아 부센터장은 "지난해에도 옥스퍼드대를 비롯한 임페리얼 칼리지·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킹스칼리지·세인트앤드루스대 등 영국 명문대와 미국 뉴욕대 같은 해외 명문대 합격생을 다수 배출했다"며 "작년에 5명이었던 케임브리지·옥스퍼드대 지원자가 올해는 13명으로 늘어 입시 결과가 더 좋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모든 시험이 서술형… "어렵지만 학업 능력 향상에 도움"
안군과 최군이 A레벨 과정을 주목한 건 '관심 있는 3개 과목만 공부하면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A레벨 과정의 경우 수학·심화수학·화학·생물·물리·회계·경영·경제·영문학·역사 과목 가운데 3~4과목을 골라 이수하므로 학업 부담이 덜하다. 또한 A레벨 점수만 있으면 영국뿐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239개국 1800여 개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본래 2년 과정이지만 국내에서는 1년 만에 마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영국 학생들은 11학년을 마치고 A레벨 과정을 시작해 2년이 걸리지만, 한국 학생들은 12학년에 해당하는 고 3을 마치고 A레벨을 시작하기 때문에 1년이 단축된다. 두 사람은 지난해 1월부터 10개월간 2단계(AS 과정과 A2 과정·각 5개월)로 진행되는 A레벨 과정을 이수했다. 이과 출신인 안군은 수학·심화수학·물리 3과목에서 각각 A*(A 스타)·A·A, 문과 출신인 최군은 회계·경제·수학 3개 과목에서 각각 A*·A·A의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유 부센터장은 "A레벨은 특정 과목(영역)에만 관심 있거나 잘하는 학생, 학업 능력이 뛰어나지만 심한 경쟁 탓에 내신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 교외 활동이 부족한 학생 등에 적합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3개 과목만 공부한다고 해서 학업이 쉽다는 얘기는 아니다. 두 사람이 "고 3 때 못지않게 힘들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A레벨은 모든 시험이 서술형으로 출제되기 때문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가 없다. 시험은 5~6월, 10~11월에 두 차례 진행되는데, 과목당 2~3일씩 시험을 치른다. 수학의 경우엔 풀이 과정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답을 맞혀도 점수를 받지 못한다. '이런 것까지 일일이 써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자세한 풀이 과정을 요구한다. "고교 때 (수능 점수 잘 받으려고) 생명과학과 지구과학을 선택했어요. 그런데 해외 대학에선 제 전공과 관련해 '물리' 성적을 요구하더라고요. A레벨 과정에서 처음 물리를 제대로 배웠는데, 정말 너무 어려웠어요. 첫 시험에서 D를 받았을 정도죠. 이후 정말 독하게 공부해서 A까지 끌어올렸습니다."(안재환)
수업 방식도 국내 고교와 다르다. 특히 그룹 스터디가 많이 진행되고, 에세이를 자주 쓴다. 최군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할 때 주로 그룹 스터디를 한다"며 "제가 이해 못 한 부분, 놓친 부분 등을 친구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필요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선생님을 찾아가 묻거나 제 힘으로 책·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내야 해요. 그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죠. 또 그런 습관이 몸에 배야 해외 대학에 가서도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험 점수뿐 아니라 학생이 수업 중에 보인 학업 태도 등도 성적에 일부 포함된다.
A레벨 과정을 운영하는 캠브리지코리아는 케임브리지대 CIE의 공식 한국 지사다. 캠브리지코리아센터 강사진은 CIE의 온·오프라인 강사 교육을 받고, 각 과목 전담 강사가 직접 CIE와 A레벨 교육과정 등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수준 높은 교육을 진행한다. 유 부센터장은 "A레벨 과정은 토론 등을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진다"며 "국내에서만 공부해온 학생들도 A레벨 과정을 통해 해외 대학 진학 이후의 학습 방법에도 미리 익숙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