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공연을 위해 사전 답사차 한국을 방문한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이 강릉아트센터의 조명·음향기기를 점검한 뒤 이탈리아산 조명 ‘클레이파키’와 미국산 음향기기 ‘메이어사운드’와 콘솔 ‘아비드 디쇼’ 등을 사용하고 싶다고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측에 요구한 것으로 22일 알려졌다.

국내 음향기기 전문가들은 현 단장이 미제 음향 기기를 요구한 것이 놀랍다면서도 현 단장이 요구한 기기는 명품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음향기기 납품 및 시공 전문업체 K사 대표 이 모 씨는 “미국을 주적으로 삼고 있는 북한 측 인사가 미제 음향 기기를 요구한 것이 흥미롭다”면서 “(현 단장이 요구한) 미국의 스피커 제조회사 메이어사운드의 제품은 고급스러운 사운드를 원하는 공연장에서 많이 찾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메이어사운드는 존 메이어·헬렌 부부가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설립한 음향 전문 기업이다. 이 회사는 디지털 오디오 시스템의 소리 왜곡을 바로 잡는 ‘소스 인디펜던트 메이저먼트(SIM)’와 스피커 전원 공급 기술 등 공연용 대형 확성기(라우드 스피커) 관련 다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메이어는 300명 이상의 직원을 둔 중견기업이지만, 라이브 공연용 대형 고출력 스피커를 포함해 모든 제품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위치한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으로 공장을 옮긴 대부분의 미국 음향 기업과 달리 메이어가 음향 품질에 대한 남다른 고집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특히, 소리 울림을 만드는 드라이버용 콘지의 경우, 창업자인 존 메이어가 직접 손으로 만든다.

레오 라우드 스피커가 설치된 무대 모습.

메이어의 라우드 스피커는 국내 공연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공중에 매달려 있으면서 약간 굽은 듯한 대형 스피커 ‘레오(LEO)’, ‘라이언(LYON)’ 등이 메이어가 만든 공연장용 스피커다. 메이어의 라우드 스피커는 2016년 12월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 현장에도 쓰였다.

국내에서 메이어 제품을 설치한 곳은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장충동 국립극장, 역삼동 LG아트홀 등이다. 메이어 제품의 음색은 현대적인 음악보다 고전적인 클래식이나 오페라 등에 더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세종문화회관에도 메이어 제품이 설치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다른 업체가 만든 제품을 쓴다.

메이어 스피커는 공연장의 규모와 공연 성격에 따라 투입되는 제품이 천차만별이다. 국립극장과 LG아트홀, 국립국악원 공연장의 경우, 4억~8억원어치에 달하는 메이어 스피커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트클럽 등에서 주로 사용된 클레이파키의 아스트로디스코 조명 모습.

현 단장이 언급한 이탈리아산 클레이파키 조명은 방송 무대나 대규모 공연장 등에서 쓰이는 제품이다. 클레이파크 조명은 전 세계 방송 및 공연 조명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 회사가 1982년 선보인 아스트로디스코 조명은 1980·90년대 나이트 클럽 조명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클레이파키는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 평양에 자사의 조명 제품을 판매했다고 밝혀 놓았다. 북한에서 이 제품을 수입한 업체는 평양 중구역에 위치한 망영 무역회사다. 설치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2014년 세계적인 조명 회사 오스람이 클레이파키를 인수했다.

클레이파키 제품을 수입한 북한 업체 이름을 알려주는 지도.

현 단장은 미국 콘솔 제작업체인 아비드의 ‘디쇼’도 설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1987년 설립된 아비드는 소리 영상 제작 기술, 특히 디지털 비선형 편집(NLE) 시스템, 관리 및 배포 서비스 등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디쇼는 워낙 구형 제품이라 현재는 단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콘솔업체 아비드가 만든 디쇼 제품 모습.

최성일 강릉시 올림픽추진단장은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현송월 단장이 북한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쓰기 편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 같다”며 “현 단장이 요구한 장비에 대해서는 렌탈업체나 강릉 이외의 지역에서 수급이 가능한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무 회의에서 일부 장비의 경우 현 단장이 북한에서 직접 챙겨올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현 단장은 지난 22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해오름극장 무대를 방문해 음향과 조명부터 챙겼다. 그는 “조명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이후 음향을 제어하는 콘트롤 박스를 찾은 뒤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까”고 질의했다. 극장 관계자가 1분 30초쯤 아리랑을 틀었고 현 단장은 세심하게 소리를 듣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