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장창'.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유리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둔탁한 몽둥이질 소리도 난다. 소리 사이사이에는 날카로운 음성도 섞여 있다. "너는 얼마나 잘하는데!" "내가 뭘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싸움 났나 싶지만 가게 안 사람들은 천진난만하다.
서울 홍익대 근처에 있는 '레이지룸(rage room·분노의 방)'은 이름처럼 '던지고 부수고 깨는' 공간이다. 20·30대 사이에서 스트레스 해소방으로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가수 이상민, 배우 장희진 등이 이곳을 다녀간 모습이 방송된 뒤 유명세에 불이 붙었다.
다섯 개로 나뉜 화(火)의 단계 중 하나를 선택하면 15분간 깨고 부술 수 있는 물품이 제공된다. 단계가 높을수록 가격(2만~18만원)이 높고 부술 수 있는 프린터·TV·라디오 등 전자 제품과 그릇의 수도 늘어난다. 분노의 방에 들어가려면 안전모를 쓰고 파편을 막아주는 작업복과 장화를 신어야 한다. 서약서 작성도 필수다.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사고가 날 경우 책임은 자신이 진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서명을 하면 다섯 평 남짓한 방으로 이동한다. 방 안에는 스트레스 해소의 상대가 되어 줄 고무로 된 사람 모형 인형과 타이어, 과녁이 준비돼 있다. 옆으로는 전자 제품과 유리그릇, 그리고 쇠망치와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가 보인다.
강력한 하드록 음악이 나오면 게임 시작이다. 처음에는 살짝 접시 한두 개를 던져보다가 으레 시간이 지나면 입에서 기합이 나오고 망치질, 방망이질이 거세진다. 부수고 때리는 '카타르시스'가 표출되는 것이다. 한참을 때리고 던지는데도 10분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레이지룸이 생긴 것은 지난해 4월이다. 회사 생활을 하던 원은혜 대표가 스트레스 풀 공간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만든 공간이다. 미국·일본에서 운영되는 스트레스 해소방들이 모체가 됐다. 미국에는 탱크로 자동차 등을 깔아뭉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있다.
삶이 힘들고 희망이 없다는 뜻을 담은 '헬조선'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20·30대는 실제로도 분노하며 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30대 화병 환자는 2011년 1867명에서 2016년 2859명으로 5년 새 50% 이상 늘었다. 취업, 연애, 인간관계, 직장 문제 등 화를 낼 일이 너무 많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다만 이런 놀이는 일회적인 데다 때리고 부수는 행위에 중독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의 분노와 감정 과잉이 놀이 문화로도 나타나는 것"이라며 "절제 연습이 돼 있지 않은 세대가 점차 강도가 센 쾌락을 찾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