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응급실까지 있는 병원에 스프링클러가 없고, 화재 대피로도 제대로 확보가 안 됐나."
이번 밀양 세종병원 화재를 지켜본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갖는 의문이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병상 수가 100개 미만인 중소형 병원에서는 세종병원 화재 같은 사건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 병원의 90%가 평상시 화재 대응 체계 등에 대한 최소한의 점검조차 받지 않는 등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중소 병원 90%, 화재 안전 인증 없어
밀양 세종병원은 최근 3년간 관련 기관이 실시하는 화재 안전 점검 대상에서 빠진 채 병원 안전 관리 담당자가 자체 점검만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병원의 경우 전체의 10%만 매년 현장 점검을 받는데, 세종병원은 3년간 제대로 된 안전 점검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관련법엔 요양병원과 정신병원, 상급 종합병원 등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실시하는 '의료 기관 평가 인증'을 반드시 받도록 규정돼 있다. 여기엔 화재 안전과 관련한 항목이 별도로 있다. 이 인증을 받으려면 병원들이 자체적으로 상세히 작성한 매뉴얼을 갖추고 매년 소방 훈련도 실시해야 한다. ▲피난 시설의 위치와 피난 경로를 설정했는지 ▲화재시 직원의 업무 분담이 이뤄지고 있는지 등도 점검 대상이다.
하지만 병상 수 100개 미만의 중소형 병원은 '자율 인증' 대상이다. 상급 종합병원 등과는 달리 인증을 받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어 작년 말 현재 인증률이 전체의 10% 수준에 그쳤다. 세종병원 역시 인증을 받지 않았다.
중소형 병원은 소방법상에서도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번 화재를 키운 요인으로 시설물에 방염 처리가 되지 않은 점이 지적됐는데,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의료 시설 중에는 종합병원, 요양병원 및 정신 의료 기관만 방염 처리를 의무화하고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소방시설법은 규모, 용도, 수용 인원 등을 고려해 소방 시설을 설치하고 유지·관리하도록 하고 있을 뿐 중소형 병원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역시 한 층의 바닥 면적이 1000㎡ 미만이어서 세종병원은 제외됐다.
◇미국은 캥거루복 포대기 비치
전문가들은 신생아실을 갖춘 중소형 병원에 이번과 같은 화재가 발생한다면 더 큰 참변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각 능력이 없는 아기들이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데다 아이들을 누가 어떻게 이동시킬지 사전에 잘 훈련하지 않으면 금세 골든타임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학 병원 관계자는 "화재시 아기들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조끼를 이용해 직원 한 사람당 2~4명씩을 안고 대피해야 한다는 등의 내부 규정을 마련해두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병원 인증 평가를 할 때 화재 예방과 안전에 대한 준수 항목을 주요 평가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갓 태어난 아기들이 모여 있는 신생아실에 화재가 났을 경우를 대비해 간호사 한 명이 신생아 네 명을 한 번에 담아 밖으로 뛰어나갈 수 있는 이른바 '캥거루복 포대기'를 신생아 수에 맞게 비치해야 한다. 또 매년 인형을 갖고 캥거루복에 신생아를 담아 병원을 빠져나가는 화재 대피 훈련을 시행하고 그 영상과 사진 기록을 병원 평가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도 세브란스병원·고려대병원 등 10여곳이 이런 기준을 적용하는 미국 병원 평가 인증(JCI)을 받았다.
하지만 상당수 국내 중소형 병원은 신생아실에 대한 별도 매뉴얼은 물론 화재 발생시 기본적인 행동 요령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소방관련법 개정과 함께 병원 측이 실질적인 화재 안전 프로그램을 갖추기 위해 중소형 병원에 대해서도 병원 평가 인증을 의무화하고 이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송 대한중소병원협회장은 "현재 환자 안전 관리를 위한 제도적 지원이 대형 병원 위주여서 이에 맞추기가 어렵다"면서 "중소 병원 실정에 맞는 안전 지표를 적용해 그에 맞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