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음 참 간사하지요. 겨우내 껴입고 살던 패딩, 이젠 보기만 해도 답답합니다. 진짜 봄은 봄인가 봅니다.

김미리(이하 김): 주말에 꽃시장에 갔어요. 사람 마음은 다 같은 건지 꽃 사러온 사람들로 넘치더군요. 봄이 온 게 실감 났어요.

오누키(이하 오): 전 아파트 단지에 이삿짐 고가 사다리 올라가는 거 보고 봄이 왔구나 싶었어요.

: 아하, 그렇네요. 저도 지난주 동네에서 고가 사다리차로 이사하는 집 몇 집이나 봤어요. 신학기 앞두고 딱 이사할 철이죠.

: 일본은 4월 초에 학기가 시작되니 3월 말이 이사 시즌이에요. 그런데 사다리차로 이사하는 집은 없답니다. 처음에 한국 와서 그 광경 보고 너무 신기했어요. 아들하고 로봇 같다면서 넋 놓고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갈 때가 됐네요. 3월 말 귀국이라 이사 업체를 알아보고 있어요.

: 한국으로 이사 올 때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 앞서 살던 집이 이사 나가고 나흘 만에 저희가 이사 들어갔어요. 나흘 만이라니! 일본에선 이사 나오고 들어갈 때 적어도 3주 여유는 두는 편이거든요. 깜짝 놀랐어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이사할 때부터 느낀 셈이죠.

: 이사나 부동산 관련해선 나라별로 문화가 참 다른 것 같아요. 몇 해 전 런던에서 연수할 때 실감했어요. 가구하고 가재도구가 비치된 원 베드룸 아파트였는데 이사 들어가는 날 부동산에서 거의 A4 10장 분량 '홈 인스펙션(home inspection) 체크리스트'를 가져왔어요. 이사 들어오는 시점의 그 집 상태를 수백까지 항목별로 꼼꼼하게 적어둔 문서였어요. 포크·물컵 개수, 어디에 못 자국이 있는지까지 있더군요. 그러면서 이사 나갈 때 여기서 하나라도 바뀌면 보증금에서 제하겠노라, 부동산 아저씨가 엄포 놨어요. 바짝 긴장됐지요.

: 일본에선 같은 개념으로 '원상회복 일람표(原狀回復一覽表)'란 게 있어요. 세입자가 이사 들어올 때 부동산에서 주는 문서인데 집 상태에 대한 두세 장짜리 문서예요.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집주인과 세입자 중 누가 책임질지도 항목별로 구체적으로 써놨어요. 나갈 땐 당연히 들어올 때 상태로 '원상회복' 시켜야 하고요. 이사 나갈 때 부동산 직원하고 집 상태를 점검하는데 일일이 테이프로 표시하면서 살펴본답니다. 이때 하자나 고장이 발견되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비용을 청구하게 돼 있어요.

: 한국에선 그런 체크리스트를 본 적이 없어요. 눈에 보이는 커다란 파손이 아니면 대충 넘어가죠. 얼마 전 가구·가전이 빌트인 된 원룸을 계약한 후배도 계약서에 '뭐, 뭐, 뭐가 비치돼 있다'는 명시 한 줄밖에 없었다네요.

: 전 이사 왔을 때 부동산에서 사진 프린트된 종이 한 장을 줬어요. 가전 사진 모아두고 이것들은 비치된 거니 가져가지 말라는 식이었죠. 고장이나 파손이 생기면 누가 책임질지에 대한 얘기는 없더라고요. 까다롭지 않아서 곧 이사 나갈 텐데 걱정이 안 돼요. 일본 같으면 나갈 때 원상태로 해놓고 나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텐데요.

: 까다롭지 않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허술하단 얘기 아닐까요. 계약이 꼼꼼하지 않으니 집을 험하게 쓰는 부작용이 있어요. 수리 둘러싸고 집주인하고 세입자 사이 분쟁도 많고요. 세 놨다가 집이 다 망가졌단 친구도 있고, 세 들었다가 수리비로 몇 백 날렸단 친구도 있어요.

: 습관이 몸에 밴 탓인지 여기 사는 일본 사람 중엔 한국에서도 이사 나갈 때를 미리 생각하면서 집을 조심조심 쓰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혹시 바닥 긁힐까 봐 5년 동안 쿠션하고 매트 깔고 살았어요.

: 이사 나갈 때를 늘 염두에 두고 사는 건 힘들겠지만 적어도 사는 공간을 아끼는 마음은 있어야겠지요. 험하게 쓰다 수리하면 그만이란 생각은 이젠 그만!